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쿠팡의 뉴욕증시 상장신청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정부는 한국 유니콘 기업의 쾌거라며 한껏 들썩였고 관련주는 상한가를 기록하며 시장의 기대치를 높이고 있습니다. 외국 자본의 한국 유통시장 잠식, 차등 의결권 등 여러가지 논란이 있지만 언론에서는 쿠팡의 뉴욕시장 상장에만 주목할 뿐 이면에 숨겨진 진짜 쿠팡 이야기는 꺼내지 않습니다. 오늘은 쿠팡이 뉴욕시장에 신고한 상장신고서 S-1 자료를 바탕으로 언론에서 이야기하지 않는 진짜 쿠팡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위워크가 불러온 나비효과 - 유동성 위기
한때 기업가치 470억달러(약 52조)로 평가받던 위워크는 2019년 8월 상장을 위한 실적 공개에서 2018년 매출 18억 달러 / 순손실 -19억 달러로 (1달러를 벌기 위해 2달러를 썼다는 이야기) 경악할만한 실적을 공개하며 시장의 빈축을 샀고 결국 2019년 10월 상장을 자진 철회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위워크 사태가 불러온 파장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2019년 10월까지 위워크에 185억 달러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비전펀드는 20년 3월 소프트뱅크 그룹 결산 실적에서 19년 4월~20년 3월까지 1조 3646억엔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이 중 손정의 회장이 주도한 비전펀드의 투자손실이 1조 8000억엔으로 절반 이상이 위워크 투자 실패에 따른 손실 금액이었죠. 투자의 귀재, 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렸던 손정의 회장의 명성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2019년 출범한 비전펀드 2호는 목표금액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채 손정의 회장의 체면을 구겼습니다.
위워크 파동의 불씨는 쿠팡까지 번지게 됩니다. 손정의 회장이 쿠팡의 쩐주였기 때문이죠.
쿠팡은 계획된 적자라는 명분 하에 몸집을 키우고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데 주력했습니다. 수익보다는 회사를 키워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이른바 블리츠스케일링(blitzscaling) 전략이죠. 손정의 회장의 투자전략도 동일합니다. 우버와 위워크의 사례처럼 계획된 적자를 감수하고 지배력을 끌어올려 시장을 장악하려는 스타일의 기업을 좋아하죠. 손정의 회장이 쿠팡에 투자를 결심하게 된 건 그 이유였을 겁니다. 그 시점에서 한국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블리츠스케일링을 구사하는 기업이 바로 쿠팡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제 생각이지만 위워크 사태가 없었더라면 쿠팡이 시장을 장악할 때까지 손정의 회장은 계속 투자금을 지원해줬을 겁니다. 18년 쿠팡에 실탄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20억달러를 쏴준 게 손정의 회장이었으니까요. 사실 비전펀드 입장에서 20억 달러 정도는 푼돈이기도 하고요.
김범석 의장은 쿠팡이 시장을 장악할 때까지 비전펀드가 든든한 뒷배 역할을 해줄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뒤도 안 보고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할 수 있었겠죠. 김범석 의장 입장에서 위워크 사태로 인한 비전펀드의 투자규모 축소와 엑싯 선언은 마른하늘의 날벼락같은 일이었을 겁니다.
뒤를 봐주는 쩐주가 사라져 버렸으니까요.
당장 유동성에 빨간불이 들어옵니다. 그동안 받은 투자금은 적자로 다 까먹었고 신규 투자계획에 인건비에 돈 나갈 곳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곳간에 실탄은 없습니다. 이리저리 돈을 구해보기로 합니다.
2020년 5월 14일 더벨
문제는 쿠팡의 큰손 역할을 했던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가 현재 투자 실패로 인한 어려움으로 추가 지원이 어려울 수 있다는 데 있다. 결국 쿠팡은 소프트뱅크 이외의 투자유치나 자금조달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HSBC 등 외국계은행 등과 1500억원 한도의 차입약정을 신규로 체결하기도 했다. 재고자산이 담보다. 최대주주인 쿠팡LLC가 지급보증을 섰다는 점이 눈에 띈다. 쿠팡LLC의 최대주주인 소프트뱅크측이 사실상 지급보증을 섰다는 얘기다.
정의형은 역시 의리 있는 형입니다. 직접 투자금을 집행하긴 어려우니 보증까지 서주면서 실탄을 지원해줬죠. 어지간히 쿠팡을 믿고 있나봅니다.
매출채권을 담보로 유동화에 나섰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우리은행으로부터 약 300억원 규모의 유동화 계약을 체결했다.
(중략)
지난해부터 쿠팡이 일부 증권사에 해당 건을 타진했지만 매출처와 쿠팡의 신용도를 문제 삼아 거절당했다. 우리은행 역시 대출심사부 등에서 쿠팡의 적자기조 등을 문제 삼았지만 오랜 거래관계 등을 감안해 유동화가 진행됐다.
1군 은행권에서는 담보대출마저 막힐 정도로 현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상황인 듯 보입니다.
쿠팡의 19~20년 재무제표 중 부채 항목 쿠팡의 현금유동성 위기는 뉴욕증시 상장신고서인 S-1 보고서에도 잘 드러나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부채가 급증했는데 그중 주목할만한 건 단기차입금의 증가비율입니다. 단기차입금은 이율도 비싸고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돈이기 때문에 어지간히 급전이 필요한 게 아니면 잘 땡겨쓰지 않는 돈입니다. 실제로 2019년 쿠팡의 단기차입금은 3억 정도로 매우 적은 금액이었죠.
뭐 이리저리 땡긴다고 땡겨봐야 결국 땡겨올 수 있는 돈은 2~3천억 남짓일 겁니다. 공격적인 확장은커녕 몇 달치 운영비도 안되는 돈이죠. 그런데 쿠팡은 여전히 쿠팡맨을 뽑고 물류창고를 짓고 과감한 투자를 집행합니다. 돈이 대체 어디서 나는걸까요? 여기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비밀이 하나 숨겨져 있습니다.
