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의 행복한 노후
애타게 목을 빼고 기다리던 “폭싹 속았수다” 3부가 3월 21일 드디어 시작됐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요망진 반항아’ 애순이와 ‘팔불출 무쇠’ 관식이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사계절로 풀어내는 이 작품은, 봄과 여름을 그린 1·2부가 지난주 막을 내린 뒤, 이번엔 가을 이야기를 품은 3막으로 돌아온 것이다.
특히 이번 시즌은 애순과 관식의 시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금명’의 인생 여정까지 확장되며 더욱 짙어진 서사를 예고한다.
‘금명’은 ‘영범’(이준영)과 설레는 사랑을 키워가며, 새로운 행복의 페이지를 써 내려간다.
어린 시절 금명을 보며 어떤 어려움도 막아주겠다 다짐했던 20대의 애순과 관식.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두 사람의 애정은, 성장의 고비에 선 금쪽같은 딸 금명을 다정하게 감싸고 응원하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그들에게 언제나 자랑스러웠던 딸이 세상 속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애순은 아픔마저 함께 나누고, 관식은 말없이 든든히 곁을 지킨다.
가을 하면 괜스레 마음 한켠이 서늘해지기 마련인데, 이번 9회도 어쩐지 눈물샘을 자극할 것 같아 기대와 걱정을 안고 문을 두드렸다.
8회 마지막 장면에서, 일본 유학길에 오른 금명이가 비행기 안에서 엔화 뭉치로 가득 찬 보따리를 펼쳐보다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옆자리의 아저씨는 신문을 보다 말고 슬쩍 옆자리의 아가씨를 바라보고 있는데, 순간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랑 우리 집 양반은 동시에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 쟤는 어쩌자고 저런 데서 돈을 꺼내… ”
게다가 서울대학교 대학생이 그런 허술한 짓을 하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그렇게 허무하게 8회가 끝나버렸다.
남은 일주일 내내, 머릿속은 온통 그 돈 걱정뿐이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는 건 아닐까,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우리 집 양반 역시, 그 돈이 어떻게 됐을까 궁금해서, 계속 나한테 묻고 또 물어온다.
“아니, 그 돈… 도대체 어떻게 됐냐고… ”
그런데 9회가 시작되자마자 등장한 금명이의 초라한 모습에 또 한 번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집 팔아서 어렵게 유학 보냈는데, 돌아온 애가 왜 저리도 궁상을 떨면서 살아야 하는지 답답함이 밀려온다.
더구나 눈을 의심케 하는 끔찍한 하숙집 풍경은 할 말을 잃게 한다.
달동네 허름한 골목, 어느 하나 멀쩡한 곳 없는 폐가 같은 집이, 유학까지 다녀온 금명이의 거처라니, 아무리 봐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허름한 방 안 구석구석이 금방이라도 다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데, 어쩌다 이런 곳에서 집까지 팔아 유학 보낸 딸이 지내야 하는지, 보는 내내 할 말을 잃는다.
동경 유학까지 다녀온 사람이, 직접 번역 일을 맡겠다며 ‘일본어 통-번역’이라는 전단지를 손수 만들어 거리에 뿌리고 다니는 모습을 보니 속이 문드러진다.
행여 애순이랑 관식이 눈에 띌까 봐 내가 다 조마조마했다,
금명이의 내레이션을 통해 그동안의 사정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드라마에서처럼, 유학 한 방으로 금 동아줄이 뚝 떨어지지는 않았고…“
” 인생은 참, 차근차근하게 흐르는 거였다.“
하숙집 주인집 딸과의 인연으로 알게 된 화가 충섭을 전단지 붙이는 곳에서 우연히 만나, 덕분에 극장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게 된다.
하지만 왜 하필 그때 배경음악으로 그 유명한 ‘사랑과 영혼’의 주제가였던 ‘unchained melody’ 가 흘러나오는데 소름이 끼칠 정도로 아름다우면서도, 뭔가 금명이의 새로운 인생을 예고하는 것 같아 또 불안감에 휩싸인다.
