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글은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 93학번인 호창성 대표와 이화여대 특수교육학과 94학번인 문지원 대표 부부가 설립한 관심사 기반 커뮤니티 서비스입니다. 미국 유학시절 영상 콘텐츠 자막 서비스 비키닷컴(www.viki.com)을 창업한 두 대표는 2013년 9월 라쿠텐에 2억 달러라는 금액으로 비키를 매각하면서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성공신화를 창조했습니다. 그러나 두 대표는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비키의 경험을 살려 2011년 11월 관심사 기반 커뮤니티 서비스인 빙글을 설립. 2012년 7월 베타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빙글의 가장 큰 특징은 인맥 위주의 기존 SNS와 달리 관심사를 중심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커뮤니티 SNS라는 점입니다. 음악, 영화, 패션 등 빙글에 등록된 2000여개의 관심사 중에 원하는 관심사를 선택하면 유저의 취향에 맞춰 콘텐츠를 노출하고 유저들끼리 관심 분야의 콘텐츠를 공유, 소통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친구로 등록한 사람들의 글이 나의 피드에 표시되는 방식이라면 빙글은 자신이 선택한 관심사에 등록된 글이 나의 피드에 표시되는 방식입니다. 기존 인맥 위주 SNS가 원치 않는 콘텐츠나 사생활 노출, 무분별한 광고 등의 부작용이 있었던 반면 빙글은 내가 관심 있는 주제의 글들만 표시되기 때문에 사용자가 원하는 글만 골라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12년 7월 카카오가 운영하는 케이큐브벤처스로부터 45만 달러의 투자 유치, 2014년 상반기 월간 순 사용자 수 200만, 2015년 하반기 월간 순 사용자수 1000만, 월간 페이지뷰 3억뷰 달성 등 빙글은 승승장구하고 있었습니다. 빙글의 최전성기라고 일컬어지는 2015년 10월에는 한국인이 사용하는 SNS 순위에서 트위터를 제치며 5위를 차지할 정도로 기세가 대단했죠. 빙글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2015년 후반까지만 해도 말이죠.
저는 조회수를 찾아 인터넷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 장돌뱅이였습니다. 소설가가 꿈일 정도로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고 이런저런 잡스러운 것에 관심이 많았단 데다가 나름 글솜씨가 있어서 여러 커뮤니티를 돌면서 글을 마구 배설했고 몇몇 커뮤니티에서는 본의 아니게 다소간의(?) 명성을 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자그마한 이름값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제 글에 자부심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제 글을 읽어주었으면 하는 열망으로 항상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많은 조회수를 찾아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렸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발견한 곳이 빙글이었습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 때가 (사실 인도인 줄 알고 있었겠지만...) 이런 느낌이었을까요. 온라인 장돌뱅이가 보기에 빙글은 정말 신세계 같은 곳이었습니다. 관심사별로 타겟팅이 명확했고 제대로 된 글에 굶주려있는 유저들이 그득그득했는데 정작 제대로 된 콘텐츠를 생산하는 생산자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콘텐츠만 괜찮으면 조회수가 폭발적이었죠. 조회수도 빵빵 터지고 유저들의 피드백도 좋아서 글 쓰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사정이 많이 달라졌지만 2010년 초반, 인플루언서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게시판에 글을 쓰는 온라인 장돌뱅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줄까입니다. 글 쓴다고 돈이 나오는 게 아니니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읽고 님 좀 짱인듯 엄지척을 받는 순간이 가장 큰 보람이었고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었죠. 온라인 장돌뱅이들은 기본적으로 관종입니다. 지금 인플루언서들도 마찬가지고요. 조회수가 잘 나온다면 조선중앙통신이나 로동신문에도 글을 올릴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사람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빙글은 최고의 플랫폼이자 블루오션이었죠. 온라인 장돌뱅이들이 빙글에 속속 입성했고 커뮤니티가 양질의 글로 채워지기 시작하면서 유저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커뮤니티가 커지고 방문자가 늘어나면서 그에 비례해 광고글과 스팸글이 조금씩 증가하기 시작합니다. 전 직원 20명 남짓, 그마저도 엔지니어를 빼면 손에 꼽을 인원으로 백만명이 넘는 방문자들이 올리는 신고와 스팸글들을 처리하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이었겠죠. 내부 모니터링 요원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뮤니티가 비대해지고 체계적이고 규모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이 필요할 때 대형 커뮤니티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법은 외주입니다. 중국에 관리자급을 한 명 박아놓고 한국어에 능통하지만 인건비가 싼 조선족을 이용해 커뮤니티를 관리하던가 중간 관리자급 한 명에 저렴한 알바를 동원해서 관리하는 게 아마도 보편적인 방법일 겁니다. 네이버와 디씨가 그랬듯이요. 하지만 빙글은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특이한 방법을 고안해냅니다. 바로 모더레이터 시스템입니다.
