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을 읽을 때마다 완벽한 삶을 살았던 영웅들의 모습에 압도되곤 합니다. 시종일관 흠없는 완벽한 위인도 존재할 것입니다. 하지만 세월을 살아보니, 완벽한 위인은 흔치 않을 것이라라는 생각이 듭니다. 위인들 역시 자신의 소신을 100% 지키기 어려운 시대적 한계에 부딪쳤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보통 사람처럼 말입니다.
오늘은 이러한 시각으로 조선 중기, 병자호란 직전의 혼란한 시대를 살았던 평안도 관찰사 박엽(朴燁)을 조명해 봅니다. 그는 '완벽한 위인'은 아니었습니다. 국가적 위기 앞에서 대체 불가능했던 능력과 고독한 결단을 내린 '부분적 위인'이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의 광해군일기를 박엽은 평안감사로 있으면서 "탐욕스럽고 포학하며 방자해서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하나 나는 거기에 개의치 않는다. 인조반정을 성공한 사가들이 광해군의 동서였던 박엽의 기록을 공정하게 했을 리 없다.
박엽에 대한 기억의 변화를 더듬어보면 18세기에 들어 이덕무의 기록에서는 그의 장점을 부각하려고 노력하는 면이 보인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는 평안도 지역 백성들이 그에 대한 기억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전승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게다가 박엽의 삶 전체가 아닌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위인적인 면의 발굴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오랑캐를 떨게 한 '국방의 방패': 그의 탁월한 실무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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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청, 김&장, FBI, 법무사협회, 서울시법무사로서 40년을 법조(행정)분야에 종사하였습니다. <생활법률, 창과 방패>, 자기계발, 역사인물 등 다양한 브런치를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