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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 만화, 게게게의 기타로

게으름뱅이로 살라던 미즈키 시게루 기념관

# 여행은 시간이 날 때 가는 게 아니었다


너무 가깝고 언제든 쉽게 떠날 수 있어서 오히려 가보지 못한 여행지들이 있다. 일본만화를 좋아하는 내가 오랫동안 꼭 가고 싶은 여행지로 꼽아 왔던 일본 돗토리(鳥取) 현이 그랬다. 


돗토리현은 일본 내 수많은 만화 성지들 가운데서도 ‘만화왕국’이라 자처할 정도로 자부심이 있는 지역이다. 이곳이 배출한 만화가들의 이름을 나열하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요괴 만화의 시초가 된 미즈키 시게루, 세계를 무대로 만화상을 휩쓸고 다닌 다니구치 지로, 그리고 명탐정 코난을 만들어낸 아오야마 고쇼가 돗토리현의 3대 만화 거장이다. 


그뿐만 아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업계의 대부라 불리는 모리 야스지(森康二), 추억의 육성시뮬레이션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의 그림을 그린 아카이 타카미(赤井孝美) 등이 모두 돗토리현 출신이다. 이만하면 돗토리현은 만화왕국이 맞다.


만화왕국 돗토리현 3대 거장(왼쪽부터 미즈키시게루, 아오야마고쇼, 다니구치지로)


일본 돗토리현은 의외로 쉽게 갈 수 있다. 돗토리현의 도시 사카이미나토에 요나고 공항이 있는데, 이곳은 아시아나항공이 2001년 처음 취항한 이후 2016년 에어서울로 이관하여 현재까지 이어진다. (지금은 배편이 없어졌지만 사카이미나토에는 항구가 있어 동해항에서 DBS 페리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환승 없이 직항으로 연결되는 항공노선이 있다는 건 여행을 아주 편리하게 만든다. 스카이스캐너 결괏값 속 ‘직항 1시간 30분’ 표시는 심리적 거리감을 확 줄여준다. 그렇게 나는 ‘요나고 여행을 가야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좀처럼 기회를 잡지는 못했어도 언제든 휙 떠날 수 있는 그런 여행지라고 생각했다. 대단한 착각이었지만!

     

2019년, 한일무역분쟁으로 인해 양국 간 분위기가 얼어붙더니 요나고 노선이 잠정 중단되었다. 속으로 약간 놀랐지만, 어차피 일본과의 관계는 회복될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2020년 초,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감염병의 영향으로 중단 기간이 무기한으로 변경되었다. 이제는 요나고뿐만 아니라 아예 일본을 갈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일본이 문제가 아니었다. 해외 출장이 잦은 직장을 다니던 나는 담당한 업무의 성격이 완전히 바뀌면서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박물관으로 이직하고, 코로나로 인해 굳게 문을 닫은 박물관 학예실 안에서 갇혀 있게 되었다. 온라인 박물관으로 직장의 활로를 모색하는 사이, 감염병 상황은 점차 나아졌고 하늘길도 많이 회복되었다. 그렇지만 요나고 노선은 복항 될 기미가 없었다.

     

코로나 이후, 첫 여행지로 아이슬란드를 선택했다. 휴가를 싹싹 긁어서 3년 만에, 2주간 떠나는 오로라 헌팅 투어였다. 인천에서 런던까지 15시간, 다시 런던에서 케플라비크까지 3시간 비행이니 상당한 이동 거리다. 하지만 아이슬란드보다 요나고를 가는 게 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나고 노선은 아직도 감감무소식이고, 간사이국제공항으로 입국해 돗토리현까지 자동차나 기차로 이동할까 생각도 했지만 편도 6시간이 넘는 거리다. 아이슬란드까지 18시간인데 왜 요나고행이 더 힘드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요나고가 일본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일본은 금요일 하루 연차를 써서 2박 3일간 다녀오는 여행지인데, 간사이국제공항을 이용한다면 돗토리까지 왕복 12시간이니 시간이 어림도 없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해서 연차를 하루 더 사용하기엔 아까운 마음이다. 요나고 직항만 다시 생긴다면 연차를 희생시킬 필요가 없는데! 일본여행에 정말 연차를 이틀이나 써야 하는가? 답답한 노릇이다.