모더레이터란 커뮤니티에 애정을 가지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유저가 관리자로 지원하면 심사를 통해 관리권한을 부여하는 일종의 커뮤니티 관리자 같은 개념입니다. 3개월 임기의 모더레이터(관리자)에게는 아래와 같은 특전을 제공합니다.
커뮤니티 히스토리에 모더레이터의 아이디가 박제
최상단 2개 영역을 모더레이터가 선정한 카드로 채울 수 있음
해당 커뮤니티에 발행된 카드를 숨기거나 태그를 해제할 수 있음
모더레이터가 도입된 2014년 초기에는 모더레이터 제도가 그럭저럭 잘 돌아갔었습니다. 진짜 커뮤니티에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더레이터에 지원했고 사람들도 잘 따라줬으니까요. 하지만 모더레이터 도입 이전에 빙글에는 두 가지의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모호한 커뮤니티의 구분 문제였고
또 하나는 명확하지 않은 가이드라인이었죠.
빙글은 글을 쓰면 나의 글을 여러 곳의 커뮤니티에 발행할 수 있었습니다. 가령 내가 남자가방과 관련된 글을 쓰면
1. 남성가방
2. 남성패션
3. 남성악세사리
4. 남성스트릿패션
이렇게 여러 곳의 커뮤니티에 내가 올린 글을 동시에 노출할 수 있었죠. 글을 게시판의 성격에 맞춰 올린다는 건 예전부터 여러 커뮤니티의 분쟁 소재기도 했지만 (질게로~) 빙글의 진짜 문제는 올릴 수 있는 커뮤니티 개수의 제한이 너무 많았다는 겁니다. 하나의 글을 최대 20개 커뮤니티까지 노출할 수 있었죠. 글 작성자들은 나의 글이 최대한 많은 곳에 노출되었으면 하는 욕망으로 최대한 많은 커뮤니티에 글을 링크했고 이용자들은 커뮤니티와 적합하지 않은 글의 홍수 속에서 커뮤니티 정체성의 혼란을 느껴야 했습니다. 나는 분명 남성 스트릿 패션 커뮤니티에 왔는데 자꾸 넥타이 매는 법이라던가 포멀한 정장 고르는 법 같은 카드를 계속 봐야했죠.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사실 간단했지만 (글을 하나 쓸 때 노출할 수 있는 커뮤니티의 수를 최대 3~5개로 제한하면 됨) 빙글은 커뮤니티에 글수가 많아 보이게 하려는 미명하에 이 문제를 의도적으로 방치했습니다.
그리고 빙글이 시작되었던 지점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가장 크리티컬한 문제점. 바로 명확하지 않은 커뮤니티 관리 가이드라인입니다.
한 달에 200만명이 방문하는 커뮤니티인데 가이드라인이 허술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광고는 안되는데 정말 좋은 내용을 담고 있다면 허락해줄 수도 있어 / 외설적이고 폭력적인 건 안돼 / 적절하지 않은 커뮤니티에 발행하지 않았는지는 니가 직접 생각해봐.
가이드라인이라기보다는 올리는 사람이 알아서 잘하라는 공지에 가깝습니다. 회원수가 10만명이 넘는 네이버 카페만 봐도 카페 수칙이 훨씬 엄격하고 디테일합니다.
