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팔지 못한 이유, 막연한 기대
현재 일하는 출판사에 입사한 뒤 가장 놀랐던 건 첫 회의 때였다. 곧 나오는 신간을 두고 몇 부를 찍을 거냐는 대화에서, 마치 경매로 치면 1,500부가 최저 경매가였기 때문이다. 1,500부? 1,500부라니. 1,500부가 목표 판매가 아니라 시작점이라는 것이 그 당시 내겐 꽤 충격이었다. 이전 출판사에서 일할 때는 300부부터 최대 1,000부를 만들었다. 1,000부를 만들어 두면 그 이상 팔릴 일이 없었기 때문에 ‘중쇄’를 걱정하는 일도 없었다. 저자가 중쇄를 요청하며 수정자를 보내와도 책장 끝에 넣어 두었다. 다시 찾을 일이 결코 없기 때문. 그러니 초판 부수를 1,500부부터 시작하는 건 내게 충격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1,000부 이상의 책을 팔 수 있다니.
다른 출판사의 어느 유명한 저자는 초판을 1만 부를 찍었다는 소리를, 다른 마케터를 통해 들었다. 1만 부? 초판이 1만 부? 1만 부도 금방 소진이 되어 책이 출간되자마자 중쇄를 찍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출판 시장이 제아무리 어렵다고 하지만, 꼭 어려울 때마다 잘되는 곳도 있지 않겠는가. 장사가 잘되는 집은 경제가 어려워도 살아남는 것이 자본주의 시장이 아니겠는가. 4년이 지난 지금, 초판 1만 부까진 아니더라도 1,500부 정도는 거뜬히 팔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나였다. 엄밀히 따지면 ‘거뜬히 팔 수 있다는 자신감’은 나의 자신감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 자신감이었다. 책만 만들 줄 아는 편집자 따위지만, 책만 만들면 책을 사주는 독자분들이 있으니 왜인지 책을 만들 때도 겁이 나질 않았다.
오늘은 어떤 책을 두고 몇 부 정도 나갔냐고 마케팅 팀장님께 물었다. 초판은 거뜬히 나갔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한 질문이 무례한 질문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팀장님은 목소리가 기어들어갔고, 돌아오는 대답에 나는 미안함을 감출 수 없었지만, 미안해하지 않고자(?) 당당히 질문을 던졌다. “책을 팔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마치 기자회견이 열린 듯했다. 팀장님은 첫째, 둘째, 셋째, 대답하며 책이 팔리지 못한 이유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펼쳤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막연하게 잘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막연하게 잘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팀장님의 말은 왜인지 내가 가진 생각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 또한 책만 만들면 책을 사주는 독자분들이 있었기에, 막연하게 그 책이 꽤 많이 팔렸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막연한 생각이었고, 아마도 팀장님도 나와 동일하게 막연히 생각했던 건 아니었을까. ‘막연하게’라는 말이 집에 돌아오는 내내, 집에 돌아와서도 맴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꼭 그 책만을 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은 아닐까. 막연하게 잘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책 말고도 내 삶 곳곳에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하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잘 알려진 말이 떠올랐다. 지나치게 목표를 중심으로 살아서도 안 되겠지만, 지나치게 막연하게 생각해서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하는 것이 없으면, 삶의 목표나 방향이 없으면 가는 대로 가게 될 것이 분명하다. 막연하게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는 아무런 삶을 살 수도 없다. 모든 사람의 친구는 그 누구의 친구도 아니라는 말처럼, 좋으면 좋은 거지 하는 꽤 방만한 태도로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목표를 다시금 설정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여유로운 건 좋지만 막연한 건 좋지 않을 수 있다. 혹여나 막연하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할 요즘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