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 6학년과 27살 초등학교 선생님의 간극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한다.
2022. 03
“갸루피스 하면서 사진 찍어도 돼요?”
“응응~! 일단 일렬로 서 봐.”
갸루피스가 뭔지 모르는 27살 선생님은 대충 눈치껏 알아들었다는 대답을 하며 사진 대형을 재촉한다. 그리곤 적잖은 충격의 ‘갸루피스’ 포즈를 보며 이게 왜 ‘갸루피스’ 냐며 역정을 내는 모습을 발견한다. 기존에 ‘V’ 포즈를 뒤집어 손바닥이 하늘을 향한 ‘ㅅ’이 갸루피스인 것이다. 요즘 아이돌들이 사진을 찍을 때 하는 포즈라는 설명 외에는 학생들도 딱히 아는 게 없어 보이니 학생들을 하교를 시킨 후 슬그머니 초록창에 검색을 한다.
‘갸루피스’ 뜻은 갸루들이 하는 브이포즈로 사실 별 의미는 없어요. 그저 유행하다가 생겨난 포즈중 하나라 문화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네요.
이 따위 문구를 발견하고 또 갸루를 검색해 본다.
‘갸루 뜻은 소녀나 다 큰 여성을 뜻하는 영어의 속어인 Gal을 일본식 발음으로 읽은 데서 생긴 낱말입니다.’
몇 년 전 개그콘서트에서 갸루상이라며 나왔던 개그맨이 떠오르며 참 나도 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곤 오늘도 잼민이들의 신세계에 한 발 가까이 간 것 아니냐며 흐뭇해한다. 내일 동기 언니랑 사진을 찍으면서 ‘갸루피스’ 하자고 해야지!
2021.04
“쿠쿠루삥뽕~ 쿠루쿠루삥뽕”
“수행평가 중에 누가 소리 내니. 무슨 뜻이니, 대체. 의미 없는 말 한 번만 더하면 그 단어 이천 번 쓸지도 몰라~~”
“그거 상대방을 화나게 할 때 하는 말인데요~~ 유행하는 말인데요~~”
“쿠쿠루삥뽕~ 쿠루쿠루삥뽕”
“나와.”
A4용지를 내어주며 끝없이 접으라고 했다. 대략 가로 10칸, 세로 10칸 정도 총 100칸 정도 칸이 생겼다. 막상 진짜 쓸 생각을 하니 겁이 났는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길래 맘이 약해져서 약속을 철회한다. 난 정말이지 약속을 하면 칼 같이 지키는 선생님인데 말이다.
다른 학생이 묻는다.
“선생님, 그럼 이제부터 쿠루쿠루삥뽕은 우리 반 금지어인가요~?
한 번도 ‘금지어’라는 말을 내본 적이 없는데 어디서 들어온 건지 의문이다. 무튼 본인들이 하겠다고 했으니 일단 그렇다고 했다. 그런데 속으론 한편 뿌듯하다. 누가 나를 화나게 하면 말해줘야지. 쿠루쿠루삥뽕!
그러자마자 바로 다음 쉬는 시간에 칠판에 적혀있는 ‘ㅋㅋㄹㅃㅃ’
2022. 오늘 아침
연구실로 출근을 하다가 복도에서 우르르 모여있는 여학생들을 마주쳤다. 아침 자습 시간 강당 앞 넓은 복도를 점령할 수 있는 자들은 6학년들 중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학생들임을 나타낸다. 그들은 복도 통로에 붙어있는 창문에 옹기종기 붙어 등교하는 다른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거나 그들의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임은 지난 3년간 그 길목을 지나다니며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저들이 지난주에 만난 6학년 선생님이 하소연하며 이야기했던 서로를 공주라고 부르는 7공주들 무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던 무렵, 작년 우리 반 학생이었던 예지가 다른 친구의 눈을 쑤시고 있었다. 실은 눈을 진짜 쑤신건 아니고 쑤시는 행위만큼 내겐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아마 여자 선생님들은 한눈에 캐치가 가능할 것 같다.
누가 봐도 기다란 아이라이너를 들고 친구의 눈에 그려주고 있었다.
“일로 온나, 예지야.”
“니 지금 눈에 아이라이너 그리나. 니 눈이랑 내 눈이랑 똑같네^^”
“하아앗, 선생님 친구 그려준다고,,,하핫.”
“담임 선생님은 아시나, 담임 선생님 이름이 누구시더라?”
“모르겠어요...하하.”
멋쩍은 웃음을 내며 일단 본인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는 꽤나 아는 눈치다.
“니 내 이름은 기억하나 예지야.”
“김몽몽 선생님”
일단 내 이름은 기억하니까 갑자기 기분이 좋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선생님이다.
“아침부터 독서시간에 나와서 이러면 되나 안되나! 옷은 이렇게 얇게 입고 다니고 니 이거 지울 때 살도 다 늘어지고 진짜 예쁘게 그리고 싶을 때 살 쳐지면 어쩔라고 그라누!!! 한 번만 더 그리다가 선생님이랑 마주치면 내가 그려줄 거다. 얼른 교실로 들어가.”
“네!”
역시 여전히 대답은 잘한다. 내가 그려주면 생길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 선생님이 아이라인을 너무 잘 그려준 바람에 본인이 아무리 그려도 마음에 안 들어하며 앞으로 아이라인 그리기를 포기한다. 두 번째, 선생님이 너무 아이라인을 못 그려서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수치스러워하며 더 이상 아이라인을 그리고 싶지 않아 한다. 아마 나는 화장에 쥐약이기 때문에 후자가 될 확률이 더 높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학생들의 세계에 가까워지고 싶어 한다. 아이들이 하는 유행어들을 알아갈수록 묘한 쾌감이 온다. 배운 유행어들을 내 친구들한텐 꼭 써먹는다. 내 친구들한테 딩초들한테 배운 말이라면서 가서 자랑 아닌 자랑을 한다. 내가 봐도 내 꼴이 우습긴 하다.
또래 직장인들의 언어를 따라가기도 그렇다고 학생들의 언어를 따라가기도 애매한 내 포지션이 가끔 우울할 때도 있다. 근데 오늘 예지를 보면서 번뜩 생각이 났다. 어쩌면 예지도 나랑 비슷한 처지가 아닐까. 완전 어린이도 아닌 어른도 아닌 그 중간이라고 본인도 생각하며 둘 중 하나라도 더 가까워지기 위해 나처럼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초등학생들의 용어를 배워 써먹고 예지는 아이라인을 들며 묘한 쾌감을 느낀다. 그 담임에 그 학생이라더니 이러면 곤란한데···.
27살과 13살 간극이 팽창하기도 수축하기도 해야지. 그래야 우리가 함께 성장하는 게 아니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