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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한범 Jul 02. 2018

첫 출근, 새끼오리 이야기

그린피스 항해사 썰 #3

 “Hello, Everybody!”


 나는 5시 정도에 배에 도착하였다. 이 시간은 근무 시간이 끝난 후 저녁을 먹기 전, 많은 선원들이 같이 모여 맥주나 음료를 마시면서 삼삼 오오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동료들과 한꺼번에 같이 인사를 하게 되었고, 나도 맥주 한 캔을 들고 앞으로 동료가 될 사람들과 어울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사실 주로 듣는 편이다.)


 그리고 저녁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갔을 때, 주방 안에 매우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주방장 ‘로니’였다.

 학창 시절, 그린피스 선박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우연히 기회를 얻어, 짧은 기간 동안 '주방 보조’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다. '로니'는 일종의 상사였고, 약 5년 만에 다시 이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매우 오래전 일이고, 짧은 기간 동안의 만남이어서 서로가 서로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지만, ‘낯익은 얼굴’이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5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하였고, 식사를 하고 나서 방에 돌아와 짐을 풀었다.

많은 방 들 중에서 넓은 축에 속하는 '이등항해사' 방

 배가 작은만큼 방도 매우 좁았다. 내가 가져온 많은 짐들을 겨우 풀고, 방을 대충 정리한 후, 잘 준비를 하기 위해 샤워를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2층 침대의 위층에 이부자리를 펴고 몸을 뉘었다.

 ‘여기가 앞으로 내가 세 달 동안 지낼 방이구나.’

 이틀 동안의 여정 끝에, 나의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스르륵 잠이 들었다.


.

.

.

.


 “웅성 웅성”

 한참 잘 자는 도중에 어떤 소리가 들렸다.

 다시 무시하고 잠들었지만 다시, “웅성 웅성”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뭔가 하고 확인을 하러 문을 여니,

 “Good morning, It’s 7:30”  

 어제 인사를 나눴던 선원 중에 한 명이 저 말을 하고 휙 가버렸다.  


 어쨌든 나는 겨우 기지개를 켜며 정신을 차리고, 오래 기다렸던 대망의 공식적인 첫 출근을 하기 위해 식당에서 빵 한 조각과 커피를 먹고 나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뭘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지금 막 빵과 커피를 먹으러 들어온 Deck Hand(갑판수)'알레’에게 물었다.

 “오늘 뭐 하는지 알아?”

 “나도 잘 몰라. 나도 오늘이 처음 일 하는 거야, 커피 먹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은 뭘 하는지 보자.”

 “오늘 아침에 내방에 어떤 사람이 아침 인사하고 가던데, 니 방에도 왔어?”

 “응, 아마 그거 잠 깨우는 모닝콜일 거야.”

 그렇게 ‘신입’ 두 명에서 같이 아침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식당에는 막 잠에서 깬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였고, 잠시 후 그 자리에서 아침 회의를 시작하였다.

 대부분 기관장과 일등항해사가 말을 하고, 나머지는 듣는 분위기였다. 모자란 영어실력으로 겨우 알아들은 내용은, ‘이제까지의 대대적인 선박 수리 빛 개조 프로젝트를 이야기하였고, 오늘의 할 일은 무엇이고, 앞으로 몇 주 안에 이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정도였다. 그리고 회의가 끝난 후 해산하고 모두 각자의 일터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우리 둘은 홀로 남겨졌다.
 

  오리는 태어나서 처음 본 사람을 엄마라고 생각한다.

 두 명의 신입은 말 그대로 새로 태어난 ‘새끼오리’였다.

 그래서 우리는 일등항해사 ‘나초’ 형을 열심히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오늘은 뭘 해야 하는지, 그 일을 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각종 도구들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등... 멍청해 보이고 자존심이 상할지라도, 작은 거 하나하나까지 끊임없이 물어가면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 배는 어떻게 돌아 가는지 하나씩 익혀 나갔다. 다행히, 배라는 공간과 항해사라는 직업은 전에 일하던 곳과 비슷한 점이 많아서, 영어를 잘 못해도 대충 눈치껏 알아듣고, 대략적으로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느낌적으로 알 수가 있었다.

 여전히 알아야 할 것들과 물어봐야 할 것들이 많았지만, 적어도 ‘뭘 모르는지 모르는’ 단계는 아니었다.

 

 그렇게 약간의 자신감이 생긴 나는 다른 동료들과 같이 본격적으로 배 수리를 시작하였고, 항해 장비 중 하나를 배 밖으로 가지고 와서 열심히 페인트 칠하고 있던 도중, 전화가 울렸다.

 약간 짜증이 섞인 목소리의 나초 형이었다.


 “I don’t know where you are. But, Lunch time is Lunch time”

 (‘네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지만, 점심시간은 점심시간이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 10분이나 지났고 부랴부랴 대충 정리하고 밥 먹으러 들어갔다. 그리고 점심을 다 먹고 나서 다시 일을 하러 가려던 찰나,

 다시 나초형이 나를 불러 세웠다.


 “어디가? 다시 말하는데, 우리 쉬는 시간은 10시부터 30분간 그리고 3시부터 30분간이고, 점심시간은 1시부터 한 시간이야 알았지?”


 나는 깨달았다, 한국 배와는 달리 식사시간과 쉬는 시간을 반납해 가며 일 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란 것을...


 그렇게 나도 다른 동료들처럼 한시까지 느긋하게 점심시간을 갖고, 다시 남은 일들을 하며 오후 일과를 마쳤다.



 그리고 동료들과 같이 식사 시간을 기다리며 갑판 위 앉아 맥주 한잔을 마셨고,

 그때서야 비로소 주변의 아름다운 네덜란드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Delfzijl, Netherlands

 지금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오랫동안 원해왔던 곳에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내가 사랑하는 시원한 맥주를 한잔 하고 있는 이 순간이, 나는 너무나 행복하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적응해 나가고 있다.






*본 글의 내용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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