부디 더 이상 애순이랑 관식이 마음 아프게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애순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희생을 감수하며 딸을 유학 보내줬는데…
그 돈이 어떤 돈인데…
왜 저렇게까지 어렵게 살고 있는지, 안쓰럽고도 얄밉다.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기어코 사단이 나고야 만다.
방 안 구들장이 제대도 되어있지 않다 보니, 그곳에서 연탄가스가 새어 나오는 것을 맡고는 금명이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다.
어릴 적부터 온 갖 위험한 일을 겪을 때마다, 귀신같이 나타나 딸을 구해주던 슈퍼우먼 같은 엄마는, 며칠 전부터 계속 뒤숭숭했던 꿈자리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결국 딸을 찾아왔다.
그 덕분에, 이번에도 어김없이 금쪽같은 딸을 구해낸다.
워낙 골목이 좁고 가파르다 보니 구급차도 올라오지를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마침 그 집을 방문했던, 극장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화가 충섭이, 금명이를 등에 업고 험한 길을 내려가, 가까스로 응급차에 태운다.
그 덕분에 금명은 무사히 의식을 되찾고, 기력을 회복하게 된다.
쓰러진 딸을 품에 안고 오열하는 애순의 모습이 너무도 처절하다.
어린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던 그 비극적인 기억이 겹쳐지며, 애순의 통곡은 보는 이의 가슴까지 미어지게 만든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얼마나 두려웠을까…
자식 앞세운 부모의 심정을 누가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저리도 자식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속 끓이고 하다가 제명에 못 살까 봐 지레 겁이 난다.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상견례 자리에서 대 놓고 핀잔을 주는 사부인한테 한 마디 하는 애순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 너무 귀해서, 너무 아까워서 아무것도 안 가르쳤다고… ”
아무것도 못 해야, 그 힘든 부엌 살이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나서서 부엌 일을 배웠던 난, 친지들 집에 놀러 가면, 늘 부엌으로 불려 갔다.
아무것도 못 하고 귀하게 자란 언니들은, 따뜻한 온돌방에서 이불 덮고 놀고 있었다.
살아보니 참 이상하더라.
이것저것 스스로 알아서 하던 나는, 늘 일복이 넘쳐흘렀고, 일 못하던 언니들은 그야말로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더라.
그런데 인생에 정답은 없듯이, 만약 내가 아무것도 못 해서 도우미한테 도움을 받는다거나, 반찬을 일일이 사다 먹는다고 생각하면 행복하지 않았을 것 같다.
내 손으로 만든 음식을, 가족이나 다른 이가 아주 맛있게 먹을 때 느끼는 행복. 그리고 돌아가는 손에 바리바리 싸서 보내는 그런 기쁨들을 생각하면, 일에 치여 살았다고 크게 불행해 한 적은 없었다.
다 자기 주어진 몫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결혼식에 입을 한복을 맞추러 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고약한 예비 시어머니가 함께 자리를 하고 있다.
잔잔한 꽃무늬가 어우러진 분홍색을 좋아하는 애순이를 보고, 금명이는 이걸로 하자고 제안한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예비 시어머니, 기어코 한마디 한다.
촌스러우니까 옥색으로 하라고…
자기 집에서는 할 말 다 하면서 살던, 그 억척스럽던 애순이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시키는 대로 한다.
속이 터진다.
이런 집에는 절대로 시집을 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며, 고쳐 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했다.
그 고약한 성격이 어디 가겠는가…
고약한 성격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결국 애순이를 따로 만나는 사랑하는 영범이의 어머니.
있는 힘을 다해 마련한 예단 지갑을 제대로 받지도 않으면서, 귀찮다는 듯이 자신의 샤넬 가방 위에 휙 던져버리는 무례함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 너무도 의아하다.
