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매체의 선동

미디어 시대, 우리는 언제까지 선동될 것인가?

by ZERO



기업으로서의 미디어와 '자극적 콘텐츠'의 함정


오늘날 대중매체는 단순한 '정보 전달자'에 머물지 않는다. 신문, 방송, 인터넷 플랫폼을 막론하고 대중매체 역시 엄연한 기업이다. 기업의 생존 원리가 이윤 추구에 있듯이, 미디어 기업은 더 많은 클릭, 시청률, 수익을 위해 움직인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자극적이고 시선을 끄는 콘텐츠를 생산한다.


문제는 이러한 상업적 동기가 정보를 가공하고 선별하는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다는 점이다. 특정 매체의 사주나 대주주의 정치적 성향이 기사의 논조에 반영되거나, 외압에 의해 언론의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음도 인지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미디어를 소비할 때, 그 이면에 숨겨진 '상업적/정치적 목적'이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실'에 담긴 '성향': 정보의 주관성 이해


우리는 TV나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언론이 제시하는 정보가 대부분 사실에 근거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보도하느냐’이다. 기자의 개인적 성향, 그리고 매체의 고유한 정치적 성향이 알게 모르게 기사에 내포된다.


예를 들어, 과거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논평은 "K-방역을 모범적으로 수행해 사망자 최소화"라는 긍정적 서술과, "중국인 입국을 막지 않아 사망자가 발생"이라는 비판적 서술로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보도 모두 부분적인 사실에 기반하지만, 그 사실을 해석하고 배치하는 방식에서 매체의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이는 선거 결과 보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48.5%의 득표율로 당선된 후보에 대해 한쪽은 "50%도 안 되는 득표율로 당선"이라고 부정적 견해를 부각하는 반면, 다른 쪽은 "50%에 육박하는 득표율로 당선"이라며 긍정적 견해를 강조한다. 기사 제목만으로도 당선자에 대한 인식이 극단적으로 달라질 수 있으며, 언론사는 애초에 이러한 인식의 조작을 염두에 두고 기사를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다.


공정성의 허상과 교차 확인의 중요성


언론사의 사명은 투명성과 공정성이지만, 각 언론사마다 다른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이 두 가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기사에 등장하는 '전문가'의 견해조차도 해당 전문가의 정치 성향과 관점에 따라 사건의 논평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영방송의 경우에도 최고 경영진의 임명권이 정치 권력과 연결되어 있어, 정권 교체 시 언론의 논조가 집권 여당에 우호적으로 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미디어 환경에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한 핵심은 바로 '교차 확인'이다. 제3자의 입장에서 최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하기 위해 양쪽의 입장을 모두 들어봐야 하듯이, 독자 스스로 보수 성향(조선, 중앙, 동아 등)과 진보 성향(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등)의 매체를 두루두루 비교하며 정보를 습득해야 한다. 오직 한쪽의 목소리만 듣는 것은 스스로를 그 매체의 시각에 세뇌시키는 것과 같다.


대중의 맹목적 추종에서 벗어나기


미디어의 영향력은 정치와 경제를 넘어 우리의 일상과 가치 판단 기준까지 형성한다. 사회를 움직이는 세력이 설정한 성공 기준이나 가치관에 맞춰 살도록 대중은 강하게 종용받는다. 사람들은 소위 '권력자'나 '사회 주도 세력'이 좋아하거나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바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거나 기피하는 경향, 이른바 노예근성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대중문화, 대중음악, 대중적인 패션, 심지어 대중적인 외모나 인테리어까지, '대중적이다'라는 기준이 곧 '가치 있다'라는 기준으로 치환된다. 대중적이지 않은 것은 열등하다고 여기는 경향은 우리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마비시킨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를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수동적인 소비자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뉴스는 편집되고 해석된 산물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여러 관점을 비교하며, 우리 자신의 독립적인 사고로 정보를 재해석하는 '능동적인 독자'가 될 때 비로소 미디어의 선동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진정한 정보의 주인이 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