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 책방 이야기
“할매” 황석영 작가님의 장편 소설을 처음 펼쳤을 때 나는 솔직히 조금 당황했다.
내 이름이 ‘업글할매’이다보니, 제목에 적힌 ‘할매’라는 두 글자만 보고 괜히 마음이 먼저 간 것이다.
아, 나 같은 할머니 이야기인가 보다 하고 혼자 웃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전혀 다른 세계였다.
그 사실에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새가 날아왔다.”
참으로 담백한 문장이다.
거대한 서사의 문을 여는 첫 장면이 겨우 새 한 마리라니,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설은 새와 곤충, 갯벌 생명 이야기로 이어진다.
조개, 작은 벌레, 흙 속에서 꿈틀거리는 존재들.
나는 그쪽으로는 완전 문외한이다.
평소 생태 이야기를 들으면 떠오르는 분이, 최재천 박사님이라는 것 외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서 초반에는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역사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작은 생명부터 시작할까 싶었다.
계속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망설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첫 고비를 겨우 넘기고 나니, 왜 사람들이 작가님을 거장이라고 부르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왜 그렇게 장대하게, 그리고 요란하게 시작했는지…
왜 인간이 아니라 가장 작은 생명부터 불러냈는지…
그 시작이 어떻게 거대한 이야기의 뿌리가 되는지…
작은 씨앗 하나가 거목이 되듯, 미세한 생명이 거대한 역사를 품는 구조였다.
읽을수록 잎에서 흩뿌려놓은 장면들이 하나씩 이어졌다.
마치 퍼즐이 맞춰지듯, 모든 이야기가 제 자리를 찾아간다.
그저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아, 그래서 거장이구나.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새가 날아왔다.”
그 새의 종류는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이 등장한다.
솔직히 다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개똥쥐빠귀’라는 이름은 또렷이 남아 있다.
아마도 그 새가 할매 팽나무의 시작과 이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제주에 내려오기 전까지 나는 팽나무를 잘 몰랐다.
그저 이름만 들어봤을 뿐이다.
그런데 제주에서 오래된 팽나무를 처음 마주한 순간, 나는 그 위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을 입구에 우뚝 서 있는 오래된 팽나무 아래에는 늘 어르신들이 모여 쉬고 있었다.
바람을 맞으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참 평화로워 보였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그 팽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그 마을을 오래도록 지켜온 큰 어른 같았다.
말은 없지만 모든 시간을 알고 있는 존재, 사람들을 품어 안고, 햇볕과 비바람을 대신 막아주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고마운 존재인 것이다.
황석영 작가님의 ‘할매’ 속에 등장하는 팽나무도 그렇다.
조선의 격량, 동학의 피바람, 일제 강점기의 아픔, 현대 개발의 그림자까지 모두 그 아래를 지나간다.
나무는 말이 없지만 모든 시간을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할매’, 이 작품을 쓰기 위해 황석영 작님은 400여권의 책을 모았다고 한다.
그중 144권을 책상 곁에 두고 4년 동안 집필하신 것이다.
불교, 노장사상, 동학, 천주교, 생물학, 인문학, 생태학, 자연 과학까지…
작가님의 머릿속에 이 모든 세계를 담아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밤을 보내셨을까 상상해 본다.
작픔 속 몽각 스님 일화에는 ‘삼국유사’의 ‘조선의 꿈’을 인용하고, 방지거 신부님의 서사에는 문정현 신부와 문규현 신부 형제의 삶을 녹여냈다고 한다.
거기에 팽나무 이야기, 어촌과 갯벌의 생태까지 더해졌다.
그 모든 출발이 바로 그 400권의 책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그리고 그 시간이 4년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책장을 다시 떠올렸다.
나는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편안한 의자에 앉아 페이지를 넘겼다.
감동이다, 대단하다 하며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그 문장 뒤에 쌓인 4년의 고독과 치열함을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졌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얼마나 많은 고민과 수정이 있었을까.
그 시간을 떠올리니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요즘은 참 빠른 세상이다.
몇 시간 만에도 전자책 한 권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물론 그 또한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한 권의 책이 탄생하기까지 수 년의 시간과 수백 권의 자료가 쌓이는 과정을 생각하면, ‘쉽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할매”
이 작품은 나에게 그런 생각을 다시 하게 한다.
황석영 작가님뿐 아니라, 세상의 많은 작가들이 한 권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만 83세의 원로작가.
그 나이에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나는 익히 알고 있다.
보통은 “이 나이에 뭘 더 해~~”하며 한 발 물러서기 마련이다.
그런데 작가님은 반대였다.
컴퓨터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도 그렇고, 인터넷이 열렸을 때도 그 흐름을 피하지 않으셨단다.
워드 프로세서가 등장하자마자 누구보다 먼저 익히셨다고 한다.
손으로 원고지를 쓰던 세대가 키보드를 두드린다는 게 얼마나 큰 변화였을까, 감히 미루어 짐작을 해본다.
그리고 이번에는 AI 였다.
ChatGpt라는 새로운 도구가 나타나자, 또 다시 주저하지 않으셨단다.
‘이건 또 뭐야~~“하고 물러선 게 아니라, 직접 배우고 익히며 작업에 활용하셨다고 한다.
덕분에 방대한 자료를 수월하게 찾을 수 있었고, 정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받으셨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감탄했다.
정말 대단하시다.
노장의 힘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책을 덮고 나니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했다.
만약 육지에 살고 있었다면, 당장 군산 하제 마을로 가고 싶었을 것이다.
삼백 년 된 포구 마을에서 육백 년 묵은 서낭목 팽나무를 바라보고 싶다.
그 할매 앞에 서서 제대로 느끼고 싶다.
이 이야기가 단순한 역사가 아니라 인연과 관계의 순환이라는 것을…
카르마처럼 이어진 생명의 고리를 깨닫고 싶다.
나의 무지로 책의 시작은 힘들었다.
그러나 끝은 깊은 존경이었다.
‘할매’, 황석영 장편소설은 단순한 독서가 아니었다.
오래된 나무 그늘 아래에서 삶을 다시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 첫 문장을 마음에 품고 있다.
“새가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