돈이 없다고? 답은 돌려막기다!
투자받은 건 적자로 다 까먹었고 추가 투자 유치와 대출도 여의치 않은 상황. 긴축경영을 해도 모자랄 판에 쿠팡은 어디서 돈이 나서 저렇게 펑펑 써재끼는 걸까? 설마 김범석 집 뒷마당에 석유가 나오나? (거긴 아파트인데...)
답은 정산일에 있습니다.
고객이 오픈마켓에서 물건을 구매할 때 결제는 오픈마켓에서 진행하게 됩니다. 결제가 완료되면 오픈마켓은 판매자에게 물품 배송을 요청하고 고객이 물건을 받은 다음 구매확정을 누르면 오픈마켓은 수수료를 제외한 물품 판매대금을 판매자에게 정산하는 구조입니다. 과거에 판매자가 물품 대금만 받고 물건을 보내주지 않거나 하는 결제사기가 빈번하기도 했고 카드결제, 실시간 계좌이체 등 다양한 결제수단을 지원하기 위해 오픈마켓이 거래 중계자 역할을 하는 것이죠. 이를 에스크로(전자안전결제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즉 오픈마켓은 고객이 결제했던 돈을 잠시 보관하고 있다가 고객이 물건을 정상적으로 받았다는 신호를 보내면 (구매확정) 거래 중계자인 오픈마켓은 오픈마켓 이용 수수료와 카드결제 수수료 등 각종 수수료를 제외한 물품 판매대금을 정산하는 방식입니다.
국내 주요 오픈 마켓은 내가 물건을 사고 수령을 받은 다음 구매확정을 누르면 대부분 다음날, 늦어도 이틀 후면 수수료를 제외하고 판매대금을 정산받을 수 있습니다. 이베이만 특이하게 결제수단으로 페이팔을 써서 구매자가 결제한 즉시 판매대금이 내 계좌로 꽃히는 방식이고 (이베이가 셀러평가에 기반한 신용도로 움직이는 시스템이라 가능한 구조) 아마존은 구매확정이 아닌 배송완료 14일 이후로 판매대금을 정산하는 구조입니다. 아마존의 기준이 배송완료일 인건 글로벌 배송을 지원하는 특성상 배송기간이 길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매자가 배송일이 긴 배송 옵션으로 물건을 구매하면 판매자가 물품 대금을 정산받는데 그만큼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죠.
쿠팡, 티몬, 위메프의 정산일은 좀 독특합니다.
최소 한달에서 최대 2달 이상의 정산기간이 소요되죠. 태생이 소셜커머스라는걸 감안해도 너무 깁니다.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표를 하나 가져왔습니다.
예)
2월 15일 물건 주문
2월 17일 배송 완료
2월 24일 자동 구매확정
위의 예제에서 각 온라인 마켓마다 판매자가 물품 대금을 정산받을 수 있는 날짜는 언제일까요?
네이버 : 2월 25일
11번가 : 2월 26일
아마존 : 3월 3일
쿠팡
- 주정산 기준 : 3월 15일 70% / 5월 1일 30%
- 월정산 기준 : 3월 15일 100%
티몬, 위메프 : 5월 1일
쿠팡과 티몬, 위메프만 정산 텀이 지나치게 길죠?
쿠팡은 반품이나 환불 등에 대비하기 위해 주정산에서 30%를 예치하고 있는 거라고 말하는데요. 사실 궁색한 변명입니다. 2018년 10월 유병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팀의 「한국 온라인창업 성장보고서 D-커머스」레포트에 따르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초기 창업 시 반품률은 2.9%, 스마트스토어 평균 반품률은 1.7%로 조사되었습니다. 품목별로는 식품의 반품률이 0.4%로 가장 낮았고 패션의류의 반품률이 5.6%로 가장 높았죠. 쿠팡이 30일 무료반품 서비스를 지원하여 반품률이 높다고 쳐도 반품률은 3%를 넘기 어렵습니다. 반품이나 환불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결제대금의 10% 정도만 예치금으로 가지고 있어도 충분하죠.
네이버는 직접 물건을 사입하지 않는 거래 중계 서비스라 판매대금 익일 정산이 가능한거고 쿠팡은 직매입 방식이니 결제대금 정산이 길어질 수 밖에 없다라는 논리 역시 통하지 않습니다. 쿠팡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아마존도 직매입 방식인데 정산일이 쿠팡보다 절반 이상 짧으니까요.
정리하면 쿠팡은 결제 대금을 늦어도 하루~이틀이면 다 받을 수 있는데 한 달 후에 판매자에게 정산을 해준다.
쿠팡은 한달동안 판매자에게 지급해야 할 현금을 예치금이라는 명목하에 쥐고 있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눈치빠른 분들은 이미 아셨을겁니다. 쿠팡이 무지막지한 적자를 내는데도 투자유치 없이 망하지 않고 회사를 유지하면서 과감한 투자를 집행할 수 있는 비결.
바로 돌려막기 신공입니다.
돌려막기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① 고객에게 받은 이번 달 결제대금으로 운영비와 투자금을 사용
② 다음달에 고객에게 받은 결제금액으로 저번달에 판매자들에게 지불해야 할 정산금을 지불
③ 매달 똑같이 반복
많은 분들이 무서워서 말하지 못하는 건지 (사실 저도 좀 무섭습니다...) 알면서 애써 모르는 척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돌려막기 문제는 사실 심각합니다. 쿠팡의 2020년 매출액 13조를 12개월로 나누면 쿠팡은 한달에 1조짜리 돌려막기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니까요.
저거저거 어디 동네 약팔이 같은 놈이 말도 안 되는 뇌피셜을 주장하고 있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제가 소설가이긴 하지만 약을 팔진 않습니다. 저도 제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근거 없이 말하면 소송당할 수 있으니까...)
