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얼마를 벌어야 당당해질 수 있나요?

전업 주부에서 프리랜서 번역가로

by 이음 Eum


"나는 결혼해도 집에만 있을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 전업 주부는 안 해. 그럼 답답해서 절대 못 살 거야. 뭐라도 일을 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아."


결혼하기도 전부터 종종, 다른 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타고나길 성취지향형으로 태어난 나는 의미 없어 보이는 단순반복 업무가 싫었다. 거기에는 당연히 요리, 청소, 빨래 같은 가사노동도 포함이었다.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위해서 잘게 쪼갠 계획을 미션클리어하듯 하나하나 달성해 나가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교육과 육아에 관심이 많던 나는 애인이 생기기도 전부터 애는 셋은 있었으면 좋겠고, 그 아이들은 적어도 3년은 내 손으로 키운 후에 기관에 보낼 거야,라는 당찬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엄마라면 알겠지. 아무것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싱글 여성이 말도 안 되는 꿈을 꾸고 있었다는 것을. 당연하게도 커리어우먼과 3년간의 가정보육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혼준비하며 일을 그만두고 남편을 따라 타지로 내려왔다. 있는 솜씨, 없는 솜씨 다 끌어모아 아침을 차리고 같이 식사를 한 뒤에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저녁까지는 혼자다. 두 사람 살림이니 크게 치우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연줄 없는 곳이니 당연히 만날 사람도 없다. 일하고 있는 남편 없이 혼자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책을 읽으며 빈둥거려도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든다. 두 달여간의 백수생활이 지겨워져서 다시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면접에 합격하고, 출근날짜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뿔싸! 임신이다. 임신 사실 하나만으로 그곳에서도 부담이었을 텐데 입덧까지 심하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도 못해 본 일을 그만두었다. 그것이 앞으로도 10년은 이어질 경력단절의 시작이었다.


아이를 낳고 스스로와의 약속대로 3년간의 가정보육을 마치고 나니 또 둘째가 태어났다. 답답해서 전업 주부는 못한다던 나는 벌써 10년 차 전업 주부다. 아니 그랬었다. 2023년 9월에 올린 글 이후로 만 2년, 햇수로 3년 만에 브런치로 돌아오면서 프로필 키워드에 '프리랜서'를 추가했다. 그게 뭐 대수인가 싶겠지만 3년 만에 낸 용기이다. 우연한 기회에 산업번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수많은 이력서를 뿌린 끝에 그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프리랜서의 숙명이 그렇듯이 일을 받는 주기가 규칙적이지 않다. 이제 막 일을 시작하는 초보 프리랜서에게는 더 가혹하다. 어쩌다 일을 하나 받아서 하고 생긴 수입은 일하는데 필요한 프로그램, 멤버십 구독하는 데 쓰고 나니 일을 하나 하지 않으나 수입이 없는 것은 똑같다.


돈은 쥐꼬리만큼 받으면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해도 되는 것인가? 그 수입마저도 일정치 않은데 프리랜서라는 타이틀 안에 나를 집어넣어도 되는 것인가? 이 길이 정말 맞는 것일까? 계속하다 보면 수입이 더 늘어나기도 할까? 수많은 고민과 번뇌 끝에 버티다 보니 텅텅 비었던 이력서에 경력이 몇 줄 더 추가된 3년 차가 되었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한 달에 얼마를 벌어야 남 앞에서, 아니 스스로에게 당당해질 수 있는지. 얼마큼 많은 경력이 쌓여야 나에게 들이댄 엄격한 잣대를 내려놓을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늘 가혹했으니 만족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용기를 내 보았다. 고작 하나의 키워드일 뿐이지만, 남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지나칠 자기소개일 뿐이겠지만.


집에만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 아이들 돌보면서 행복하게, 나에게 딱 맞는 일을 시작했노라고 목소리를 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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