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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냥한 김선생님 May 26. 2024

메인쿤 고양이 [경태]

세상에서 제일 큰 고양이 메인쿤

" 오늘 택배가 갈 거야."

남편의 단출한 문자.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다.

무슨 택배가 온다는 건지, 이노매 인간이 또 뭘 산 거지? 바쁜 일상 속에서 늘상 집 앞에 쌓이는 택배 박스는 특별할 것이 없었으나 남편이 시키는 택배는 늘 긴장시키는 물건이 들어있다. 


[그간 남편의 만행]

남편은 내가 잠시 해외파견으로 집에 없었을 때 냉큼 전동커튼을 달아놨으며, 내가 굳이 힘들 것 같다며 최신형 로봇청소기를 들여놨고! 큰애가 돌 지난 무렵부터 좋은 아빠가 되겠다며 지속적으로 게임기를 사 모으고 있고! 아들 녀석이 실수로 텔레비전을 박살 냈을 때도 매우 너그럽게 용서해 주더니 최신형 텔레비전을 사다 놓고! 아마도 오늘 올 택배도 오로지 나를 위한( 그렇다. 남편은 나를 사랑한다.) 것이라고.


[용달차를 타고 온 그것]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저기, 탁송 왔는데요. 나오세요. 현관입니다." 드디어 그것이 왔다.

아주 작은 용달차, 심지어 포장이 덮여있는 차 안에서 배달기사는 작은 가방을 하나 꺼냈다. 

애옹 애옹, 소리가 들렸다. 서울에서부터 무려 용달차를 타시고 천안까지 내려오신 귀한 분.

고양이도 탁송이 되는 거야? 하찮게 생긴 고양이 한 마리가 울고 있었다. 

남편 덕분에 몰라도 될 세상을 알게 됐다. 

[분양계약서_그대는 메인쿤]

사실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의 입장에서 볼 때 메인쿤 고양이는 꿈의 고양이였다. 세상 거대하지만 순한 양과 같다는 고양이를 데리고 산책도 하고 물놀이도 하는 그런 아름다운 상상을 해봤었는데 갑자기 현실이 되었다.

급히 메인쿤을 공부해 보자.

미국 고양이 메인쿤은 메인주에서 나타났고, 쿤이라는 이름의 선장이 키웠다는 설에서 출발한 이름이다. 검색창에 메인쿤을 검색하면 무지막지한 크기의 대형고양이 사진이 많은데 그 고양이 맞다. 덩치에 비해 온순한 성격을 가졌다는 고양이계의 신사라나 어쨌다나. 아무튼 우리 집에 오신 하찮은 이 고양이도 메인쿤이 맞다는 증서가 들어있었다.  니가 크면 얼마나 크겠냐. 하찮고 하찮다. 애옹애옹. 



[이름은 뭘로 하지]

그래서 이 고양이의 이름은 뭘로 해? 원래 있던 우리 고양이들의 이름은 '참치', '갈치'. 한 마리를 더 입양할 수 있다면 '찌개'로 하자는 암묵적인 약속 같은 것이 있었다.  당연히 찌개라고 해야 되는 건가 잠시 고민했다. 

그래도 나름 귀한 혈통을 타고나 서울에서부터 무려 용달씩이나 타고 오신 냥반인데 감히 찌개라고 부를 수가 없어 고민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경태라고 부르자고 했다. 나의 이름 한자와 자기 이름 한자를 섞었다. 경태. 자식이란 소리다. 

시어머니가 집에 오셨다. 시어머니는 털짐승이 사람 사는 집에 같이 들어앉아있는 꼴을 못 보시는 분이다. 시어머니가 오시면 우리 집 고양이들은 베란다로 쫓겨나고 하루 종일 돌돌이를 들고 다니시면서 "이 털 좀 봐라. 이거 폐로 다 들어간데이" 를 외치는 분이다. 

"엄마, 경태랑 인사해. 엄마 막내손주야. "  해맑은 우리 남편. 또 털짐승을 집에 들였냐 시어머니는 심지어 그 이름이 경태라는 것을 알고 뒤로 넘어가실 듯 웃으셨다. "난 이제 니네 집에 안 올란다."  받아들이셔요. 어머니. 이제 어머님 손주는 넷입니다. 아하하. 


[메인쿤이라더니 뭐가 크다는 거야]

메인쿤은 3년 동안 큰다고 했다. 이제 집에 온 지 반년정도 지났는데 처음 3개월은 참 소소했다. 원래 집에 살던 우리 고양이 참치에게 구박도 많이 당하고, 솜방망이 발로 으더 맞기도 하고. 메인쿤이 맞기는 한 건가 작고 비리비리한 외모에 잠시 의심이 들기도 했다. 


[잘못했어 경태야 이제 그만 자라도 될 것 같아]

사료통이 열려 있었다. "고양이 밥 주고 누가 사료 뚜껑 안 닫아 놨냐?"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사료통이 열려있었다. 아침에 준 밥을 다 먹고 사료통을 열어 또 야곰야곰 먹었을 놈은 경태밖에 없다. 메인쿤은 큰 앞발을 가졌지만 섬세하고 날렵하게 그 앞발을 사용할 줄 안다. 심지어 영리하다. 참치 밥까지 홀랑 먹어버리니 참치형님은 강제 다이어트로 노년을 슬림하게 보내고 계신다.  '자기 사료+참치형님사료+사료통을 열어 먹은 사료'까지 경태는 나날이 쑥쑥 자라났다. 3년 동안 큰다고? 이제 6개월 됐는데 이미 싱크대에 매달려 서서 눈치를 본다. 얼마나 더 큰다는 거야.  길다 길어. 

거실 바닥에 잠시 누워있었는데 소파쯤에서 나에게로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경태가 보였다.

3,2,1 뛰어내렸다. 어우야, 내 뼈는 무사하고 경태는 묵직하다.  

"억, 이러지 마 너 이제 안 귀여워."  

 

[오늘도 자라고, 오늘도 사고를 칩니다]

메인쿤 고양이를 누가 신사라고 했는가! 

샤워를 할 때는 문을 꼭 닫아야 한다. 안 그럼 들어와서 같이 물을 맞고 있다.

꼬리와 엉덩이, 배를 만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에 빗질은 하지 말아야 한다. 덕분에 꼬질꼬질한 외모는 덤이다. 메인쿤 고양이는 꼬리와 꼬리털이 반인데!

우리 집 식물들은 특히 나무들은 경태에게 밟혀서 수술을 여러 번.

머리끈을 좋아해서 끈 종류만 보면 앞발로 친다.  온갖 종류의 끈은 죄다 가구 밑으로 사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쁘고 이쁘다. 막내라서 그런가.  3년을 다 크면 얼마나 커질까. 기대가 되는 녀석이다.


경태와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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