쿠팡이 감사보고서를 제출한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쿠팡의 매출, 미지급채무, 현금성자산 변화표입니다. (2020년 데이터는 S-1 보고서를 기준으로 작성하였으며 환율에 따라 일부 오차가 있을 수 있음) 매출이 늘어난만큼 미지급채무도 증가했는데 현금성 자산은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표라 잘 이해가 안가신다고요? 그래서 그래프를 준비했습니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미지급금 변화 그래프입니다. 2019년에 비해 2020년 매출이 두배 가까이 증가한 반면 현금성자산은 오히려 소폭 감소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결제대금은 따박따박 계좌에 꽃히기 때문에 매출과 미지급금이 늘어나는 만큼 현금성 자산도 같이 늘어나는게 정상인데 매출이 2배가 됐는데 현금성 자산은 오히려 줄었다? 그럼 결론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판매자에게 줘야 할 돈을 딴 데 썼다는거죠. 그게 아니면 미지급금이 늘었는데 현금성자산은 오히려 줄었다는 재무제표를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 그래프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전년도에 비해 현금성 자산이 눈에 띄게 개선되는 년도가 두 곳 있는데요. 바로 비전펀드에게 10억달러를 투자받은 2015년과 20억달러를 투자받은 2018년도입니다. 재무제표가 말해주는건 지금 쿠팡의 사업 구조는 비전펀드가 현금을 수혈해주지 않으면 유지가 안 되는 구조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글을 읽는 분들은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하셨을 겁니다.
매달 적자를 내다보면 어느 순간 돌려막기가 안 되는 순간이 올텐데 지금까지 어떻게 버틴거지?
재무재표와 S-1 보고서를 보면 쿠팡의 신묘한 돌려막기 신공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 수 있습니다.
쿠팡은 매분기 꾸준히 성장해왔습니다. 이론상으로 매분기 성장할 수 있다면 돌려막기 신공이 가능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죠.
예)
사치가 심한 서점군은 매달 자기 월급보다 많은 카드값을 쓰지만
매달 소득이 조금씩 늘고 있기 때문에 그럭저럭 카드값을 메꾸고 있다
10월 서점군의 카드값 = 100만원
10월 서점군의 소득 = 90만원
11월 서점군의 카드값 = 110만원
11월 서점군의 소득 = 100만원
> 11월 소득으로 10월 카드값 100만원 결제
12월 서점군의 카드값 = 120만원
12월 서점군의 소득 = 110만원
> 12월 소득으로 11월 카드값 110만원 결제
서점군의 이번달 카드값이 이번달 월급보다 많더라도 카드값은 다음달에 결제되기 때문에 서점군의 다음달 월급이 카드값보다 많다면 서점군은 매달 카드값이 10만원씩 증가해도 소득도 10만원씩 증가하기 때문에 카드값을 연체하지 않고 지불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소득이 매달 증가하지 않는다면 카드값이 연체될꺼고요. 이름하여 다음달의 나야 힘을 내줘 신공입니다.
서점군의 소득을 쿠팡의 매출, 카드값을 미지급금으로 대입해보면 답을 알 수 있습니다. 어차피 대금지급은 한달 아니면 두달후에 하니까 한달 후에 매출이 늘어나기만 한다면 돌려막기 신공으로 미지급금을 연체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현재 구조는 매출이 지속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미지급금을 메꿀 수 없는 한계상황에 부딪히게 된다는 말도 됩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이 하나 있는데... 찰스 폰지라고... 소송당할 수 있으니 자세히 말하진 않겠습니다.
지금 쿠팡은 달리는 폭주기관차 입니다. 매달 회사가 성장하지 않으면 바로 유동성의 위기가 오고 회사가 고꾸라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 쿠팡은 미지급금 문제때문이라도 지속적인 투자를 하고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회사를 성장시켜야 합니다. 회사가 성장해야 이번달 매출로 저번달 판매대금을 지불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까지의 글을 정리하자면 쿠팡은 돌려막기를 통해 적자상황에서도 운영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나 매달 성장이 이루어져야 현재 돌려막기 구조가 유지되는 특성상 성장을 공격적인 투자가 병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신규 투자유치나 은행 대출 등 자금 융통에 어려움을 겪고있으며 단기차입금을 끌어다 쓸 정도로 유동성 위기가 심각한 수준으로 보인다. 라는것이 서점직원의 뇌피셜입니다.
돈은 필요한데 투자유치는 안되고 은행에서도 돈은 안 빌려준다?
하지만 이 위기를 한방에 극복할 수 있는 몰핀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상장이죠.
상장은 치료제가 아닌 몰핀
은행권 대출은 막히고 적자기업이라 추가 투자 역시 여의치 않고 현금은 계속 메말라갑니다.
현금. 현금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돌파구는 하나죠. 상장해서 공모자금 모으기.
김범석 의장은 꽤 오래전부터 상장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김범석 의장이 나스닥 상장 얘기를 처음 꺼낸 게 2011년이었죠.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거 젋은이 포부가 당차구만이라고만 생각했지 진짜 뉴욕시장 상장을 목전에 둘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여러모로 참 대단한 양반입니다.
자 그래서 쿠팡은 상장을 통해 얼마만큼의 실탄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2021년 2월 20일 머니투데이
쿠팡은 뉴욕 증시 상장으로 최대 10억달러(1조1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다. 예상 공모가와 공모금액은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
응? 1조? 겨우 1조 모으자고 임원들에게 수백억의 연봉을 쥐어주면서 상장을 준비했다?
그럴리가 없죠. 범석이형은 다 계획이 있습니다.