그 시절에도 저런 샤넬 가방이 있었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러고는 이 결혼, 도저히 창피하고 맘에 안 드니까, 제발 말려달라고 애순이한테 건방지게 말한다.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얼마나 소중한 자식인데, 이런 모욕을 당해야 하나…
그래도 금쪽같은 내 새끼가 좋아한다니까, 그저 입술을 깨물고 참을 수밖에…
애순이의 피 터지는 심정을 알고도 남는다.
그 시절에도 이런 갑질이 있었구나…
“이 결혼하면, 우리 엄마 아빠 울어 ~~”
더 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겉으로는 툭툭 거리고, 쌀쌀맞고, 자기밖에 모르는 것 같아도, 속으로는 부모님의 헌신과 사랑을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자기 부모가 자신을 어떻게 키워왔는지…
자신에게는 아무리 모진 말을 해대도 꾹 참아 넘기던 금명이었다.
하지만 평생 가족들을 지켜오느라 그 어떤 힘든 일도 마다않고 해온 아빠의 거친 손을 보고, 너무 창피하다는 등, 그런 노가다 손은 태어나서 처음 본다며 자기 부모를 깎아내리면서 선을 넘어오는 예비 시어머니의 무례함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특히, 너무나 사랑하는 내 엄마를 따로 만나 모진 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결국 더 이상은 아니라는 생각에 이 결혼 안 하겠다고 선언을 한다.
그러면서 사이다 발언을 한다.
“내가 지금까지 어머니를 참아드린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들인 영범이가 어머니를 얼마나 부끄러워할지 너무너무 잘 알기에 참은 것입니다.“
“나는, 우리 부모님은 하나도 안 부끄럽습니다. 이 결혼을 준비하는 내내, 어머님 댁보다 우리 집이 훨씬 더 품위 있었습니다.”
속이 다 시원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가끔은 필요할 때도 있다.
엄마, 아빠의 자존심을 지켜준 금명이가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다.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가진 거라곤, 돈과 높은 콧대밖에 없는 어머니를 둔 영범의 미래가 너무도 불쌍하다.
하늘이 내려주신 아내감을 잃은 것이다.
지금까지 금명의 자기밖에 모르는 성격 때문에, 애순이 그 사연 많고 정겨운 집을 결국 팔고 허름한 아파트로 이사 가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금명이가 너무도 얄미웠었다.
어쩜 저리도 부모를 피눈물 나게 할까….
그래도 속으로는 자기 엄마 아빠를 자랑스러워하고, 아끼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서 용서하기로 했다.
당당하게 파혼을 선언하고 나와서 집으로 가는 길에 금명은 택시에 몸을 실었다.
때마침, 라디오에서는 김일성 주석의 사망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러한 뉴스 속보와 맞물려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로 인해, 금명은 서러움에 목놓아 울기 시작한다.
이를 본 택시 기사의 표정은 당혹스러움 그 자체였다.
김일성의 사망 뉴스와 동시에 터져 나오는 여자 승객의 오열에 기가 막혔는지, 택시 기사는 라디오 볼륨을 최대한으로 올린다.
그 장면을 타고 나오는 아이유의 “나는 간첩으로 오해받았다”라는 내레이션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1994년 7월 8일에 김일성은 사망했다.
사랑하는 연인의 파혼 선언에 매일 같이 집으로 찾아와서 울고불고, 애원하는 영범이를, 마지막 헤어지면서 보여주는 금명의 태도가 참 어른스럽다.
“나, 너 정말 많이 좋아해.”
“하지만 나도 너무 좋아해, 그래서 이 결혼을 할 수가 없어. ”
그저 흐느끼는 남자 친구를 달래가면서, 그동안 참 고마웠다고, 나의 20대를 기억할 때, 그 속에 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한다.
이렇게 두 사람의 오랜 사랑은 막을 내렸다.
