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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한범 Jul 27. 2019

주말, 노는 것도 배움이 필요하다.

그린피스 항해사 썰#16


 바쁜 일과가 끝나면 우리는 어김없이 주말을 맞이한다.


 많은 국가와 인종이 섞여있는 그린피스 배의 선원들은, 각자 자기의 방법으로 주말을 보낸다. 소파에 누워서 하루 종일 왕좌의 게임을 보는 사람,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 교회를 가는 사람, 새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사람, 등산을 다니는 사람, 서핑을 하러 가는 사람... 각자 자신의 주말을 어떻게 보낼지를 안다.

주말에 가끔 미용실을 열기도 한다

 나도 나름 여행을 많이 다니고, 나의 주관이 뛰어난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배에서 주말을 가져라고 던져주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반면에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어린 시절부터 주말을 어떻게 보낼지 열심히 궁리하면서 살았는 느낌이 났다. 그러고는 나도 그들에게서 '주말을 즐겁게 보내는 법'을 배우기로 결심을 하였다.  


 첫 번째 주말은 나와 비슷한 시각에 온 동료들과 이 섬을 대충 알기 위하여,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둘러보고 오기로 하였다. 하지만 한 가지 룰을 정했는데, '아날로그 여행'이었다. 구글 지도, 신용카드 없이 돌아다니자는 것이었다.

 준비물은 자전거 한대와, 물통, 약간의 현금과 간단히 먹을 음식들이다.

 '철저한 아날로그 여행'이었다.

카나리섬 탐험을 나선 동료들

 그렇게 길을 나섰고,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어디가 자전거 타기 좋은지 물어 가면서 그 동네를 돌아다녔다. 현지인에게 물어보면 꽤나 유용한 정보들이 많았다. 콜럼버스 박물관이 오늘은 공짜였고, 해변에서는 모래성 축제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석양이 멋있게 지는 곳도 알려주었다.

 '모두 공짜였다.'


 그렇게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알려준 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하였다.


 처음으로 간 곳은 '모래성 축제'였다. 기독교에 기반을 둔 이 축제는, 성경을 잘 알지 못하는 나에게는 생소한 것들 이였지만, 꽤나 웅장했고, 볼거리가 많았었다.

모래성 축제의 한 작품

 그 후 방문한 콜럼버스 박물관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하기 위한 항해를 떠날 때, 마지막 베이스캠프로 사용하였던 곳이 카나리 섬이었기 때문에 지어진 것이었다. 여기에는 '산타마리아호'의 모형과 콜럼버스가 믿었던 지구본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항해의 역사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엿볼 수 있는 꽤나 흥미로운 박물관이었다.

카나리섬을 출항했던 '산타마리아호'

 그 후 우리는 해가질 때 석양을 바라보고는 다시 배로 돌아왔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카나리섬에서의 석양 구경을 하는 동료.

 나는 사실, 여행에서의 행복은 소비에서 온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특히나, 승선을 하면서 갖는 잠깐의 여행(뱃사람들은 '상륙'이라고 부른다)의 시간은 꽤나 짧기 때문에, 그 아까운 시간들을 돈으로 사려고 노력하였다. 예를 들어, 가까운 거리라도 후딱 보고 가야 하니 무조건 택시를 탄다던가, 어느 가게에 들어가서 가격을 비교하지 않고 막 집어 고르고, 비싸지만 확실할 것 같은 식당을 들어갔다.

 물론 그런 소비의 행위들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긴 했지만, 지나고 생각해 보면 꽤나 돈 낭비이고, 빠른 시간 내에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방법일 뿐이었다. '여행'이란 느낌은 절대로 들지 않았다.

배로 돌아가는 길, 뭔가 양손 가득있으면 행복했던 과거...

