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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금기여서 감히 그 누구도 입 밖에 내지를 못했던 제주 4.3을 현기영 작가님이 비로소 소설 < 순이삼촌 >을 통해서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그런 작가님께서 지난 7월에 창비출판사와 함께그야말로 살아있는 대서사 장편소설인 ”제주도우다 “를 출간하셨다.
그 기념으로 ”제주도우다 “의 북토크가 현기영 작가님의 고향이신 이곳 제주도에서지난 7월에 성대하게 열렸었다.
내가 참석한 것은 제주 4.3 평화재단과 제주 4.3 연구소가 개최한”현기영과 함께 읽는 제주도우다 “라는 “2023 열린 시민강좌”였다.
우리는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제주도우다!
“제주도우다”라는 책을 처음 접하고는 돕다는 뜻을 사전에서 열심히 찾았더니“돕다”라는 말의 사투리라고 해서 남편한테도 부지런히 설명을 해줬었다.
참 무식하면 용감한 법이다.
“제주도우다” 는 “제주도입니다”라는 뜻인 것을 강의를 들으면서 알게 되었다.
아주 오랜 세월을 얼마나 설움 속에 살아왔으면 우리는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제주도우다라고 하신 그 심정을 감히 내가 어떻게 알겠냐만은 그래도 피를 토해낼 것 같은 심정으로 살아오셨다는 것만큼은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었다.
4.3이라는 말만 들어도 금방 숙연해지는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조금 색다른 오프닝인 <뚜럼브라더스>의 제주어 노래로 시작되었다.
“뚜럼브라더스”의 자작곡인 할머니의 4.3 이야기라는 노래였다. 그리고는 현기영 작가님의 “제주도우다”의 3권에 나오는 “성불사의 밤”과 “가거라 38선“을 들려주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흘러갔다.
성불사의 밤과 가거라 38선은 우리 집 양반이 워낙 좋아하는 노래라서 평소에도 귀에 닳도록 들어왔었다.
하지만 이렇게 제주도에 와서 4.3과 연결해 직접 들으니 그 느낌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내가 직접 겪은 일도 아니고 더 더군다나 머나먼 타국 땅에서오랜 이민 생활을 했던 사람이라 죄송스럽게도 제주도민들의 그 처절한 심정을 헤아릴 길이 없는데도 뚜럼브라더스의 제주어로 된 이 노래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많은제주도민들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다 보니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노래가 주는 위대한 치유의 힘이기도 하다.
제주도에서 제주 문화 살리기에 동참하면서 “제주어”를 지키기 위해온전히 제주어로만 노래하시는 “뚜럼브라더스”라는 신세계를 접하는 순간이었다.
“뚜럼”이라는 말도 “바보”라는 제주도 방언이란다.
바보처럼 순수하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밴드명을 “뚜럼브라더스”라고 지었단다.
제주에는 이런 영혼의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제주가 그런 것을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나 역시 영혼의 자유를 누리고 싶어서 그 멀리서부터 이곳 제주도까지 머나먼 길을 찾아왔다.
나도 이제는 조금 영혼의 자유를 찾은 것 같다.
외국에서 너무 오래 살다 온 나한테는 이런 제주도만의 특별한 영혼이 너무도 낯설고 신기했다.
이런 특별한 사명감을 안고 제주도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도 이제야 알게 된 것에 새삼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제 나도 제주도 도민이 된 이상 진정한 제주도 도민이 되기 위해서라도 이런 모임을 자주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제주도우다”의 주인공이신 현기영 작가님이 등장하셨다.
1941년생이라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직도 정정하시고 멋진 포스를 뽐내시면서 입장하셨다.
패션 또한 완전 그 자체였다.
왜 갑자기 “노장은 살아있다!”라는 말이 생각났을까?
비록 연세는 드셨어도 그 예리한 살아있는 눈빛만큼은 그 힘든 세월도 비켜가지를 못했나 보다.
참 멋지시다.
혀영선 제주 4.3 연구소 소장님이 진행을 도우셨다.