명확하지 않은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은 필연적으로 모더레이터의 자의적 해석을 낳았습니다. 예를 들면 정보를 약간 담고 있는 동일한 광고글이 남성패션과 남성 스트릿패션 2개 커뮤니티에 발행되었을 경우 남성패션 관리자(모더레이터)는 그 글을 정보성 글이라고 판단해 별도의 조치를 하지 않았지만 남성 스트릿패션 관리자는 해당 글을 광고글이라고 판단하고 커뮤니티에서 노출 제한을 걸어버립니다.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으니 이렇게 모더레이터의 자의적 해석에 따라 어떤 커뮤니티에서는 노출이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하는 거죠.
빙글이 한창 성장하고 있던 시절에 이런 문제가 심각했는데 빙글을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 개념으로 판단한 많은 블로거들이 블로그 글 링크만 달려있는 글을 빙글에 업로드했고 모더레이터들이 해당 글을 노출 제한을 걸고 간섭하면서 작은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빙글이 몰락이 예견되던 시점이었습니다.
빙글 얘기를 하기 전에 잠깐 제 얘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태생이 장돌뱅이인 탓에 여기저기 커뮤니티를 떠돌면서 다양한 커뮤니티 유형을 경험했고 몇몇 커뮤니티에서는 운영진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십수년전에는 하루에 방문자 만명을 찍는 자그마한 사이트를 운영했던 경험도 있었죠 (서버비가 없어서 망했...) 제가 다년간의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얻은 교훈이 딱 두 가지 있습니다.
운영자(관리자)는 있는 듯 없는 듯 활동해야 한다.
커뮤니티는 항상 신규 사용자들이 유입되어야 한다. 고여버리면 그 커뮤니티는 끝이다.
제가 모 사이트를 운영하던 시절. 공지나 커뮤니티를 관리하는 관리자 아이디와는 별개로 커뮤니티 활동을 위한 비밀계정이 하나 있었습니다. 내가 좋아서 만든 사이트니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는 싶은데 관리자의 위엄(?)도 있고 관리자 아이디로 커뮤니티 활동을 하다가 큰 내홍을 겪은 뒤로 아무도 모르는 비밀계정을 하나 파서 그걸로 열심히 사람들과 친목질을 하고 놀았죠. 제가 서브 아이디로 활동했던 건 모 사이트 운영자분이 저에게 했던 얘기 때문이었습니다. 관리자는 있는 듯 없는 해야 한다. 광고글이나 회원 간의 분란이 발생했을 시에는 누구보다 발 빠르게 대처해야 하지만 회원들과 친목질은 절대 금기다.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기 시작하면 커뮤니티가 망가진다. 정 친목질을 하고 싶거든 서브 아이디를 파서 그걸로 놀아라.
고백하자면 저는 빙글 모 커뮤니티의 모더레이터였습니다. 6개월 정도 모더레이터 활동을 했었고 빙글의 격동기와 모더레이터 도입의 부작용을 온몸으로 겪은 사람 중 하나였죠. 제가 모더레이터가 될 수 있었던 건 그 커뮤니티에서 많은 글을 올리면서 가장 열성적으로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위의 커뮤니티 운영 지론에 따르면 저는 관리자가 되면 가장 안될 유형의 인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빙글에는 저 같은 관종 수십명이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커뮤니티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눈에 안 봐도 훤한 상황이었죠.
제가 모더레이터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기준이었습니다. 이 글이 우리 커뮤니티에 맞는 글인가? 노출제한을 해야 되나? 이건 정보성 글인가 광고글인가? 명확한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초반에는 상당히 우왕좌왕했었죠. 저뿐만 아니라 다른 모더레이터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더레이터가 중심을 잘 잡아줘서 잘 운영되고 있던 커뮤니티도 있었지만(대표적으로 사랑과 연예) 대부분은 빙글 자체에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존재하질 않다 보니 본인 기준대로 커뮤니티를 운영했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은 모더레이터의 운영방식에 적응하지 못해 커뮤니티를 떠났고 헤비 유저들만 남게 되면서 커뮤니티가 서서히 고이기 시작합니다.