     

드디어 2023년 10월, 요나고 노선이 부활했다. 이제는 앞뒤 재지 않고 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언제든 갈 수 있는 여행지란 없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하물며 제주도조차도 일부러 시간을 내지 않으면 쉽사리 갈 수 없는데! 에어서울이 다시 요나고 공항으로 비행기를 띄운다는 소식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요나고 여행을 위해서 시간도 내고, 마음도 내야 한다. 언제든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미루다 보면, 언제고 갈 수 없게 되어버린다.



# 요나고 공항부터 벌써 '미즈키 시게루 로드'


돗토리현에 도착했다. 감격에 벅차올라 눈물도 찔끔 나왔다. 내가 여길 오다니! 에어서울 항공이 출범하기 전부터 꿈꾸던 여행지가 아닌가. 신기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얼떨떨한 감정. 예상했던 것처럼 요나고 공항은 만화왕국의 면모를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요나고 공항은 미즈키 시게루의 요괴만화 <게게게의 기타로(ゲゲゲの鬼太郎)>에서 주인공 이름을 따 ‘요나고 기타로 공항’이라고도 불린다. 공항의 유리창에, 포토부스에, 공항버스에 기타로와 요괴 친구들 그림이 도장되어 있다. 아, 여기가 돗토리현이구나. 마침내 만화로 먹고사는 동네에 온 것이다.


요나고 공항에서 '게게게의 기타로'를 찾아보았다.


공항이 위치한 사카이미나토시(境港市)는 기차역을 가봐야 한다. 사카이미나토 기차역 앞은 열차가 들어오길 기다리는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정문에는 미즈키 시게루가 책상 앞에 앉아 만화를 그리면서 요괴들과 환담을 나누는 듯한 모습의 동상이 있다. 미즈키 시게루의 맹한 표정이 귀여워서 접사촬영을 하려는데, 갑자기 어떤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왔다.

     

“사진을 그렇게 찍으면 안 돼요. 그러면 여기가 어딘지 모르잖아요? ‘사카이미나토’ 기차역이 사진 속에 딱 보여야죠.”

     

관광객을 위한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할아버지의 열성적인 코치에 나는 ‘앗, 그렇네요’라고 대답하면서 자세를 고쳤다. 기차역 파사드가 완전히 잘 보이게. 이윽고 열차가 승강장에 들어온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다른 관광객들을 총총걸음으로 따라가 요괴 그림으로 래핑 한 열차를 연속촬영했다. 이곳은 이렇게 사진을 찍어야 하는 요괴만화 관광지다.


사카이미나토 역 앞 동상
사카이미나토 역으로 들어오는 열차


사카이미나토역은 요괴만화 여행의 출발점이다. 이곳에서 미즈키 시게루 기념관까지 ‘미즈키 시게루 로드’가 약 800미터 정도 이어진다. 자동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한적한 시골 도로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상점들이 쭉 늘어선 길이다. 대부분 미즈키 시게루가 그린 캐릭터가 담긴 각종 기념품, 과자, 그림을 파는 가게다. 그리고 가게 앞에는 도장 깨기 즐거움을 주는 요괴 스탬프도 있고, 괴이한 모습을 한 요괴 동상도 있다. 요괴 동상은 170개가 넘는다고 한다. 네즈미오토코(생쥐인간), 잇탄모멘(천 요괴), 누리카베(벽요괴) 등이 눈에 띄지만, 만화를 읽었어도 모든 요괴를 다 알긴 어려울 정도로 많다. 

