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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속 그 장소① 돗토리현 구라요시 옛 거리

다니구치 지로와 <열네 살>

#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탔다

     

고향은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돌아섰다가 이내 마음이 약해지는 공간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서 무언가 애달픈 양 바라본다. 그곳엔 아직 부모님이 계시고 그렇기 때문에 이따금 들르게 되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이질감과 불편한 기분이 맴돈다. 낡은 건물도 하나씩 사라지고, 눈에 익은 가게도 리모델링해서 모습을 바꾸면, 이러다 살던 동네를 영영 못 알아보게 되는 건 아닌가 싶어 진다. 친구들도, 이웃들도 이미 대부분 다른 도시로 떠났다. 이곳에 남은 건 부모님의 집 밖에 없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니 어떤 낯선 사람이 인사를 건넨다. 그 사람은 내가 여기 살지 않는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에겐 내가 잠깐의 방문자, 외지인이다.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오랜만에 찾은 기차역이 더 복잡해져서인지 현기증이 나서 기차를 잘못 타고 말았다. 우연인지 운명의 장난인지, 고향으로 향하는 특급열차다.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 <열네 살>은 마흔여덟 중년인 나카하라 히로시가 교토로 출장을 왔다가 도쿄행이 아닌, 구라요시행 열차를 잘못 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왕 열차를 잘못 탄 것, 어차피 오늘 중엔 도쿄에 돌아갈 기차가 없을 테니 오랜만에 어머니의 묘소에 들러야겠다고 생각한 히로시는 그곳에서 깜빡 잠들어버린다. 그리고 눈을 떴더니 열네 살짜리 중학생으로 돌아갔다. 때는 35년 전 과거, 1963년의 일본이다.


구라요시의 한 기념품샵에서 만난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과 작가 소개 패널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 <열네 살>의 원제는 <아득히 먼 고향으로(遥かな町へ)>,라고 번역할 수 있다. 고향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현재의 ‘나’와는 매우 동떨어졌다. 그곳은 시시껄렁한 추억 거리, 철없고 모르던 시절 걱정 없던 한때, 후회와 미련이 남는 시기, 또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인생 2회 차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등 질문을 던지면 그대로 판타지 소설 속 무대가 되는 공간이다.

     

열네 살로 돌아간 히로시는 그리워하던 어린 시절 따뜻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행복감에 벅차오른다. 학교에는 이미 어른이 된 히로시의 눈에 애송이 같은 아이들과 동년배쯤 되는 선생님들, 그리고 고등학교 과정까지 마쳐서 금방 우수한 성적을 받을 수 있는 교과목이 있다. 히로시는 과거와는 달리, 눈에 띄는 우등생이 되었다. 세상 다 산 아저씨처럼 행동하는 건 여학생의 눈에 우수에 차 보였는지, 반에서 가장 인기 있고 히로시의 첫사랑이었던 나가세가 다가온다. 그러다 문득, 현재까지도 자신을 괴롭힌 옛 기억이 이곳에 남아 있다는 걸 떠올린다. 아버지는 그가 열네 살이던 해의 여름, 실종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갑자기 이야기는 미스터리 장르물로 전환된다. 히로시는 아버지의 실종을 막아야 한다. 아버지가 실종되면서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어머니는 생활전선에 나서고, 노모와 두 아이를 건사해야 했다. 그렇게 고생하며 살았던 어머니는 히로시의 현재 나이, 마흔여덟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건 히로시에게 큰 불행이었다. 아버지만 있었더라면, 실종 사건을 막을 수만 있다면 모든 건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을까?



# 구라요시의 옛 거리, 시라카베도조군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谷口ジロー)는 어디까지나 작품이 ‘픽션’임을 강조한다. 작품의 내용이 너무 현실과 가까워지면 만족스러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고향, 돗토리현 구라요시를 <열네 살> 이야기의 무대로 세워 자전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게 두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도 히로시네처럼 양복점에서 재단사로 일했다. 그래서 다니구치 지로의 아버지는 또 다른 작품 <아버지>에서 주인공의 아버지가 사망한 것으로 나오자 ‘나는 살아있는데 왜 죽이냐’고 지적했다는 일화도 있다.

     

에도시대부터 상공업 도시로 발전한 구라요시의 옛 거리도 만화 속에 그대로 재현했다. 시라카베도조군은 붉은 기와와 하얀색 벽면을 가진 건물이 늘어선, 전통건축물 보존지구다. 초판본의 표지에는 시라카베도조군의 상징과도 같은 우츠부타마가와(打吹玉川) 옆에 교복을 입고 서 있는 히로시를 담았다. 그의 어린 시절 모습을 투영한 것처럼.


