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안 하기
오늘은 아무 것도 안 하기로 마음 먹은 날이다. 아무 것도 안 한다는 것에서 '아무 것'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생산적인 일'을 말한다.
평소엔 마음이 늘 다급하다.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만 같다. 안 그러려고 해도 잘 안 된다. 나도 모르게 내년 입시 자료를 보거나, 입시 강의갈 자료를 수정하거나, 탐구할 재료를 찾기 위해 신문이나 책을 뒤진다. 그래서 오늘은 의도적으로 쉬는 중이다.
음악을 들으며 읽고 싶던 책을 읽는다. 주저리주저리 글도 쓴다. 자꾸 뭔가를 하고 싶어지면 시를 옮겨 적는다. 최선을 다해 생산적이지 않은 일들로 하루를 채운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으면 좋으련만 그건 잘 안 된다.
요즘은 최유리의 노래를 자주 듣는다. 가수 최유리는 음색이 너무 좋아서 어떤 노래도 자극적이지 않다. 처음엔 그의 유명한 노래들을 모은 영상으로 음악을 듣다가 지금은 전곡을 다 그러모은 영상으로 음악을 듣는다. 질리지 않는 목소리다.
어제부터 이동진 평론가가 쓴 에세이집을 읽는다. 『밤은 책이다』 는 이동진 평론가의 여덟 번째 책이자 영화 이야기가 담기지 않은 첫 번째 책이다. 그가 밤마다 읽어나간 책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말도 잘하지만 글도 잘 쓴다. 한 단어씩 눌러쓴 그의 글은 버릴 게 별로 없다. 버릴 게 없는 글은 읽는 것만으로도 음악처럼 마음에 평안을 준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올 한 해는 매주 저녁 대학원에 다니랴, 수십 번 강의와 컨설팅 하랴, 우리 아이들 상담하랴, 전쟁처럼 흘렀다. 이제 한 해의 끝에서 가만히 숨을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