티비 광고를 하고 언론에서 빙글의 성공을 예견하던 2015년말. 명확하지 않은 가이드라인, 모더레이터의 완장질, 서서히 고여가는 커뮤니티 등 복합적인 문제로 빙글은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었습니다.
빙글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시작은 모더레이터 제도입니다. 단지 커뮤니티에서 열심히 활동했다는 이유만으로 커뮤니티 운영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을 관리자로 임명한 결과 사이트의 혼란스러운 정체성과 정책, 모더레이터들의 운영방침이 신규 유저들에게 진입장벽이 되기 시작했고 커뮤니티는 기존 유저들만으로 점점 고여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 의문을 가져봐야겠죠?
모더레이터라는 제도는 누가, 어떻게, 왜 만든 걸까?
모더레이터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호창성, 문지원 대표의 이전 성공작인 Viki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키의 성공이 빙글을 창업하는데 큰 계기가 되었고 비키의 많은 부분을 빙글이 차용했기 때문이죠.
매일경제 2013년 12월 13일 기사
韓드라마 163개 언어 번역…`집단지성`이 수익모델이죠 비키닷컴 CEO 라즈믹 호바히미안 인터뷰 中
- 비키닷컴의 수익 모델을 설명해달라.
▶ 우리는 방송사나 영화사로부터 콘텐츠를 사서 회원들한테 제공한다. 회원들에게 제공하는 동영상 시작 전이나 중간에 광고를 붙여 수익을 얻는다. 우리처럼 스트리밍 동영상을 서비스하는 훌루(Hulu), 넷플릭스(Netflix) 같은 파트너들에게도 자막이 번역된 콘텐츠를 판매하고 있다.
- 비키닷컴 회원들이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자막을 번역한다. 비전문가들의 작업인 만큼 번역의 질에 문제는 없나?
▶하나는 피어 리뷰(peer review)다. 여러 회원들이 남들이 단 자막을 평가하고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우수한 번역가를 선별할 수 있다. 회원들은 피어 리뷰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더욱 정확한 번역을 하게 된다.
또 채널마다 하나의 매니저를 배정한다. 채널 매니저가 해당 콘텐츠의 번역이 제대로 됐는지를 점검한다. 매니저들은 의학드라마의 정확한 번역을 위해선 응급실 간호사를 섭외하고 법률드라마를 번역할 때는 변호사의 자문을 구한다. 비키닷컴 동영상의 번역은 단순한 아마추어리즘이 아니다.
중앙일보 2014년 10월 20일
2100억에 회사 매각하고도 쉴 틈 없다, 문지원 호창성 부부가 사는 법
부부는 비키가 안정적인 단계에 접어들자 다시 창업 카드를 들었다. 2011년 서울에서 ‘빙글’을 창업한 것. 비키의 시즌2를 만들어보자는 데 의기투합했다. 문 대표는 “비키를 통해 커뮤니티의 파워, 집단지성이 주는 혁신의 힘을 경험했다”며 “돈 버는 일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동영상을 번역해 공유하는 사람들의 열정을 다른 분야로 확장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빙글은 비슷한 취미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관심사에 관한 정보나 의견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커뮤니티 플랫폼이다. 기존 오프라인 인맥이나 유명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페이스북·트위터 같은 SNS보다 관계도, 정보도 더 깊다. 매달 조회되는 페이지수(페이지뷰)가 지난 5월 1억건을 돌파했다. 이용자의 40%는 미국·유럽·중남미·아시아 각국에 있다. 빙글이 인맥SNS 다음을 이어갈 SNS라고 기대를 받는 이유다.
비키는 영상 저작권을 구매하여 각국의 번역가들이 자발적으로 번역에 참여, 회원들에게 다국어 영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입니다. 이용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집단지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플랫폼이고 이 집단지성이 빙글을 창업하게 된 모티브였죠. 비키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번역을 담당하는 채널 매니저라는 직책입니다. 채널 매니저는 영상번역과 번역퀄리티 제어를 담당하는 일종의 PM같은 역할입니다. 직접 번역에 참여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작업한 번역의 감수를 담당하거나 혹은 번역가를 섭외하고 전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하죠. 이제 좀 감이 오시나요? 빙글의 모더레이터 제도는 이 채널 매니저를 본떠 만든 제도입니다. 영상번역이 커뮤니티 관리로 바뀌었을 뿐 본질적인 형태는 동일합니다.