2021년 2월 16일 조선비즈
쿠팡이 오는 2분기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을 통해 20억달러(2조2000억원) 이상을 조달하면 금융기관으로부터 무담보 마이너스통장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중략)
쿠팡은 약정한 리볼빙 한도대출이 최대 12억5000만달러(1조4000억원)까지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중략)
이 내용을 토대로 업계 관계자들은 쿠팡이 공모가를 토대로 결정되는 상장 조달금액을 최소 20억달러 이상으로 높이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쿠팡은 신고서에 조달금액을 10억달러(1조1000억원)라고 적었지만 미 증권법에 따른 등록 수수료 계산 목적일 뿐 실제 조달 금액은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조달금액을 20억 달러로 높이면 12억달러짜리 마통을 뚫을 수 있습니다. 이러면 상장조달금액 2조 2천억 + 마통 1조 4천억 해서 3조 6천억의 실탄을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계산상으로는 상장을 통해 20억 달러를 조달하기만 하면 2조 3700억에 이르는 미지급 채무를 한방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저 지긋지긋한 돌려막기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경영도 정상화될 수 있죠. 역시 하버드 나온 범석이형은 다 계획이 있었어! 계획된 채무였구나!
그럴리가 없죠. 범석이형은 우리같이 쪼잔한 남자가 아닙니다.
쿠팡 S-1 상장신고서 내용 중
15P
우리의 사업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단기적 재무 성과를 포기할 계획입니다. 따라서 향후 전망과 수익 증가율을 포함한 운영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16P
비즈니스 성장을 위한 노력은 예상보다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될 수 있으며 증가된 운영비용으로 인해 수익성을 달성 또는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20P
우리는 비즈니스의 성장을 위해 빠르게 직원수를 늘렸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인력을 늘릴 것입니다.
22P
당사는 배송 능력과 관련된 많은 비용지출과 투자가 있으며 앞으로 배송 인프라 확장을 위해 추가 자본 투자가 필요합니다. 비즈니스가 계속 성장함에 따라 배송 운영을 위해 더 많은 자본 지출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상장신고서에 기재된 내용은 일관되게 한가지 내용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물류센터를 짓고 인력을 채용해서 사업을 확장할 것이다. 장기적 성장을 위해 다소간의 적자는 감수할 생각이다.
즉 쿠팡이 상장으로 조달하는 자금은 미지급금을 해결할 수 있는 치료제가 아니라 현재 상황을 조금 지연시키는 몰핀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상장으로 조달된 자금이 떨어지면? 그땐 유상 증자를 하면 됩니다.
김범석 의장은 쿠팡이라는 폭주기관차를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더 달릴 수 있는 연료를 구해서 끝까지 달려보겠다는거죠. 그 끝이 어딘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구색맞추기에 불과한 OTT 서비스
지난 7월 쿠팡이 싱가포르의 OTT 서비스인 Hooq을 인수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쿠팡의 새로운 수익원 발굴이다, OTT 서비스 진출로 로켓와우 락인 효과를 일으켜 플랫폼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고 떠들어댔지만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범석이형이 나스닥에 상장하려나보다.
한국판 아마존이라는 네이밍을 붙이기 위해 OTT 서비스라는 구색맞추기가 필요했구나!
제가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수익원 발굴, 플랫폼 경쟁력 강화, 사업 다변화 어떤 시나리오를 맞춰봐도 말이 안되거든요.
그렇다면 답은 하나밖에 없죠. 상장을 위한 구색맞추기.
① 쿠팡 OTT만의 차별화 부재
저는 총 4개의 OTT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 오리지날 콘텐츠를 보고 싶어서
왓챠 : 일본 드라마, 일본 영화를 보고 싶어서
아마존 비디오 : 토트넘 다큐랑 제라드 다큐를 보고 싶어
쿠팡플레이 : 로켓회원인김에 공짜니까 한번 봐볼까?
넷플릭스의 자체제작 콘텐츠, 왓챠의 일본 드라마와 영화, 아마존의 스포츠 다큐 다 각자 OTT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계기가 되는 킬러콘텐츠들이 존재하는데 쿠팡플레만 다른 OTT와 차별화되는 킬러콘텐츠가 부족합니다. 쿠팡이 OTT 서비스에 진심이라면, 제대로 된 OTT 서비스를 하려면 차별화된 콘텐츠를 확보해야 하는데 그런 콘텐츠들은 돈이 무척 많이 듭니다.
② 제대로 된 OTT는 진짜 돈이 많이 든다.
물론 쿠팡도 콘텐츠가 부실하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발굴해보기로 합니다.
20년 10월 27일 스포츠경향
이와 관련해 한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26일 한국경제를 통해 “독점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쿠팡에서 은밀하지만 꽤 광범위하게 움직이고 있다”며 “NBA(미 프로 농구), MLB(미 메이저리그), 영국 프리미어리그 등에 대한 독점 중계권한을 협상 중”이라고 밝혔다.
NBA, MLB, EPL이라... 실현만 된다면 꽤나 큰 경쟁력이 생기게 되겠죠. 그런데 EPL 중계권료는 꽤 비쌉니다. 돈많은 네이버가 GG치고 나올 정도로요.
에이클라(스포티비 모회사)가 구매한 EPL 중계권료가 연간 100억, 네이버에 재판매하는 금액이 연간 30~50억 정도로 추정됩니다. 최소 금액인 30억으로 가정하면 로켓와우 1년 회원이 86,206명 모여야 겨우 본전치기가 가능한 금액입니다. 그런데 현재 스포티비 나우가 월 9,900원이니 쿠팡플레이가 월 2,900원으로 EPL 중계를 한다면 스포티비 유료 회원들이 대거 이탈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포티비의 밥줄이 EPL이고 에이클라가 100억주고 샀는데 30억에 판다는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됩니다. EPL 중계권만 최소 50억 정도는 한다고 봐야됩니다.
그러면 EPL로 인해 쿠팡플레이에 가입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것도 대략적으로 추정해볼 수 있는 데이터가 있습니다.
위 경기들은 19-20 토트넘 중계 중 시청률 상위 데이터 만을 추린 자료입니다.