     

갑자기 조용한 미즈키 시게루 로드에서 큰 소란이 났다. 네코무스메(고양이소녀) 인형탈을 쓴 사람이 관광객을 맞이하려고 가게에서 나오자 아기들이 놀라 울음을 터뜨린 것이었다. 자기 때문에 운다는 걸 알고 네코무스메는 민망하다는 듯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가게 뒤로 숨으려고 했지만, 머리가 커서 잘 가려지지 않았다. 그 덕분에 길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은 ‘네코무스메가 무섭게 생기긴 했지!’라면서 웃었다. 네코무스메는 평소엔 얌전하고 귀여운 소녀 같다가 배가 고프면 괴물 같은 얼굴로 돌변한다. 


고양이소녀가 무서워서 우는 아이들. 오른쪽은 고양이소녀의 동상이다.

    

일본 사람들은 참 요괴를 좋아한다. 한국의 요괴는 도깨비나 구미호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데, 일본은 별의별 요괴가 다 있다. 지역별로도 요괴 이야기가 발달해서 홋카이도의 설녀라던가, 이와테현의 늪에 사는 갓파, 니가타현에는 팥 씻는 요괴가 있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사물이나 자연현상을 보고, 어떤 영적인 존재가 깃들어 그의 의지가 반영되는 것이라 여겼다. 예를 들어, 산속에서 ‘야호’라고 외치면 건너편에서 다시 메아리로 돌아오는 현상에 대해서도 산속에 사는 ‘야마비코(山彦)’ 또는 ‘코다마(木霊)’의 짓이라고 생각했다. (코다마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모노노케 히메>에서도 딱딱거리는 소리를 내며 등장한다.) 

    

또, 화장실에서 끼익끼익하는 쇳소리가 들리면 변소의 신 간바리뉴도의 짓이라고 생각하거나, 냄새나는 걸레를 부엌에 오래 방치하면 시로우네리라는 요괴로 변한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그런 식이다. <게게게의 기타로>를 보면 한 가정집 안에도 얼마나 많은 요괴가 왔다 갔다 할 수 있는지 놀라울 정도다. 

     

2024년 4월에 재개장 예정인 미즈키 시게루 기념관 앞에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다시 사카이미나토 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한적한 광장에 방긋 웃고 있는 미즈키 시게루의 동상을 만났다. 그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なまけ者になりなさい”     


어려운 말은 아니다. ‘나마케모노(なまけ者)’는 게으름뱅이란 뜻이다. 그러면 ‘게으름뱅이가 되세요’라고 써 놓은 건가? 이게 대체 무슨 말이람?  

   

근면성실함이 미덕인 건 만국공통, 고금의 진리인데 이게 무슨 뜻인 걸까? 반어법인가? 아니면 소위 말하는 ‘어그로’인 것인가? 혹시 ‘나마케모노’에 다른 뜻이 있나 싶어서 일본어 사전을 뒤적여보았다. 역시 ‘게으름뱅이’가 맞다.    

  

여행을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야 돗토리현을 찾아온 나에게는 미즈키 시게루 선생이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드디어 왔구나, 이 게으른 녀석아.”


미즈키 시게루 동상 ('게으름뱅이가 되세요'라고 적혀있다)



# 게으름뱅이가 되세요


게으름뱅이가 되라는 말을 남겼지만, 미즈키 시게루의 작품과 생애를 보면 이런 일 중독자가 따로 없다. 그는 2015년, 93세로 타계할 때까지 현역 만화가였다. 작품목록을 보면 사망한 그 해에도 잡지에 <나의 나날들(わたしの日々)>이라는 만화를 연재한 사실이 있다. 은퇴도 하지 않고 평생을 일만 한 것이다. 그것도 만화를 그리는 일이라면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체력이 달릴 수도 있는 노릇인데, 어떻게 그렇게까지 일을 할 수 있었던 걸까? 