역시 제주도 출신이시란다.
“제주도우다”에서는 유난히 청년들이 모여서 노래 부르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누가 한 번 세어봤더니 무려 38곡이나 되더란다.
현기영 선생님께서 어느 날 육지에 나갔더니 뒤에서 작가님을 보고는 4.3 온다. 순이삼촌 걸어간다. 이렇게 수군거리는 것을 많이도 들어오셨단다.
그래서 현기영 작가님은 정말로 4.3의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도저히 벗어날 수도 없었고 아직도 여전히 못 벗어나고 있다고 하신다.
그 옛날 안기부 보다 더 더 무서웠던 보안사라는 곳에서 3일 동안 고문을 당하시고는 무시무시한 악몽을 두 번이나 꾸셨단다. 억울하게 희생당한 4.3 영령들이 작가님을 고문하는 꿈이었단다.
4,3 사건 때 희생당한 사람만도 3만 명에 달한단다.
그 한 많은 영령들의 한이라도 풀어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4년을 매달린 끝에 “제주도우다” 3권이 만들어졌단다.
이제는 4.3 이야기는 그만 쓰고 싶으시단다.
나무와 자연 얘기를 쓰고 싶으시다는 현기영 작가님의 말씀에그동안의 노고와 피로감이 전해져 와서 안쓰러움이 느껴진다.
순이삼촌의 아픔이 그대로 전해져 와서 마음이 슬프다.
우리 집 양반은 한국에서의 새로운 출발인 이곳 제주도에
자리를 잡자마자 제일 먼저 책을 사달라고 한 것이 바로 “순이삼촌”이었다.
미국에서 제주도에 대한 소식들이 많이 전해지면서 4.3 사건도 접하게 됐고 월령리의 무명천 할머니 이야기도 들을 수가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너무도 힘들어하는 우리 집 양반을 보면서 나는 읽을 엄두를 못 내고 미뤄두고 있었는데 이심전심이었나
이번 “제주도우다“에서는 현기영 작가님께서 그 참혹함을 의식적으로 덜어내려고 일부러 로맨스도 넣고 낭만적 감성도 집어넣으셨단다.
덕분에 아무리 힘들어도 그래도 읽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현기영 선생님 북토크를 만나면서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제주의 한 ( 恨)인 4.3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를 해보자고 마음을 다져본다.
현기영 작가님께서 직접 몇 단락을 낭독해 주시는 즐거운 시간 또한 함께 했다.
작가님이 직접 낭독하시는 것을 들어보는 것이 난생처음이라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른다.
이런 것 또한 이민자의 설움과 연결이 될 것이다.
비록 연세가 어느 정도 있으신 노장이긴 하지만 그 패기와 열정만큼은 그 어느 젊은 작가 못지않으셨다.
책을 낭독하실 때의 그 표정과 눈빛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다.
그 사람의 눈을 보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작가님의 그 매서우면서도 예리한 눈 빛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현기영 작가님은 독자들에게 한 가지 바람이 있으시단다.
작가님의 오랜 시간을 고심해서 탐구하듯이 쓴 이 작품을 독자들도 천천히 읽어 줬으면 한단다.
천천히 가야 자세히 보일 것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나가자.
제주도에서는 유난히 동백꽃을 많이 볼 수 있다.
우리 집 양반하고 나는 그저 동백나무가 좋고 동백꽃이 예뻐서 집의 돌담 가장자리를 전부 동백꽃으로 장식하고 있다.
이렇게 한없이 예쁜 동백꽃이 제주도의 4.3 사건의 상징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 너무도 부끄럽고 미안하다.
4.3 사건당시 희생된 영혼들이 붉은 동백꽃처럼
땅으로 소리 없이 스러져갔다는 의미란다.
동백꽃은 필 때는 하나하나 피어오르다가 질 때는 그야말로 한꺼번에 떨어져서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이런 모습 또한 4.3의 영혼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동백꽃이 피기 시작하면 가까이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바라봐야겠다.
더욱더 소중하게 정성을 다해서 키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