우리 흥 + 무료 중계라는 시청률 극강 조합을 가지고도 평균 시청인원 20만명이 안됩니다. 사실 이것도 우리 흥 버프라 높게 나온거고 비인기팀 중계는 시청인원 5만명을 못 넘기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아무리 잘쳐줘도 EPL을 보기 위해 유료가입하는 가입자가 2만명을 넘지 않는다는 얘기죠.
EPL 중계권은 아무리 계산해도 수지타산이 안맞습니다. EPL 중계권이 모객효과가 있는 킬러콘텐츠라면 다른 회사가 먼저 샀겠죠. 가격은 비싼데 효과는 별로라 다들 안산겁니다. 이건 MLB도 마찬가지고요.
21년 2월 26일 내용 추가
쿠팡이 에이클라와 전략적 제휴를 통해 20-21시즌 EPL 토트넘 경기를 쿠팡플레이에서 볼 수 있도록 협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예상하지 못했던 시나리오인데 쿠팡은 모바일 독점 컨텐츠를 얻고 에이클라는 기존 스포티비 유료회원들을 포용할 수 있는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좋은 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약 세부내용은
① 쿠팡은 20-21시즌 EPL 토트넘 경기의 중계권 구매를 통해 쿠팡플레이에서 토트넘 경기의 중계권 획득 (모바일 전용)
② 토트넘 경기 이외에 다른 EPL팀 경기는 기존대로 유료채널인 스포티비 온에서만 제공
③ 기존에 PC, 모바일에서 무료로 제공하던 토트넘(손흥민), 발렌시아(이강인), 라이프치히(황희찬), 프라이부르크(정우영) 경기는 무료제공 종료
④ 스포티비(케이블 TV)에서 제공하던 손흥민 경기는 무료 유지
정리하면
손흥민 경기
모바일 : 쿠팡플레이, 스포티비 유료회원만 시청 가능
PC : 스포티비 유료회원만 시청 가능
케이블 TV : 무료로 시청 가능
토트넘 외 나머지 EPL 팀 경기
모바일 : 스포티비 유료회원만 시청가능
PC : 스포티비 유료회원만 시청 가능
케이블 TV : 스포티비 유료회원만 시청 가능
가 됩니다.
이 계약이 좋은 계약인 이유는 위에 설명드렸다 싶이 EPL 전경기 중계권은 가격에 비해 기대효과가 크지 않지만 손흥민 경기는 가성비가 상당히 좋습니다. EPL팬들은 중계권 손익분기점에 다다를 정도로 많지 않지만 손흥민 개인 팬들은 숫자가 꽤 되거든요. 그리고 쿠팡플레이는 모바일 전용이고 손흥민 경기는 쿠팡 계약 이전에도 무료 중계였기 때문에 스포티비 유료회원들의 이탈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전과 동일하게 케이블 TV에서는 손흥민 중계가 공짜이기 때문에 손흥민 중계가 보고 싶으신 분들은 케이블 TV를 시청하시면 됩니다.
쿠팡플레이의 타겟은 손흥민 경기를 보고 싶지만 집에 TV가 없는 손흥민팬들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손흥민 경기의 효과가 괜찮다면 쿠팡 플레이측에서 이강인이나 황희찬, 정우영 경기 중계권도 추가로 사들일 여지가 남아있다고 봅니다.
역시 머리좋은 양반들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중계권 모델을 들고 왔습니다. 개인적으로 감탄했습니다.
그다음 서비스 운영비. 서버비라던가 사무실 운영비, 인건비 등 이쪽도 알게 모르게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이건 아주 적절한 비교 모델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왓챠죠.
왓챠는 요약 재무제표밖에 없기 때문에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근거로 추정해볼 수밖에 없는데요.
1인당 평균 결제액 중간값 5천원 * 12개월 하면 38만명이 나옵니다. 대략 40만명 정도로 치고 매출액 + 영업이익을 더하면 294억 정도 나옵니다. 이것도 러프하게 300억 정도 쳐봅니다.
왓챠의 재무제표를 근거로 월 MAU 40만명 정도 규모의 OTT 서비스를 운영하려면 연간 300억이 든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건 규모에 비해 저렴한 편입니다.
그리고 자체 콘텐츠 제작. 이건 웨이브를 기준으로 계산해봅시다. 웨이브가 지난해 자체제작한 콘텐츠가 총 15편. 제작비는 600억 입니다.
종합하면
EPL, MLB, NBA 중계권료 : 연간 50~100억
월 MAU 40만명 OTT 서비스 운영비 : 최소 연간 300억
연간 15편의 자체제작 콘텐츠 : 600억
왓챠정도 수준만 유지하려고 해도 최소 연간 3~5백억 정도는 들꺼고 자체제작 콘텐츠에 스포츠 중계권료까지 사면 적어도 연간 천억 이상은 든다는 얘기입니다. OTT 서비스를 진심으로 하려면 최소 300억 ~ 최대 1000억 정도 비용이 든다는 얘기죠.
연간 수천억에서 조단위로 적자를 내는 쿠팡 입장에서 그 정도 돈은 껌값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약간 다른 관점에서 한번 봐보죠. 왓챠가 여태까지 시리즈A~C로 투자받은 금액이 590억 정도, IPO시 시장 가치는 1200억 정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OTT 서비스를 직접 하는 것보다 왓챠랑 제휴를 맺거나 아예 인수해버리는게 더 싸게 먹힐 수도 있겠는데요?
쿠팡이 정말 OTT 서비스에 진심이었다면 상장 직전에 급하게 서비스를 출시하는게 아니라 상장 직후 넉넉하게 실탄이 장전된 상태에서 했어야 합니다. OTT는 진짜 돈이 많이 들거든요.
③ 락인 효과는 커녕 돈먹는 하마
가끔 쿠팡플레이에 락인 효과를 주장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쿠팡플레이는 락인효과는 커녕 돈먹는 하마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쿠팡의 가장 큰 경쟁력은 로켓배송이니까요.