 하지만 이렇게 동료들과 자전거 한대 끌고 끊임없는 대화를 하며, 섬을 어슬렁 거리는 여행은 확실히 '여행'이란 느낌이 들었고,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예전의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한 사람이었는데, 점점 '누구와 어떻게 있는지'가 중요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쁜 일주일이 지나고,

 두 번째 주말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산 정상에서 '새 구경(Bird watching)'을 하기로 하였다. 조금 멀지만,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테헤다' 란 산을 오르기로 하였다. 대부분 누워 자기 바빴던 주말에 등산을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이것이 회사 부장 같은, 타인에 의해 억지로 가게 되는 '수동적인 등산'이었다면 가지 않았거나, 갔더라도 기쁜 마음이 들지 않았겠지만, 자의로 선택한 등산은 꽤나 기분이 좋았다. 모든 것이 마음가짐의 몫인 거 같다. 나는 무거운 망원경과 카메라를 들고 카나리 섬에만 산다는 새들을 구경하러 나섰다.

새를 보기 위한 여정

 힘들게 정상에 올라서 새들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우리가 보고 싶었던 새 'Wild Canary'는 보이지 않았다. 약간은 허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국적인 멋진 풍경을 봤다는 것에 만족을 하며 산에서 내려왔다. 그 후, 이 섬에 사는 자원봉사자의 추천으로, 카나리섬을 대표하는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꽤나 맛있었고 저렴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기사식당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카나리섬 전통 '콩스프' 꽤나 맛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우연히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정박된 배의 낯익은 선원들을 만났다.

 "오! 너희들 그린피스 아니야?"

 "오! 맞아 너희들 그 범선에서 일하지?"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하다가 그 배로 초대를 받게 되었다. 그 길로 우리는 차를 얻어 타고 편안하게 항구 쪽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우리는 'Lord Nelson'이라는 배를 방문하였다.

Lord Nelson

 그 배에 들어가 투어를 하고, 라운지에 앉아 맥주를 한 캔씩 마시면서 배에 관해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그 설명들은 꽤나 나에게 문화충격으로 다가왔다.

Lord Nelson이 어떻게 운항되는지 설명해주는 한 선원

 절반이 넘는 선원들이 '장애인'선원이었다.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 모두 선원이었다.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 돛을 펴고, 시각 장애인이 배를 조종한다고 하였다. '항해'를 하고 싶은 장애인들을 위해 모든 것이 특별 제작된 배라고 하였다.

Lord Nelson에서 휠체어를 탄 사람이 돛을 펴는 방법

 휠체어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고, 모든 선박 장비들을 다룰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배의 모든 손잡이는 시각장애인들이 만지기만 하면 여기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 수 있게 양각을 해 두었다. 특별 장치를 설치하여 소리만으로 선박이 가고 있는 위치를 알 수 있게도 하였다.

 다시 한번, 항해의 나라 '영국'의 뿌리 깊은 항해 문화와 그들의 인식을 느낄 수 있는, 멋있고 감동적인 배였다.

 물론 그들의 식민지배의 역사는 옹호하지 않지만, '대항해시대'에서부터 이어져 오던 모험심과 자부심들은 한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항해사로서, 그들의 문화와 '배'를 바라보는 시선과 생각들이 부럽기도 하였다.

 몸이 불편하여도 '항해'와 '탐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과, 그 '니즈'가 얼마나 강했으면, 그것을 충족시켜 주는 인프라가 갖춰진 배를 만들었다. 그러한 모험심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다른 배의 선원들과 함께 서로의 모험담을 나누면서, 우리의 주말과 그들의 주말은 지나갔고, 또 다른 한주를 시작하기 위하여 다시 우리 배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그 후에도 나는 주말에 선장님이 만든 크로스핏에 참여하거나, 카약을 타고, 하이킹을 다니면서 인생엔 '집-일-게임'외에도 즐길 거리가 많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잘 노는 것도 배워야 한다.'라는 것을 느꼈다.

 그 후, 나는 항해사로서 주말에 '당직'을 돌아가면서 서야 되어 많은 날들을 갖진 못했지만, 몇 안 되는 자투리 시간들을 최대한 활용하며 의미 있게 잘 놀았다.


 나는 그렇게 '주말을 즐기는 방법'을 배워 가는 중이다.


*본 글의 내용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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