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를 위해 기획하는 날의 마음
매주 금요일은 외서를 기획하는 날이다. 외서를 기획하는 날이라고 해서 딱히 거창한 일을 하는 건 아니고, 구글에 여러 저자들의 활동을 찾아보는 정도다. 금요일마다 저자들의 이름을 검색하는 이유는 월요일에 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책을 기획한다는 건 출판에 대한 판타지를 없애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이다. 특별히 외서 기획은 기존 저자들의 활동을 찾아보는 일이 중요하다. 자신의 활동을 SNS에 쓰는 저자도 있다. SNS에 들어가 한 주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저술 계획은 어떤지 살펴본다. 기사를 찾아보기도 하고, 어디에 강연을 했는지도 찾아본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책이 나온 뒤엔 이미 다른 출판사에서 계약을 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계약을 하지 않았더라도 이름 있는 저자의 책은 서로 경쟁해야 하고, 어느 정도 고민할 시간도 적기 때문에, 미리 파악하는 게 여러 모양으로 유리하다.
그러나 문제는, 국내서 기획에 비해 외서 기획은 왜인지 재미가 없다. 국내서는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는 기분이지만, 외서 기획은 이미 만들어진 걸 찾고 발견하는 일에 가깝기 때문이다. 국내서는 창의력을 요하지만, 외서는 사실 크게 창의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누가 관심을 더 가지고 찾아보느냐 싸움이다. 아무래도 나는 ‘창작’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라 그런지, 도통 외서에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해도 재미가 없다. 이게 문제다. 재미가 없어도 할 일은 해야 하는데,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일’을 하기란 쉽지 않다.
외서 기획은 국내서보다 더 치밀하게 시장 판단을 해야 한다.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느낌보다 분석하고 비교하고 시장성에 몰입하게 된다. 그러니 감정이 배제되고 숫자로 책을 판단하게 된다. 앞서 외서 기획을 보고하기 위해 하는 건 출판에 대한 판타지를 없앤다고 말했지만, 다르게 말하면 출판에 대한 판타지를 개인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외서 기획에 손이 가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이야기를 만드는 즐거움, 책을 만드는 재미, 기획을 숫자가 아니라 감정으로 하려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외서를 기획하다 어느 고대인들의 글을 모아둔 해외 블로그를 들어가게 되었다. 블로그 소개 가장 위에는 셰익스피어의 책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글 하나가 있었다. “즐거움이 없는 곳에서 유익을 찾기란 어렵습니다. 요컨대 선생님,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세요.” 그러고는 아래에 자신이 이 블로그를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아무도 고대인들의 글을 모을 것 같지 않고, 자신은 고대인들의 글이 좋아 평생 이것만 해도 좋다는 이유였다.
사람에게 어떤 일을 맡길 때는 그 사람이 좋아하는 분야를 맡기면 업무 효과가 높아진다. 반대로 제아무리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해도 관심이 없다면 그 일의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경영자는, 인사 관리자는 각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 일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만일 본인이 하는 일이 재미가 없다면, 흥미가 가지 않는다면, 왜 재미가 없는지를 끊임없이 물어보아야 한다. 그리고 알아내야 한다. 스스로 흥미를 느끼는 부분이 어떤 부분인지를. 만일 자신이 재미있는 걸 찾지 못한다면,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일의 의미는 점점 더 사라질 것이다.
무언가를 할 때 재미가 없다면, 재미가 없다는 걸 절실히 느낀다면, 그건 오히려 멀리 봤을 때 유익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분석하는 일을 좋아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감정적인 일을 좋아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창의력을 발휘하는 일, 누군가는 창의력을 요하지 않는 일을 좋아할 수 있다. 내가 어떤 것을 즐거워하는지를 알 수 있다면, 재미없는 그 일을 하는 시간도 유의미한 시간으로 탈바꿈된다. 외서 기획이 재미없다는 감정에서 시작한 내 생각을 보고 있으면, 일하기 싫다는 핑계와 변명이 얼마나 정당해 보이는지. 핑계와 변명이라도 좋으니, 자신에 가까운 일을 할 수 있다면, 아니 자신에 가까운 모습으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은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