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과 집념이 빚은 맨해튼 이야기(1)

물결 위의 천국, 레나페족의 '마나하탄' 시대

by 박성기
레나페호킹 지도(16세기 무렵 뉴저지, 남부 뉴욕, 동부 펜실베이니아를 비롯한 많은 레나페 연합이 이곳에 기반을 두었다)


"자연의 걸작은 우선순위를 논할 수 없다. 그러나 인류가 빚어낸 무수히 많은 걸작 중에는, 그 순위를 감히 논해볼 만한 단 하나의 정점이 존재한다. 필자는 그 정점을 미국 뉴욕 '맨해튼'이라 단언한다. 맨해튼이야말로 인류가 만든 최대의 걸작이다. 지금부터 이 웅장한 걸작이 오늘날의 모습으로 탄생하기까지, 강철과 집념이 빚어낸 맨해튼, 12편의 역사적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물결 위의 천국, 레나페족의 '마나하탄' 시대>


오랜 옛날, 지금의 뉴욕항을 감싸고 흐르는 허드슨강(왼쪽 강)과 이스트 강(동쪽 강) 사이에 길고 나무가 울창한 언덕의 섬이 있었습니다. 그 섬의 주인은 자신들을 '진정한 인간'을 뜻하는 레나페(Lenape)라 불렀습니다. 이들은 델라웨어족(Delaware)이라고도 불리는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입니다.


이 섬은 레나페어로 '마나하탄(Manaháhtaan)'이라 불렸습니다. 이는 '많은 언덕의 섬' 또는 '나무를 모으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레나페족을 포함한 인류는 약 3,000년 전부터 이 지역에 거주해 왔으며, 유럽인들이 도착할 때까지 수천 년 동안 마나하탄을 포함한 광범위한 영토(레나페호킹)를 터전 삼아왔습니다. 레나페족에게 마나하탄은 울퉁불퉁한 지형과 풍부한 생태계를 갖춘 생명의 보금자리였습니다.

레나페족의 삶은 자연의 순환에 맞춰 조화롭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계절에 따라 거주지를 옮겨 다니는 반유목적 삶을 살았습니다. 여름에는 강가에서 옥수수, 콩, 호박을 함께 심는 '삼자매 농법'을 사용했고, 강과 바다에서 풍성한 어업을 이어갔습니다. 겨울에는 섬 내부의 깊은 숲으로 이동하여 수렵 활동에 집중했습니다. 이동할 때는 사냥꾼들이 만든 오솔길을 이용하거나, 수로를 따라 카누를 타고 움직였습니다.


레나페족에게 허드슨강 유역에서 흔했던 아메리카 비버(American Beaver)는 중요한 자원이었습니다. 비버는 단백질 공급원이자, 방수성과 내구성이 뛰어난 모피로 옷과 생활용품을 만드는 귀중한 자원이었습니다.


레나페족은 땅에 대해 독점적인 소유 인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땅은 누구도 절대적으로 소유할 수 없는, 모두가 함께 이용하고 보살펴야 할 공유의 개념이었으며, 그저 삶을 지탱하는 터전일 뿐이었습니다.

유럽인의 접근으로 천국은 깨지기 시작합니다. 레나페족과 유럽인의 첫 접촉은 1524년, 탐험가 조반니 다 베라치노가 로어 뉴욕만으로 들어왔을 때입니다. 그는 카누를 탄 레나페족의 환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변화는 1609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아시아로 가는 북서항로를 찾던 영국의 탐험가 헨리 허드슨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피고용인으로서 북미 동해안을 탐사했습니다. 그는 지금의 뉴욕만으로 들어와 맨해튼 상류로 길게 뻗은 강을 발견했고, 그때부터 그 강은 허드슨강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발견은 네덜란드에게 막대한 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허드슨 강 유역의 풍부한 비버 모피 자원은 17세기 유럽 귀족들의 고급 사치품이었던 펠트모자의 원료였기 때문입니다.


1613년, 네덜란드 식민지 개척자들이 맨해튼에 무역소를 세우며 정착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624년에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을 상징하는 공식 식민지인 뉴 암스테르담을 설치했습니다.


수천 년간 지속되었던 물결 위의 천국, 레나페족의 '마나하탄' 시대는 막을 내립니다. 17세기 초, 멀리서 불어온 유럽의 상업적 욕망과 함께 그 조화로운 시간은 영원히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KakaoTalk_20251030_004635269.png?type=w1 래나페 족 추장 라파원소


다음 편은 '항해시대의 확장과 북미 대륙'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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