     

미즈키 시게루의 대표작인 <게게게의 기타로>는 한국에서 그다지 알려진 작품이 아니다. 워낙 오래되어 케케묵은 작품이기도 하고, 한국에는 없는 일본 설화 속 요괴들이 주인공이라서 그런 듯하다. 다만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애니메이션화된 <악마군(悪魔くん)> 방영을 시작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국내에서도 원작 만화가인 미즈키 시게루(水木しげる, 1922~2015)에 대한 인지도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한편, 일본에서 미즈키 시게루는 요괴 만화의 선구자이자 요괴 붐을 일으킨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원래 1950년대 <묘지의 기타로(墓場鬼太郎)>라는 제목으로 단편을 발표했던 것이 만화잡지에 정식 연재되고, 1968년부터는 TV 애니메이션 <게게게의 기타로>로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사라져 가는 민속학 용어에 불과했던 ‘요괴’를 단숨에 대중문화 속으로 끌고 들어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동시에 미즈키 시게루는 요괴 연구가였다. 만화작업을 하면서 민속학자 야나기타 쿠니오(柳田国男)와 요괴 우키요에를 그린 화가 도리야마 세키엔(鳥山石燕) 등의 영향을 받고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그는 일본민속학회 회원이기도 했으니 얼마나 요괴 연구에 진심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일본에 전래되던 수많은 요괴 자료를 수집하고 이야깃거리로 삼아 만화 속 개성 있는 캐릭터들로 재창조했다. 오늘날 일본인들이 머릿속에 떠올리는 요괴의 이미지는 대부분 미즈키 시게루의 만화 속에 그려진 모습이다.

      

현재도 요괴 만화는 일본 만화산업계에서 주류를 이룬다. 최근 히트작인 <주술회전(呪術廻戦)>, <귀멸의 칼날(鬼滅の刃)> 등이 요괴를 주요 소재로 다루었고, 다양한 종류의 요괴가 대거 등장하는 <백귀야행(百鬼夜行抄)> <나츠메 우인장(夏目友人帳)>, <오늘부터 신령님(神様はじめました)> 등 대중적인 만화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출간되었다. 모두 미즈키 시게루가 정립했다고 할 수 있는 ‘요괴 만화’의 커다란 틀에서 존재하는 작품들이다.

     

이렇듯 대단한 족적을 남긴 미즈키 시게루에게는 반전이 하나 있다. 그에게 팔이 하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태평양 전쟁 중에 폭격으로 왼팔을 잃었고, 서른여섯의 다소 늦은 나이에 만화가로 데뷔하게 되었다. 당시에 집안도 가난하고 신체도 자유롭지 않아 좌절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미즈키 시게루는 어떤 일이든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았다. 게다가 만화를 그릴 수 있는 한 팔이라도 남아있음에 감사했다.

     

“나는 왼팔이 없어도 다른 사람보다 세 배는 일했어요. 양팔이 다 있었다면 여섯 배는 일했을 겁니다.”  

   

근면하게 살아온 삶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이는 미즈키 시게루의 말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왜 ‘게으름뱅이가 돼라’는 말을 남겼을까? 요괴 만화가의 미스터리한 한 마디에 미즈키 시게루의 제자였던 쿄고쿠 나츠히코(京極夏彦)는 ‘게을러도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 돼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는 원고에서 잠시 눈을 떼 창밖의 나무를 바라보는 것으로도 숨이 막혔다고 한다. 일을 할 때 그 정도로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게으름뱅이가 돼라’는 말은 자신에게 하고 싶은 조언일지도 모른다. 미즈키 시게루는 젊을 때 열심히 일하는 게 물론 중요하지만, 유쾌하게 게으름을 피우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사람이었다. 어떻게든 입에 풀칠할 정도가 되면, 연재를 줄여서 시간을 만들어 요괴 이야기도 수집하고 요괴가 사는 곳을 찾아다니는 ‘요괴 여행’을 떠났다고 말했다. 그게 미즈키 시게루가 생각한 행복이었다.  

   

그의 말에 힘이 있는 건 그가 결코 게으름뱅이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공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요괴 여행’ 즉 좋아하는 걸 추구하면서 일해야 한다. 그렇다. 연차 아까워하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만화 여행을 떠나자. 어차피 쉬라고 있는 날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열심히 일하자. 그런 게으름뱅이로 살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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