비키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이용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집단지성이었습니다. 콘텐츠를 수입하여 저작권만 해결해주고 번역할 수 있는 플랫폼만 갖춰주면 나머지는 이용자들이 알아서 다 해줬으니까요. 체계만 갖춰진다면 서비스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이것만큼 편한 일이 없죠. 돈 한 푼 받지 않고 자기가 알아서 다 번역하고 감수까지 진행해주니까요. 빙글은 비키의 자발적인 참여와 집단지성의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모더레이터라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비키의 채널 매니저라는 성공모델이 이미 존재했으니 이론상으로는 잘 돌아갈 것 같았죠. 그런데 두 대표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영상번역과 커뮤니티의 본질적인 생태계 차이입니다.
영상 번역은 비키 이전부터 이미 음지에서 알음알음 나름 체계를 갖춰 진행되던 서비스였습니다. 영상 번역을 하는 전문 번역팀도 많았고 내부적으로는 나름 체계적인 시스템도 갖춰져 있었죠. 부족한 건 비키와 같은 양지의 플랫폼이었을뿐 생태계 자체는 이미 훌륭하게 갖춰져 있었습니다. 비키는 이 니즈를 잘 파고든 서비스였고요.
영상 번역가들이 무급으로 자막을 만드는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꽤나 복합적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영상물을 많은 사람이 봐주었으면 하는 순수한 동기일 수도 있고 외국어 공부를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어느 무료한 외국어 전문가의 취미생활일 수도 있죠. 만국공통으로 영상번역의 암묵적인 룰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수익을 창출하지 않는다라는 점입니다. 참여자들이 수익을 창출할 생각도 없고 이미 시스템과 체계가 어느 정도 갖춰져 있으며 그 시스템과 체계를 통해 영상번역을 해본 사람이 많은 아마추어 영상번역 시장은 자발적인 참여와 집단지성이 아주 훌륭하게 작동되는 시장입니다. 비키 이전에도 이미 이러한 시장은 존재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커뮤니티는 좀 다릅니다. 작은 사회라고 불릴 정도로 인간의 모든 욕망과 군상의 집합체인 곳이 바로 커뮤니티 서비스이지요. 커뮤니티가 크던 작던 각종 분란과 이용자들 간의 분쟁이 항상 발생하여 관리자는 끊임없이 개입하고 조율해야 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커뮤니티 활동을 즐기는 사람, 악플러, 상업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 등 온갖 인간 군상들이 존재하고 각자의 이해관계 역시 다릅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욕망과 이해관계를 컨트롤하려면 강력한 통제 정책과 규칙이 필요합니다. 커뮤니티 서비스는 사이트의 성격이나 운영자의 관리 방침에 따라 일베가 될 수도 오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용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집단지성보다는 관리자의 역할이나 경험, 전문성이 그 어떤 곳보다 중요한 서비스지요.
두 대표는 아마추어 영상번역과 커뮤니티 서비스가 가지는 본질적인 차이점을 간과했거나 혹은 인식했더라도 너무 나이브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비키가 그랬던 것처럼 작은 문제나 분란은 집단 지성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죠. 사용자가 얼마 없던 시절에는 사이트가 그럭저럭 잘 굴러갔지만 이용자가 많아지고 상업적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모더레이터와 신규 이용자들간의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모더레이터들은 커뮤니티를 관리해본 경험이 부족했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중심을 잡아줘야 할 빙글은 자발적인 참여와 집단지성이라는 미명하에 이용자들 간의 분란을 방치했습니다. 커뮤니티의 규모가 커지면서 성장통을 겪는 건 어느 사이트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지만 빙글의 문제는 성장통이 아니라 관리 정책의 본질적인 부재였습니다.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해야 할 시기, 빙글은 관리 정책의 부재에 따른 내홍을 겪으면서 성장의 소중한 기회이자 시간을 놓쳐버리고 맙니다. 신규 유저가 유입되지 않고 기존 유저들도 서서히 떠나가면서 빙글의 침체가 시작됩니다.