<열네 살(遥かな町へ)> 초판본 표지로 사용되었던 일러스트

     

스스로 ‘만화왕국’이라 칭하는 돗토리현 출신의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이 구라요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대대적으로 홍보수단으로 사용할 만도 하다. 하지만 그 흔적은 의외로 찾기 어렵다. 한 기념품 가게에서 관광객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높은 벽에서 다니구치 지로의 그림을 확인했을 뿐이다. 1998년 발표되어 워낙 오래전 작품이니 그럴 만한 걸까. 게다가 다니구치 지로는 일찍이 일본에서보다 유럽에서 예술성을 인정받은 작가다. 특히 <열네 살>은 2003년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시나리오상을 수상하고 유럽에서 유명세를 얻었는데, 이는 유럽의 주요 만화 페스티벌에서 처음으로 큰 상을 일본에 선사한 사건이었다. 한국에서도 그의 이름은 낯설다. 그렇지만 인기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원작 만화를 그린 사람이라고 하면 아, 그 사람! 이라며 손뼉을 딱, 마주칠 것이다. 

   

일본 돗토리현 구라요시 옛 거리

  

문학적인 색채가 짙은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는 흑백 화면을 종이 위에 잔잔히 흘려보낸다. 그의 이야기와 함께 시라카베도조군 거리를 따라 걸으면, 일본인이 그리워하는 영광의 그 시절이 모습을 드러낸다. 히로시가 열네 살로 돌아간 1963년은 활력이 넘실대던 쇼와시대였다. 신칸센에 컴퓨터 시스템을 도입하고, 1년 후에 있을 도쿄 올림픽 개최로 온 국민이 흥분 상태였을 테다. 그러나 동시에 개인은 시대의 빠르게 몰아치는 흐름이 버거워 허덕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평범하고 평온하지만, 속으로는 불길이 타올라 괴롭혔다. 누군가는 살아오며 놓친 것이 무엇인지 뒤를 돌아본 순간, 후회와 절망만이 남았을 지도.   


히로시는 아버지가 왜 실종되었는지, 아니 경찰의 말에 의하면 어째서 ‘스스로 모습을 감추었는지’ 그 이유를 캐내려 한다. 숨겨둔 여자가 있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 건 가장 그럴듯한 사고의 흐름이었다. 또, 히로시는 집안의 제단에 올려진 낯선 남자의 정체가 다름 아닌 어머니의 전 남편이라는 사실에도 접근했다. 어머니는 태평양 전쟁 중에 부농의 후계자였던 사람과 결혼했지만, 그는 전쟁에 동원되어 유골함 안에 놓인 채 돌아왔다.

      

여기서 독자라면 합당한 의문을 품게 된다. 아무래도 히로시는 아버지의 친아들이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이해의 여지가 있다. 재혼하면서 얻은 자식을 친자식처럼 키우면서 남모를 고통이 있었던 걸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히로시는 아버지의 친아들이 맞았고, 아버지에겐 숨겨둔 여자도 없었다. 히로시의 아버지는 대체 왜,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을 두고 사라졌을까.



# 자발적 실종 혹은 잠수타기     


일본에서는 ‘증발(蒸發)’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사회적 현상이 있다. 일본 사회 극히 일부의 일탈적 행위가 아니라, 어느 정도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며, 일본인들은 그들이 증발을 선택하는 상황에 공감하기도 한다. 증발하는 사람들은 원래 살던 가족과 마을을 떠나 전혀 다른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려고 한다. 스스로 이름을 지우고, 신분을 위조해서 사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일본 외 다른 나라에서는 잘 들어보지 못하는 특수한 현상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비슷한 의미로 ‘잠수탄다’는 표현이 있다. 그러나 잠수는 ‘잠수이별’처럼 대상이 한정적이거나, SNS 계정을 탈회하는 방식으로 잠시 본인을 공동체에서 아웃시키며 심리적 안정을 취하려는 행동이다. 그리고 잠수를 타는 사람에 대해 사회는 그가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 기대한다. 잠수의 끝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땅으로 꺼져버리고 싶다, 숨어버리고 싶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새로 시작하고 싶다. 그런 마음은 누구든 품을 수 있는 보편적인 환상이다. 친구, 부양가족, 책임감, 월급, 고지서, 간병, 대출이자…, 이런 단어가 족쇄가 될 때 갑갑함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홀가분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젊은 시절 가졌던 꿈은 뭐였더라? 돌이켜보는 것도 이해된다. 그럼에도, 구라요시 역 앞에서 아들의 손을 뿌리치고 떠난 아버지의 모습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고작 열네 살짜리 아들에게 가족을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훌쩍 떠나버린 아버지의 뒷모습은 비정하고 잔인하기까지 하다.

      

히로시는 열네 살로 다시 돌아왔지만, 아버지의 실종을 막지 못했다. 아버지는 또 다시 사라졌고, 오히려 아버지의 입을 통해 확실하게 사라지겠다는 의지를 확인해버렸다. ‘내 나이가 되어보면 너도 알 거야….’ 그리고 히로시는 도쿄의 가족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돌아갈 생각도 하지 않은 건 본인이었고, 아버지와 같은 마음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아버지를 설득했더라면, 첫사랑 나가세와 이루어졌더라면, 우등생으로 승승장구했더라면, 하는 상상은 그저 판타지였을 뿐. 아득히 멀어지고 있었던 건 히로시가 온전히 살아야 할 현실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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