로켓배송의 메리트가 계속되는 한 기존 로켓와우 회원들의 이탈은 없을겁니다.
반대로 쿠팡플레이가 락인효과를 일으키려면 로켓와우의 경쟁력은 떨어지더라도 쿠팡플레이만으로 2,900원의 메리트가 있어야 합니다. 결국 도돌이표같은 말이지만 쿠팡플레이가 락인효과를 일으키려면 그만큼 투자가 필요하다는거죠. 그런데 로켓와우의 월정액이 매우 저렴하기 때문에 쿠팡플레이로 사용되는 운영비보다 로켓와우로 거둬들이는 수익이 현저히 적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제대로 운영하려면 투자금이 많이 들어 수지타산이 안맞고 어정쩡하게 운영해봐야 락인효과를 일으키기 어렵습니다.
이래나저래나 결국 돈먹는 하마라는거죠.
돈도 많이 들고 락인효과는 미미한 쿠팡플레이를 굳이 이 시점에 론칭한 이유는 아무리봐도 구색맞추기입니다. 우리는 한국의 아마존이에요. OTT 서비스도 있어요! 라고 말하고 싶은거죠.
그런데 재밌는건 S-1 보고서에는 쿠팡플레이에 관한 내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봐도 구색맞추기처럼 보이는데 S-1 보고서에는 OTT 내용이 없다? 하버드 나온 양반이 그리는 큰그림을 저 같은 필부가 눈치채지못하는걸수도 있죠. 뭐 앞으로 지켜봅시다. 쿠팡이 OTT에 진심일지 아닐지.
개선이 어려운 고비용 물류 구조
2020년 가을. 친구와 함께 쿠팡 물류센터에 하루, 쿠팡 플렉스맨으로 하루. 총 이틀간 일일 쿠팡맨 체험을 했습니다. 제 머릿속 가설이 맞는지 검증해보고 싶었거든요. 추노의 유혹을 떨쳐내길 수차례, 쿠팡맨 체험을 통해 얻은 결론이 하나 있습니다.
① 이건 전형적으로 사람을 갈아넣는 물류 시스템이다.
② 쿠팡에서 리큐는 시키지 말아야겠다.
쿠팡의 핵심 경쟁력은 로켓배송입니다. 그리고 쿠팡의 원가 중 상품구입 다음으로 가장 많은 비용을 차지하는것이 바로 물류비입니다. 바꿔말하면 규모의 경제를 통해 물류비를 줄일 수 있다면 원가를 절감할 수 있고 흑자전환이 가능하다는 얘기죠.
그런데 쿠팡의 물류 시스템은 규모가 커진다고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구조가 아닙니다
S-1 보고서의 쿠팡 재무재표 내용 중 일부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데이터는 매출원가율입니다.
매출 원가에 대한 S-1 보고서의 설명을 잠깐 볼까요.
매출원가
판매 비용은 고객에게 직접 판매되는 제품의 구매 가격과 물류비용으로 구성됩니다. 공급 업체로부터 제품을 수령하기위한 인바운드 배송 및 취급 비용, 아웃 바운드 운송 및 물류 관련비용, 감가 상각 및 상각 비용이 (중략)
매출 원가는 판매되는 상품 구입비 + 물류비로 구성됩니다. 규모의 경제에 따르면 늘어나는 매출 대비 물류비는 감소하는게 정상인데 매출이 늘어난 비율만큼 물류비도 동일하게 늘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인이 뭘까?
답은 인건비입니다.
S-1 보고서에는 매출원가 상세항목이 나와있지 않기 때문에 2019년 재무재표 데이터를 보면 고용인원은 20% 늘은데 반해 인건비는 40%로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국민연금 발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쿠팡의 고용인원은 4만 3천명입니다. 이를 2019년 평균 연봉인 4,852만원에 대입하면 2020년 인건비는 2조 863억이 됩니다.
제가 재무 담당자라면 이 표를 보고 이렇게 얘기할 것 같습니다.
와우 테러블 (외국인이니까 영어로 말해야 됨)
그럼 쿠팡 물류센터는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이 필요한걸까? 답은 물류센터의 구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마존 물류 센터 (사진출처 : CNN / 조선비즈)
SSG 네오 물류센터 (사진출처 : 뉴스투데이,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쿠팡 물류센터 (사진출처 : 한국일보, 쿠팡 제공) 아마존과 SSG의 물류시스템은 상당부분 공정이 자동화되어있습니다. 아마존은 자동화를 하다하다 로봇까지 끌어다 쓰는판이고 SSG의 새벽배송을 담당하는 네오 물류센터의 공정 자동화율은 80% 정도로 상당히 높은편입니다.
그런데 쿠팡 물류센터는 휴먼이 모든 물류배송을 담당합니다. (일해라 휴먼!)
쿠팡 물류센터와 SSG 네오센터의 물류공정을 비교해볼까요
SSG :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물건이 착착 담기고 마지막에 검수자가 물건을 확인
쿠팡 : 휴먼이 발로 막 뛰어다니면서 물건을 담아서 포장
즉 사람이 발로 뛰어다니면서 물건을 포장하는 쿠팡의 물류시스템은 배송량이 늘어난 만큼 사람이 더 필요한 구조입니다. 오늘 60개 포장하던 사람이 내일 80개 포장하기는 어려우니까요. 물론 쥐어짜내면 가능할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물리적인 한계라는 게 존재합니다. 배송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200가구 배송하던 사람을 쥐어짜면 250가구 정도 배송할 순 있겠지만 300가구를 배송하긴 어렵습니다.
그럼 쿠팡 물류센터는 왜 자동화가 안되는 것일까요? 답은 취급품목수에 있습니다.