빙글은 관심 기반 SNS로 자사의 서비스를 홍보했지만 본질은 관심기반 커뮤니티였습니다. 일부 디자인 변경이나 개인화 강화 등의 마이너 업데이트가 있긴 했지만 서비스의 성격은 2016년까지 크게 변하지 않았죠.
관계중심의 1세대 SNS인 싸이월드, 네트워크 중심의 2세대 SNS인 트위터ㆍ페이스북에 비해 핀터레스트로 대표되는 3세대 SNS 소셜 큐레이션 서비스의 특징은 바로 관심사 중심이었습니다. 인맥 위주의 기존 SNS는 내가 좋아하는 정보만 모아볼 수 없으니 내가 좋아하는 정보만 모아보고 싶다라는 니즈가 3세대 SNS를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됐죠. 3세대 SNS가 관심사를 주제로 모인 만큼 사람들과의 소통보다는 콘텐츠 소비 중심으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대표적으로 핀터레스트가 그랬고 빙글도 그랬죠.
즉 소셜 큐레이션 서비스는 콘텐츠 생산과 소비 / 이용자 간의 소통이 양립하기 어려운 구조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빙글은 어떤 시점에 서비스의 정체성을 결정해야만 했습니다.
커뮤니티를 강화시켜 SNS계의 디씨인사이드가 될 수도 있었고 관심사를 강화시켜 핀터레스트와 유사한 스타일의 소셜 큐레이션 서비스가 될 수도 있었죠.
이용자 수가 피크를 찍은 2015년 하반기 이후로 방문자, 순이용자 등 빙글의 주요지표는 점점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서비스는 여전히 광고글의 홍수 속에 몸살을 앓고 있었고 빙글은 수익화를 위해 초정밀 타겟광고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서비스 론칭 4년차. 반전을 위해 무언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기였죠.
위기 상황 속 빙글이 꺼낸 반전 카드는 바로 1열 피드였습니다.
그동안 빙글의 디자인 변천사를 보면 일관된 흐름이 하나 있는데 바로 서비스의 핵심 영역인 커뮤니티와 카드(게시글)는 건드리지 않고 노출방식이나 UI, 개인화 등등의 마이너 한 디자인 업데이트만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4.0에서는 커뮤니티(디씨인사이드의 갤러리 같은 개념)를 없애고 이를 해시태그로 대체한 다음 2열 피드 방식을 1열 피드로 바꿨습니다. 서비스의 정체성을 뒤흔들 정도로 엄청난 변화였죠.
빙글이 다른 SNS와 차별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커뮤니티였습니다. 일일이 내가 원하는 정보를 찾아보지 않아도 커뮤니티만 들어가면 커뮤니티에 해당되는 정보들만 모아볼 수 있다는 게 빙글의 가장 큰 장점이었죠. 운영이나 정책상의 문제가 있긴 했지만 그건 운영단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지 관심사를 송두리째 없애버릴 정도로 이슈는 아니였습니다. 커뮤니티를 없애버리는 순간 빙글은 핀터레스트와 차별점이 사라지게 되는 거니까요. 빈대 잡자고 초가집을 태운 격이랄까요.
1열 피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열 피드는 화면에 글이 최대 4개, 1열 피드는 최대 1개 글이 노출되게 됩니다.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사진과 제목을 확인한 후 내가 원하는 글이 있으면 해당 글을 보는 것이 그동안 빙글을 이용하는 주요 형태였는데 커뮤니티를 없애버리고 1열 피드로 UI를 바꾸면 유저는 내가 보고 싶은 글을 찾기 위해 아래로 끊임없이 스크롤을 내려야 합니다. 이용형태 자체가 송두리째 바뀌어버리는 거죠. 그동안 트위터나 페이스북처럼 내가 원하는 글을 보기 위해 스크롤을 내려야 하는 경험이 싫어서 빙글에 오는 사람들에게 기존 SNS와 다름없는 경험을 강요하는 셈입니다.
