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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한범 Jun 29. 2018

출발, 뜻밖의 여정.

그린피스 항해사 썰 #2

“엄마, 나 4일 뒤에 네덜란드로 가”


 갑자기 어디서 여행 바람이 불었냐고 물어보던 부모님에게 나의 취업 사실을 알렸고, 주변 친구들에게도 알렸다.

 취업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그 상황을 물어보기도, 말 하기도 여간 애매한 게 아니다. 혹시나 마음 다칠까 봐, 취업 준비에 방해될까 봐, 헛된 희망을 심어줄까 봐...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나도 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곳에 지원하고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집에 눈치가 보이고, 자존감이 낮아지고, 처음에 목표한 일자리보다 점점 눈이 낮아졌다. '우선되는 대로 가자'라는 마음을 막 먹으려던 참 이였다.  


‘인생사 새옹지마’ 


 만약 다른 지원한 곳 합격이 되었다면, 내가 받은 답장은 2000여 개의 읽지 않은 메일들 틈 사이에서 곤히 자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혹시라도 확인을 했더라도, 인터뷰를 준비할 시간과 정신적인 여유가 부족하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머물러 있는 자리에서 벗어나기는 쉽지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이 기회를 잡게 되면서, 지난 시간의 실패와 좌절의 순간들 마저도 각자의 의미를 찾게 되었고, 쉬었던 기간마저 기다림과 재충전의 시간으로 포장이 되었다.


 남은 4일은 꽤 바쁘고 빠르게 지나갔다.

 승선을 하기 위해 필요한 많은 서류들을 홀로 준비하고, 월급을 위한 외화통장을 만들고, 세 달 동안 지내기 위해 짐을 꾸렸고, 업무에 대한 복기를 하고, 주변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하였다. 세 달 동안 한국의 것과 멀어져 한국음식이 그리울 것 같아서, 공항에서의 마지막 한 끼로 설렁탕을 먹었다.  

 그렇게 부푼 마음을 안고,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에 탄 순간부터, 크게 부풀었던 마음은 더 큰 걱정으로 바뀌었다.  

 '버티자, 우선 버티고 생각하자.'

 어떻게 잘 할지 생각하기보단, 어떻게든 버텨야지 라는 마음이 더 크다.  

 일을 잘 못하겠으면 밤을 새워서 하고, 영어를 못 알아들으면 손짓 발짓으로라도 하고, 어떻게든 버텨보자. 그것으로 인해 내가 행복하지 않더라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내가 생각하던 것과 조금 다를지라도, 내 힘이 닿는 한 최대한 붙어 있고 싶다.

 지금 나는 그만큼 간절하다.


 그렇게 내가 탈 배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인천공항까지 4시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까지 11시간, 저녁에 도착하여 호텔에서 하루 숙박, 그리고 다음날 아침, 배에 승선하기 전에 본사에 방문을 하였다.

 ‘쿨’하기로 유명한 그린피스 사무실 안에서 직원들과 인사를 하고, 내가 앞으로 하게 될 일들을 듣고, 나의 서류들을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종이 계약서에 직접 사인을 하였다. 그리고 구내식당에서 채식주의자 식단을 먹을 때 비로소 그린피스에 온 것을 실감하였다.  

그린피스 암스테르담 사무실에 있는, 그린피스 선박중의 하나인 Rainbow Warrior호의 레고 모형


  식사를 하고 난 뒤 나는 다시 기차를 타고 Delfzijl 이란 네덜란드의 작은 항구마을로 향하였다. 역에는 Chief Officer(일등항해사)가 마중을 나와있었고, 나는 인사를 했다. “Hello Chief!”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 “Chief라고 부르지 말고, 내 이름은 멕시코 과자 이름처럼 나초니까 그냥 그렇게 불러.”  

 그렇게 나초형과 함께 수리 및 보수작업이 한창인 배에 도착하였고, 배와의 첫 만남에 든 생각은, ‘배 진짜 작다’였다. 전에 있던 선박회사에서 매번 커다란 자동차 운반선만 타다가, 상대적으로 작은 배인 쇄빙선을 보고 '진짜 작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걱정반 설렘반의 마음으로 갱웨이에 올라갔고, 이미 승선하고 있는 많은 선원들과 인사를 하였다.

 

 그렇게 오랫동안 꿈꿔왔던 나의 여정이, 5일 만에 일사천리로 시작되었고,

 마침내 Arctic Sunrise 호에 첫 승선을 하였다.

*본 글의 내용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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