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어떤 일을 오랜 시간 지속하려면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의 일을 해야 한다. 편집자로서 저자에게 어떤 글을 쓰자고 제안할 때마다 항상 유의하는 건, 내가 요청하는 그 글의 주제가 저자의 관심사인가 하는 점이다. 물론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책을 기획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저자가 그 내용에 재미를 느끼고 꾸준히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책 한 권을 만드는 일은 꽤 긴 호흡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편집자나 저자나 그 책의 주제나 내용에 관심이 없다면, 아마도 중간에 호흡이 끊길 이유는 여러 가지다.
최근에 신입 편집자를 뽑는 면접에 참가했다. 어느 지원자의 이력이 재미있었다. 그는 콘텐츠 회사에서 일했고, 짧은 시간 안에 짧은 호흡으로 글을 쓰는 일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조금은 긴 호흡으로 책을 만들고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출판사에서 일해 보고 싶었다고. 생각해 보니, 그 지원자의 말처럼 출판사에서 책을 만드는 일은, 꽤 긴 호흡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하는 곳이었다. 심지어 어떤 책은 10년, 20년의 시간을 두고 기획하기도 한다.
나는 가끔 글을 만지다 소리를 지르곤 한다. 옆에 동료가 깜짝 놀라기도 하고, 뭐 저런 놈이 있는가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비교적 성격이 급한 편이고, 꽤 자극적인 것(?)을 즐기는 편이다. 태어난 곳도 부산인데, 부산 사람들이 얼마나 성격이 급한지 모른다. 말도 빠르고, 운전도 거칠다. 그런 내가 긴 호흡을 가지고 일해야 하는 출판사에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관심사가 현재 다니는 출판사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약 10년 동안 공부하던 분야와 출판사가 다루는 분야가 동일해서 그런지, 비교적 오랜 시간 일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 점심에는 집에서 크로플을 먹었다. 심지어 크로플에 브라운 치즈가 올라가 있었다. 카페에서나 먹을 법한 크로플을 집에서 먹다니.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며칠 전에 아내와 카페에 가서 크로플을 시켰는데, 그 크로플이 너무 맛있어 후다닥 먹어 버렸다. 아,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아내가 크로플을 만들어 주었을까? 아니면 그때 차마 맛을 음미하지 못한 아내가 크로플을 마음껏 먹기 위해 집에서 만든 것일까? 전자든 후자든 중요하지 않다. 맛있는 크로플을 집에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사실 아내는 집에서 빵을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 쿠키도 만들고, 스콘도 만들고, 케이크도 만든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크로플을 보면서 생각한다. ‘그래,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돼.’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이렇게 생각해 보자.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려면 그 사람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나 자신을 움직이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찬가지로 내가 무엇에 관심을 가지는지를 먼저 살피고 돌아보아야 할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모른다. 어떻게 아냐고. 나도 가끔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좋아하는 걸 묻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다 보니 삶의 의욕이 사라지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 다른 사람이 요구하는 일 등에 체력을 다 쓰곤 한다. 그래, 좋아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