빙글이 꺼낸 반전카드의 효과는 확실했습니다. 최절정기이던 2015년 10월 이후 서비스 지표는 조금씩 하락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10위권 중하위 정도는 유지하고 있었는데 2017년 8월 업데이트를 단행하자마자 유저들이 대거 이탈하였고 2018년 상반기 이후로 순위권 내에서 빙글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 어째서? 이런 업데이트를 단행한 것일까? 한 언론 기사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2016년 11월 14일 - 한국경제TV
[SNS 풍향계] SNS 마케터가 지금 빙글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문지원 대표는 "지인 기반 콘텐츠의 경우 내 친구가 좋아하는 게 내가 좋아하는 것과 100%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에 클릭률이 떨어지는 반면 빙글은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콘텐츠만 노출되기 때문에 클릭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며 "관심없는 사람한테 광고는 스팸이지만 관심이 있는 사람한테는 광고도 정보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관심없는 사람에게 광고는 스팸이지만 관심있는 사람에게 광고도 정보가 될 수 있다라는 인터뷰 문구를 보면 그동안 운영진측에서 광고글을 의도적으로 방치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모호한 정책과 가이드라인이라는게 사실은 운영미숙이 아니라 다분히 의도였다는 얘기죠.
또 광고 서비스를 시작한 만큼 현재 2열구조의 피드가 페이스북처럼 1열로 바뀔 예정이다. 통상적으로 스마트폰 화면에 이미지나 텍스트가 꽉 찬 구성일 때 광고주 자체 사이트로의 전환율이 높기 때문이다.
마지막에서 결정적인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2열 피드를 1열 피드로 바꾼 이유는 광고 전환율과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던 거죠. 운영진 입장에서 1열 피드로의 전환은 고인물도 어느 정도 순환시키고 광고효과도 높일 수 있는 1석 2조의 개편 효과였던 겁니다. 결과적으로는 최악의 수였지만요.
빙글은 분명 글로벌 SNS가 될 수 있는 포텐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삼성전자 출신의 M&A 전문가, 비키의 성공경험을 통해 유치한 많은 투자자금, 비키에서 건너온 능력있는 개발자들과 스타트업의 꿈을 쫓아 빙글에 온 세계 각국의 인재들 등 구성원들의 면면은 더할나위없이 훌륭했습니다.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를 비키가 번역했던것 처럼 빙글 역시 한류바람을 타고 글로벌로 진출했다면 빙글의 현재 모습은 글로벌 SNS 유니콘 기업이 되어있었을지도 모르죠.
빙글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누적된 실책들이 쌓이고 쌓여 임계점에 다다른 다음 폭발한것 뿐이죠.
모더레이터 제도를 도입해 커뮤니티를 고이게 만들었고
광고글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으며
모호한 정책으로 인해 이용자들의 혼란을 가중시켰으며
서비스의 방향성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한 채
문제점을 해결하겠다고 UI를 통째로 바꿔 버린
결과 장점을 잃은 빙글에 많은 유저들이 떠나갔습니다.
운영진은 지나치게 사람들의 선의를 믿었고 커뮤니티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비키의 성공모델을 앞세워 빙글을 운영했습니다. 빙글을 사용하는 유저들의 경험 (User experience)을 등한시한 채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만 앞세운 결과가 현재 빙글의 현주소 입니다.
빙글이 주는 교훈은 단순합니다.
사이트의 근본적인 문제는 UI/UX로 해결할 수 없다. UI/UX는 도구일뿐이다.
좋은 아이디어와 자원이 있더라도 잘못된 방향성과 정책으로 서비스를 운영하면 사람들은 떠나간다.
한번 떠나간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사람들의 선의를 믿지 말라.
빙글에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활동했던 모더레이터 중 한사람으로서 활기넘치고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 시절의 빙글이 그립습니다. (사실 그 시절의 젊었던 내 모습이 더 그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