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재지마인드'라는 유튜브 채널을 즐겨보고 있다. 대기업을 퇴사하고 자신들의 길을 걸어 나가는 어느 부부의 따뜻하고 재미난 일상 이야기와 그들의 삶에 대한 고찰을 들을 수 있다. 이들의 영상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거의 매 영상에서 책이 등장하는데, 얼마 전에 업로드된 '댄스 댄스 댄스'라는 제목의 영상에도 책 한 권이 등장했다. 바로, 그 유명한 '미움받을 용기'이다. 여자분이 이런 구절을 읽어주셨다.
인생은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로 이어지는 선이 아니라,
점 같은 찰나가 쭉 이어질 뿐이라는 주장.
지금 현재 순간에 내게 주어져 있는 인생 과제에 춤추듯 즐겁게 몰두해야 한다.
그래야 내 인생을 살 수 있다.
이때까지 나에게도 인생이란, 기다란 선 혹은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었다. 그리고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그 끝을 향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서웠다. 지금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는다면, 혹은 무엇인지 모르는 그 끝을 위한 일이 아닌 것 같은, 옆길에 있는 무언가를 하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옆길에 있는 것들, 가령 요리나 산책 등 지금은 나의 취미이기만 한 것들을 하고 있을 때면, 물론 그 행위가 주는 행복을 느끼기도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두껍게 쓰인 죄책감이라는 단어를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옆길로 더 눈을 돌리게 되면서, 그 단어의 존재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다.
인생을 선이 아니라 내가 매일 찍어나가는 수많은 점들의 모임으로 보는 관점은 나에게 참 새로웠다. 이 말을 가만히, 오랫동안 곱씹어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이 말을 나의 삶이라는 하늘에 구름으로 띄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구나. 우리의 인생은 선이 아니었어." 우리가 아무리 많은 무수한 점을 찍는다고 해도 수학적으로도, 그것은 선이 될 수 없다. 빈틈없이 꽉 채워진 실수선이라는 것은 '셀 수 없는' 무한개의 점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찍어봤자 유리수개만큼, 즉 '셀 수 있을'만큼만 찍을 수 있다. 무리수까지 채워 넣지 못한다. 그렇다. 어쨌거나 우리가 만드는 인생이라는 것은 선이 아니라 점들의 모임이다.
이 말을 곱씹는 과정에서 머릿속에 이우환 화백의 점들이 떠올랐다. 이전에 부산의 시립미술관과 서울의 국제 갤러리에서 이우환 화백의 전시회를 본 적이 있다. 하얀 바탕에 차분하게 앉아있는 그 점을 보면 신기하게 참 마음이 편해졌다. 그 한 번의 붓질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하며 이우환 화백에게 존경심이 생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멋진 작품을 나의 언어로 해석을 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 사실이다. 나라는 사람에게 이 점이 어떤 의미인지 알 듯 말 듯, 작은 답답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아! 나에게 이 점은 내가 오늘 찍은, 나다운 점이구나.
우리가 오늘 찍을 그 점은, 춤을 추듯이 찍는 것이다. 나는 꽤나 춤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지금은 잘 추지 않지만 재작년에는 재즈댄스 강좌를 수강하기도 하고, 고등학생 시절에는 친구와 쉬는 시간에 여자 아이돌들의 춤을 추며 그 어떠한 걱정 하나 없이 행복해하던 추억이 가득하다. 그렇게 신나게 춤을 출 때의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되짚어보면, 분명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리듬에 몸을 맡긴 것'이다. 특히, 고등학생의 나는 '행복'이라는 단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아주 단순한 아이였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그 아이를 바라보았을 때, 그 아이는 진정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삶의 리듬에 몸을 맡기며 춤을 추듯이 하루하루를 지낸 것이다. 영상에서 여자분이 말하듯이, 춤을 출 때는 어디론가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추지 않는다. 그저 리듬에 맞춰 순간순간 내 몸의 움직임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인생도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구나. 오늘, 그리고 앞으로의 나날들을 조금 더 신나게, 그리고 힘차게 시작할 수 있게 해 준 이 깨달음을 나에게 선물해 주신 재지마인드에게 무척이나 감사하다.
리듬에 맞춰서 이 순간에 집중하며
오늘도 나다운 점 하나를
신나게! 찍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