이렇게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는 금명이를 바라보면서, 역시 “요망진 애순”이의 딸, “요망진 금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뉴스를 보면, ‘데이터 폭력’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좋다고 사귈 때는 언제고, 왜 꼭 그렇게 끔찍한 마무리들을 하는지, 안타깝다.
딸을 둔 부모들은 마음 놓고 연애도 시키기 어려운 세상이다.
금명이와 영범이의 깔끔한 이별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파혼한 후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던 금명은 결국 엄마, 아빠를 찾아 고향으로 내려온다.
그 딸을 보고 반기는 애순과 관식이의 모습이 너무 짠하다.
그렇지 않아도 제대로 먹지도 못할까 봐, 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서 바리바리 싸 들고 올라갈 참이었는데, 때마침 찾아와준 딸이 반가워서, 마냥 행복에 들뜬 애순과 관식의 모습에 괜스레 또 눈물이 난다.
자기네들은 전기세가 무서워서 쓰지도 않고 모셔뒀던 전기 곤로를 가져와서 딸 코앞에다가 들이댄다.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라고…
그야말로 불면 날아갈까, 안으면 깨질까 염려하며 애지중지 키운 딸이다.
자는 애를 깨워서라도 더 먹이고 싶고, 하품하는 순간에도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는 엄마의 마음이 가슴이 시리도록 아프게 다가온다.
이러한 장면들에 아마도 외국 시청자들이 환호하는 것 같다.
결코 느껴볼 수 없었던 엄마의 무조건적인 사랑 ……
먹고 자고, 또 먹고 자며 금명은 서서히 기운을 되찾았다.
이게 바로 ‘집밥’의 힘이다.
부모의 한도 끝도 없는 사랑 앞에, 늘 속 썩이고, 쌀쌀맞고, 말대답이나 하는 자식들이 너무 얄밉고 속상하다.
옛말 그른 것이 하나 없다.
“너도 시집가서 딱 너 같은 딸만 나아봐.”
새벽녘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이유로, 관식은 잠든 딸 금명을 깨워 작은 배에 태우고 바다로 나간다.
행여 추울 세라 염려한 아빠가, 있는 대로 꽁꽁 싸맨 아이유의 모습이 너무 귀엽다.
‘딸 바보’가 이때도 있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그 시절의 아빠가 아닌 것이다.
배 위에서 간단히 요기하라고 엄마가 만들어준 반찬과 함께 ‘팔도 도시락’이라는 것이 눈에 띈다.
이 제품은 1986년에 국내 최초로 사각 용기에 담긴 라면으로 생산된 것이란다.
아마도 이 제품 역시 글로벌하게 팔려 나갈 듯…
오징어잡이 배의 선장인 부상길은 빌런이면서도 개그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는 관식과 딸이 새벽해를 보기 위해 함께 배를 타고 나갔다가 내리는 것을 보고는, 겉으로는 온갖 미운 말을 다 쏟아내지만, 속으로는 부러웠나 보다,
부상길은 그때 그 시절의 전형적인 권위주의적인 가장으로, 젊었을 때는 바람도 피우고, 아내를 폭행하는 등 온갖 못된 짓을 저질렀다.
그러나 막상 노년으로 접어들면서는, 가족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외면당하는 처지가 된다.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평소 욕하는 것 외에는 대화라는 것을 안 하고 살던 부녀지간인데, “우리 배 타고 새벽해 보러 갈까?”라고 넌지시 말을 붙여보려 하지만, 이 집은 늦어도 너무 늦은 것 같다.
그러게 평소에 좀 잘하지…
그때 그 시절의 많은 아버지들이 그렇게 살았다.
마누라나 자식은 자신의 소유물인 줄 알고 마냥 못되게 하고 함부로 대하던 시대였다.
그렇게 살아오다가 늙고 병들고 나서 철이 들어 후회하는 못난 남편들이 참 많았던 것이다.
