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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한범 Jun 26. 2018

시작, 내 동료가 되어라

그린피스 항해사 썰#1

 백수 생활을 시작한 지 약 8개월, 나는 여느 노는 사람처럼 피시방에서 밤을 새우고 오후 늦게 일어나 오랜만에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하였다. 그리고 가득 차고 있는 메일함을 정리하려고 하나둘씩 메일을 지워 나갔다.

 그러다가 문뜩 영어로 된 메일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내가 보낸 이력서에 대한 답장 메일이었다.

 전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구직활동을 하면서, 뽑는다는 소리도 없는데 틈틈이 계속 이력서를 보낸, 1순위로 가장 가고 싶었던 곳, 그린피스에서 답장이 온 것이었다. 그리고 날짜를 확인 해 보니 이미 2주일 전에 답장을 보냈고, 나는 오늘 그것을 확인하였다.

 드디어 답장이 왔다는 기쁨과, 그 답장을 한참 지나서야 확인한 나 자신에 대한 원망, 그리고 혹시라도 아직 이 메일이 유효할까?라는 약간의 희망과 함께 떨리는 마음으로 답장을 작성하였다.

 너무 늦게 확인해서 미안하다고. 혹시라도 아직 자리가 있다면 나는 언제든지 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나는 이런 안타까운 사건 이후로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이메일어플 알람은 항시 켜 둘 것 



 반쯤 포기한 나는 나의 현업인 백수의 삶을 다시 즐기기 시작할 찰나에, 네이버 메일의 알람이 왔다.

 ‘인터뷰 날짜가 언제 좋겠습니까?’

 ‘지금 급하게 2등 항해사를 모집하니 빠른 시일에 인터뷰 날짜를 잡자, 내일 정도는 어떻습니까?’라는 내용의 메일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읽는 장문의 영어라 몇 번을 읽었다. 나의 짧은 영어실력이 혹시라도 실수를 할 까 봐, 구글 번역으로 돌려서 다시 읽었다. 다시 읽어도 같다.

나는 당연히 언제든지 괜찮다고 하였고, 네덜란드 시간에 맞춰 한국시간 기준 다음날 저녁 10시에 전화 인터뷰를 잡았다.



 기쁜 마음으로 메일을 보내었지만, 순간 소름이 끼쳤다.

 큰일이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영어 전화 인터뷰를 24시간 뒤면 한다.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지, 한국 문화권, 한국 정통 교육과정을 밟은 나로서는 그저 앞이 캄캄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전화기에 온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 나 혼자 만의 방을 잡았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내가 보낸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부터 시작하여 해외 취업한 사람들의 블로그, 당일 급하게 등급을 올린 해외취업 카페, 구글 검색, 그리고 전화 인터뷰하는 유튜브 동영상 등등...

 그렇게 몇 시간에 걸쳐 연구하고 준비하다 보니 전화 인터뷰에 나올 질문들은 한정적 이란 것을 알았다. 예상 질문들을 정리하고, 그에 알맞은 나만의 답변들을 적기를 반복하다 보니 약 30장 정도의 종이가 방 한편을 가득 매웠다. 다 이해하고 외우려고 노력했지만, 혹시라도 까먹으면 최소한 적힌 것을 읽기라도 하기 위해 1순위 질문부터 차례대로 붙여 나갔고, 연습하였다.



 그리고 약속한 10시, 준비가 되었다는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은 뒤 전화가 울렸다.

 Hello, Nice to meet you.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라는 짧고 부끄러운 영어와 함께 인터뷰가 시작이 되었고, 전화기 건너편에서 5명의 사람들이 인사와 함께 자기소개를 하였다.

 채용담당자와 1:1로 할 줄 알았던 전화 면접은 본사 직원 5명과 동시에 하는 인터뷰였다. 나는 더욱 떨리고, 두려웠고, 간절했다.

 중간중간 못 알아들을 때는 가끔 전화가 잘 안되는 척하기도 하였고, 어려운 말들은 좀 더 설명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내가 준비한 것들, 나의 생각과 업무 관련 지식 그리고 나의 신념 더듬어 가며 말하였고, ‘꼭 다시 봤으면 좋겠다’라는 인사와 함께, 약 한 시간에 걸친 인터뷰는 끝이 났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느낌이었고, 금세 배가 고파졌다. 생각해보니 약 24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었다. 오는 길에 먹은, 지금은 그 맛을 잃어버린 두배 불고기버거의 맛은 아직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리고 불안한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한참을 걸어 집에 왔다. 나는 뭐 되든 안되든 최소한 기회는 가져봤고 이러한 전화 인터뷰는 나에게 큰 경험이었다 라는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누었다.


 



‘딩동’

잠이 막 들려는 순간 메일이 왔다.

‘환영합니다. 같이 일 해 봅시다. 하기 계약서에 사인 한 뒤 답장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참, 4일 뒤인 일요일 새벽 비행기를 이용해 네덜란드로 오시면 됩니다. ’






*본 글의 내용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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