SSG 새벽배송 : 3만개
쿠팡 로켓배송 : 700만개
SSG 새벽배송은 신선식품만을 취급합니다. 품목이 단일화되어 있으니 어느정도 자동화 공정이 가능한 구조입니다. 그런데 쿠팡은 신선식품도 팔고 생활용품도 팔고 뭐 별에 별걸 다 팝니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원리입니다. 소품종 대량생산과 다품종 소량생산. 품목이 너무 많아 자동화 공정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포장부터 사람손을 탈수밖에 없는거죠.
이런 반론을 하시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아마존도 취급품목수가 어마어마한데 거긴 자동화가 되는데?
아마존의 첫 시작은 온라인 서적 판매사이트였습니다. 책은 물류자동화가 가장 용이한 물품입니다. 규격화되어 있으니까요. 크기도 비슷하고 파손위험도 없죠. 책이 잘 팔리니 음반도 팔아보고 게임도 팔아보고 하면서 물류배송노하우를 쌓고 생활용품을 취급하고 옷도 팔아보고 이제는 홀푸드마켓을 인수해서 식품까지 손대고 있죠. 아마존은 커머스 초창기부터 물류 배송 노하우를 쌓아가면서 품목을 하나하나 늘려왔습니다. 30년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쿠팡이 몇년만에 따라잡기는 역부족이죠.
애초에 쿠팡 물류 시스템 자체가 사람을 갈아넣는 구조로 설계된 겁니다. 쿠팡의 매출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사람을 더 고용해야 하는 현재 구조는 개선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고요.
신세계와 롯데가 쿠팡 따라잡기식의 물류센터 구축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준 것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 갈아넣기 식의 물류센터 구축으로는 규모의 경제효과를 거두기도 이익을 내기도 어렵거든요.
홍보비 절감과 셀러들을 쥐어짜내서 이룬 실적개선
쿠팡의 연도별 매출추이 (사진출처 : 연합뉴스) 2020년 쿠팡은 매출이 두배 이상 올라갔는데 적자를 2천억 가량 줄이는데 성공했습니다. 물류비용은 그대로인데 적자는 어디서 줄인걸까요? 답은 판관비에 있습니다.
매출액과 매출원가의 증감율은 90%대로 비슷한 반면 판관비는 절반수준인 49.9%밖에 늘지 않았습니다. 판관비가 실적개선을 견인한 주요 원인이라는거죠. 그럼 판관비는 뭐고 정확히 어떤 비용을 줄인걸까요?
운영, 일반 및 관리 비용
2020년의 운영 및 일반 관리 비용은 2019년에 비해 8억 3700만 달러 (49.9 %) 증가했습니다. 증가는 주로 주문 처리 센터 용량, 기술 인프라 비용 증가로 인한 것입니다. COVID-19 전염병 및 관련 안전 조치 추가 비용도 추가되어 매출 대비 운영, 일반 관리 비용은 2019년 26.7%에서 2020년 21.0%로 감소했습니다. 감소 배경에는 운영규모의 성장으로 인한 레버리지와 COVID-19의 결과로 광고에 대한 지출 절감입니다.
판매관리비는 상품구매비용과 물류비를 제외한 서버운영비, 사무실 운영비 등 나머지 비용을 의미합니다. 작년에 비해 코로나 관련 대응 비용이 증가하였고 광고비가 감소하였다고 적혀있습니다.
광고비가 준 것은 긴축재정 때문인 탓도 있겠지만 코로나 영향도 큽니다. 사람들이 밖에 못나가니까 홍보를 하지 않아도 쿠팡에서 물건을 구매하는거죠. 그러고보니 1년 365일 네이버 메인 배너에 걸려있던 쿠팡 광고를 못 본 지 꽤 된 것 같습니다. 2019년의 광고 선전비는 2933억으로 쿠팡의 적자 감소폭인 2200억을 다 상각할순 없겠지만 실적개선에 큰 영향을 준것임은 분명합니다. 광고비 절감은 일시적인 효과가 아니라 로켓배송의 브랜드 충성도 상승에 따라 앞으로 줄어들 확률도 존재합니다. 올해 4월에 감사보고서가 나오면 광고비가 실적개선에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 정확히 알 수 있겠죠.
물류비는 인력을 갈아넣는 구조라 줄이기 어렵고 판관비를 줄여도 적자는 해결이 안됩니다. 그럼 답은 하나죠. 원가를 줄인다. 물건을 싸게 사오거나 셀러 수수료를 인상한다.
2019년 7월 8일 아주경제
지난달 LG생활건강과 위메프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쿠팡이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했다고 신고했으며, 쿠팡의 눈치를 살피느라 신고하지 못한 납품업체들은 단가 후려치기에 ‘못 살겠다’고 입을 모았다.
쿠팡에 기저귀를 납품하는 업체 관계자도 “쿠팡 채널이 매출의 30%를 차지하고 있어 가격 네고(협상)에서 불리한 입장이다. (쿠팡의) 수준이 도를 지나치고 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일부 중견 납품업체는 쿠팡과 계약 해지까지 검토 중이다. 한 생활용품 제조사 관계자는 “쿠팡이 적자를 제조업체 마진으로 채우려하는 행태를 보인다”며 “소비자가 제일 싼 물건과 빠른 배송을 원하다 보니 쿠팡을 이용했다. 하지만 (쿠팡의) 비중을 줄이는 중이다”고 했다.
쿠팡은 2019년 납품업계 단가를 인하하려는 시도를 한것으로 보입니다.
마침 브런치에도 유사한 내용의 글이 하나 있습니다.
브런치 꿈꾸는이팀장님
이제 다시 쿠팡의 재무제표를 봅시다. 재무제표를 보다보면 데이터가 확 튀는 부분이 있습니다. 전년도에 비해 매출원가율이 12.3%, 매출총이익율이 11.8% 개선된 2019년의 실적표가 바로 그 부분이죠. 납품업체 단가인하와 수수료 인상, 묶음배송 채산성 강화가 어느정도 효과를 거뒀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2020년의 데이터를 보면 매출원가율과 매출총이익율이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데이터를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아 이제 더이상 쥐어짤게 없나?