그때 그 시절에는 남편이 밖에서 살림 차리고 자식까지 만들어서 살다가도, 늙고 병들어 결국 갈 곳이 없어 조강지처를 찾아오면, 아무 말 없이 받아주는 그런 부처님 반 토막 같은 아내들도 참 많았다.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요즘 젊은 남편들의 모습을 보면 너무도 좋게 변한 것이다.
김난도 교수님이 “트렌드 코리아 2024“에서 새로운 키워드로 만드신 것이 바로 ”요즘 남편, 없던 아빠“였던 것이다.
요즘 남편의 필수 덕목이 ‘눈치력’이라고 할 만큼, 요즘 남편은 눈치껏 해야 살아남는단다.
아무리 마누라가 속상해서 울어도, 왜 우는지조차 모르는, 눈치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 우리 집 양반을 어찌해야 좋을지…
쌀쌀맞은 딸내미가 엄마 집을 떠나면서 식탁 위에 자그마한 선물을 놓고 갔다.
아마도 그 당시에는 귀했던 NIVEA 크림을 아끼지 말고 꼭 바르라는 말과 함게, 밥값이라면서 용돈까지 놓고 간 것이다.
우리나라에 니베아 크림이 들어온 것이 1982년이었다니까, 아마도 그 시절 최고의 히트 상품이었나 보다.
뭐든지 아깝기만 한 딸이라, “지나 쓰지 이런 걸 왜 놓고 가냐"라며 또 울음바다를 만든다.
늙으니까 참 이상해지더라.
겉으로는 괜찮다고 하면서, 막상 자식이 쥐여주는 용돈이 그렇게 고맙고 신날 수가 없는 것이다.
괜찮다고 자꾸 사양하다 보면 어느 날 아주 안 주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니 자식이 주는 용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챙겨야 한다.
군에 간 아들이 집으로 오는 날, 애순은 기쁜 마음으로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음식을 준비했다.
문을 열어 아들을 맞이하는데, 뭔가 이상한 기운이 감돈다.
헤어진 줄 알았던 여자 친구를 데리고 왔는데, 그 여자애가 자꾸만 배에다 손을 갖다 댄다.
“왜 무섭게 자꾸 배에다 손을 대..”라고 말하는 애순이의 심정이 그대로 전해져 와서, 웃지도 못하고 같이 한숨만 나왔다.
웬수같은 집안의 딸이랑 연애를 하더니 기어코 배가 부른 상태로 나타난 것이다.
그 순하고 착한 관식이가 드디어 빗자루를 꺼내서 하는 말이 심란하면서도 너무 웃겼다.
“군대 가서 나라 잘 지키고 오랬더니… ”
그것도 하필 웬수같은 사람의 딸이라니…
속 썩이는 자식은 이래저래 사고만 친다.
그런데, 둘만 온 것이 아니다.
그 옆에 커다란 가방이 두 개나 있다.
성질 고약한 아버지가 출가도 안 한 딸의 임신 소식을 알면 가만두지 않을 것을 미리 알고, 아예 애순이의 집으로 피신 온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괜히 내 일처럼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심란하다.
“갈수록 태산이다”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인지…
9회부터 12회 끝날 때까지 박보검이 등장하기만 눈이 빠지게 기다렸는데, 그의 출연은 아쉽게도 극히 짧았다.
개인적으로 1회에서 4회까지가 가장 신나고 재미있었던 것 같다.
아이유와 박보검이 각각 “요망진 애순이”와 “팔불출 무쇠 관식이”로 나오면서 펼치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이 너무 좋았다.
물론 2부와 3부 역시 심금을 울리는 대단한 드라마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박보검의 출연이 적어진 것은 팬으로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2부 마지막에서 비행기 안에서 돈을 꺼내놓고 보던 장면이 영 불안했는데. 12회 끝날 때까지도 거기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서 더욱 아쉬웠다.
아마 다음 주 마지막 편에 이 이야기를 다룰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의 마음을 애태우는 것도 드라마 제작진의 기술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