끝이 안보이는 치킨게임
2020년 교보증권에서 추정하는 쿠팡의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은 13%입니다. 아마존 모델을 따라가려면 점유율이 30% 정도는 돼야 시장 지배자가 될 수 있는데 아직 많이 부족한 수치입니다.
4조를 때려부었는데 왜 시장지배자가 되지 못한걸까?
한 언론기사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2020년 4월 16일 더벨
이커머스 치킨게임, 한국판 아마존 등장 '기대뿐'
한국판 아마존의 등장이 요원한 건 무엇보다 시장의 경쟁 강도가 극명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아마존이 설립된 1990년 대 후반은 아직 이커머스의 콘셉트가 생소했고 온라인 유통 채널에 공격적 투자를 벌이는 기업도 드물었다. 아마존이 혁신적 사업 모델로서 시장을 빠르게 장악한 이유다. 시장 점유율이 30~40%에 이른 뒤엔 자체 현금흐름으로 재투자에 나서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개화 시점에 동시다발적으로 창업 릴레이가 벌어졌다. 그 뒤로 소셜 커머스 출신 쿠팡과 위메프, 티몬은 물론 11번가와 옥션, G마켓 등 오픈마켓 업체가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다. 독보적 지위를 가진 사업자가 없다보니 경쟁 강도가 매우 높다.
여기에 기존 유통 공룡의 참전 선언으로 치킨게임은 점입가경 양상을 보이고 있다. 롯데그룹(온라인 채널 롯데온)과 신세계그룹(SSG닷컴)은 오프라인 사업이 흔들린 후 온라인 패권을 차지하고자 출사표를 던졌다. 이들 새로운 경쟁자는 향후 강력한 라이벌로 탈바꿈할 것으로 관측된다. 공격적 투자를 지속할 재무 여력이 충분한 데다 기존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접목할 여지가 크다.
아마존이 창업했던 시점의 미국과 쿠팡이 창업한 시점의 한국은 시장 상황 자체가 다릅니다. 경쟁자 없이 사업의 규모를 빠르게 키우며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아마존에 비해 한국은 소셜커머스발로 시작된 치킨게임이 근 10년 가까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한놈정도는 쓰러질법도 한데 다들 기가막히게 쩐주를 구해와서 버티는 중입니다. 누구 하나 망하면 내가 싸게 인수해서 시장을 장악해야지라는 속마음을 숨긴 채 뒷짐만 지고 있던 유통 대기업들도 참다참다 못해 참전을 선언했습니다. 아직 아무도 안쓰러졌거든요.
경쟁자가 넘치다 못해 과포화 상태라 하나둘쯤 쓰러진다고 해서 치킨 게임이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이마트와 롯데가 시장점유율은 밀릴지 몰라도 돈으로는 밀리지 않거든요. 마켓컬리와 같은 신규 경쟁자들의 출현도 배제할 수 없고요. 그리고 진짜 끝판왕은 아직 발톱을 숨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뭘로 돈을 벌껀데?
2019 아마존 사업별 매출 비중 아마존 전체 매출 중 온라인 스토어의 비중은 50% 밖에 되지 않습니다. 3자 판매서비스(풀필먼트스토어), AWS, 월정액 구독서비스, 오프라인 매장 등 이커머스를 이용한 연계 사업을 통해 매출의 절반을 벌어들이는 구조죠.
이는 라틴아메리카의 아마존이라 불리는 메르카도 리브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커머스 비중은 52% (풀필먼트 포함) 수준이고 핀테크나 광고, 웹스토어 등 아마존과 유사한 모델로 매출의 절반을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즉 이커머스로는 큰 돈을 벌기 어렵고 (본전치기나 하면 다행) 이커머스가 적자를 내도 든든히 버텨줄 캐시카우가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사진출처 : 한경 비즈니스 쿠팡은 로켓와우의 플랫폼 경쟁력을 이용해 많은 신사업 벌였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로켓와우는 혜택에 비해 월정액이 너무 싸고 로켓프레시는 SSG와 마켓컬리, 쿠팡이츠는 게르만민족을 넘어야하며 쿠팡페이는 쿠팡의 카드결제 수수료를 조금 줄여주는 정도, 로켓설치는 큰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은 아니고 OTT의 허상은 이미 위에서 한번 언급한 바 있습니다. 중고차 거래는 케이카도 나가떨어졌고 현기차가 사업진출을 준비하고 있죠.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고 경쟁자와 싸우기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와 출혈 경쟁을 벌여야합니다. 그나마 풀필먼트가 눈꼽만큼의 가능성이 보일뿐이죠. 플랫폼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사업 하나가 궤도에 오를때까지 최소 2~3년 정도 로켓배송이 버텨줘야 하는데 어느것하나 녹록해보이지 않습니다.
그전에 근본적인 물음 하나가 있죠.
큰 돈이 벌 수 있는 개꿀 사업이 있다면 플랫폼 파워가 더 쎈 네이버와 카카오가 가만히 있을까?
이제는 실적을 증명해야할때
상장은 독이 든 성배입니다. 남의 돈 먹기가 어디 쉽나요. 자금 조달로 당장의 숨통은 트일지 몰라도 성과를 보여주지 않으면 후폭풍이 어마어마할겁니다. 사업재편, 구조조정, 최악의 경우 이사회 및 CEO 교체까지.
저는 오랫동안 쿠팡을 지켜봐왔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적으로 쿠팡에 대한 부정적인 뷰를 유지해왔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겁니다. 쿠팡에 대한 평가는 저 같은 소시민이 아니라 시장이 그리고 딜로드쇼의 기관투자가들이 해줄겁니다. 그리고 저는 저의 평가가 틀렸기를 바랍니다.
쿠팡을 애용하는 회원 중 한사람으로써 쿠팡이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해외자본을 끌어와 계속 적자를 보며 물건을 팔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범석이형 사랑합니다♡
제가 다 애정이 있어서 까는거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