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많은 신규교사는 어떻게 교사가 되었나
나는 83년생이다. 42살.
미술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은데 자꾸 미술시간에 칭찬을 받고
꽤나 잘 그린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부터 미술을 하고 싶다는 욕심을 내었다.
나이 터울이 좀 있는 언니가 미술을 짧게 해서 디자인과 전문대학을 갔는데, 나에게는 제대로 시켜주고 싶어 했다. 내 인생의 첫 행운이었다. 언니가 강력하게 미술 시켜줘라 하여 고3에 미술 입시를 시작했다. 결국 재수까지 해서 서양화과에 합격했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지방 작은 도시에서 좋은 미술학원 원장님과 강사 선생님들로부터 배운 게 많았고 배려도 많이 받았다. 멀리 떨어져 사는 시골 아이들 몇 명을 모아 원장님이 직접 돈을 들여 자취를 시켜주셨고,
학원비도 싸게 해 주셔서 따뜻한 시절이었다. 두 번째 행운이었다.
그렇게 대학생활은 내 인생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밤샘 작업하며 친구들과 족발을 먹던 기억, 전시회를 가던 기억, 끊임없이 작업을 하던 기억. 친구들을 너무 사랑했다. 미술학원강사를 쉬어본 적 없는 그 시절의 나는 힘든 기억도 분명 있었지만 그저 행복했던 나였다.
지금 생각하면 내 졸업작품은 참 별로라 보고 싶지도 않지만 과정은 낭만 그 자체였다.
나는 작업을 하는 행위를 좋아했다. 미술에 대한 역사, 작가, 작품 그 어떤 것도 사실 관심도 없었다.
그러다 나는 언니들의 강력한 권유로 교직이수를 지원했다. 대학 초반 성적이 나쁘지 않았고 장학금도 받았기에 덜컥 교직이수에 합격했다. 지원자가 많지 않았기도 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교사라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나는 2023년 신규교사가 되었다.
대학 4학년에 강남에 있는 숙명여중으로 교생 실습을 나갔었다. 졸업한 고등학교는 지리적으로 멀었기에 대학교에서 연결해 주는 학교로 가게 되었고 20명 정도가 한 번에 실습을 나왔던 것 같다. 교정이 아름다웠고 봄이었기에 더 좋은 계절이었다.
학생들은 생활수준이 높은 학생들이 많았다. 자기 아빠가 의사다, 약사다로 장난처럼 다투는 아이들이 있었고 학교에서 나오면 유명한 타워팰리스가 바로 보이는 곳이었다. 한 반에는 이렇게 소위 잘 사는 아이들과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함께 있었다. 경제적 격차가 있기에 자연스럽게 두 그룹으로 나눠지는 듯했다.
당시 나를 담당하는 미술교사는 나이가 많으신 여선생님이었는데 우아하고 정갈한 분이셨다. 교생 마무리에 각자 담당교사에게 선물을 했는데, 백화점에서 머플러를 하나 샀었다. 비싼 건 아니어서 안 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선생님은 여유로워 보였고, 좋은 것만 입으시고 힘든 일을 안 해본 사람 같은 느낌이었다. 곱지만 만만치 않은 선생님이었다.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고 질투의 대상이었기에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집안이 어렵다는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했던 그저 20대 초반 성숙하지 못한 인간이었고, 학생들을 사랑하지 못했다. 질투가 났고, 열심히 하는 학생들에게 칭찬을 충분히 해주지 못했다. 그렇게 교생실습은 예쁜 계절에 해사한 얼굴로 웃으며 자신의 작품과 수업에 열정적이던 자기 주도적 학생들을 속으로 질투하며 인정에 인색했던 미성숙한 사람의 학교 체험정도로 마무리가 되었다. 교생 마무리 시점에 교사들과의 인사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마무리 소감을 얘기하면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저 난 교사를 하기에는 너무나 미성숙한 인간이었다.
졸업 후 언니의 임신으로 작은 화실의 대리 운영을 시작으로 다양한 직업에 몸을 담갔고 끈덕지게 오래 한 것은 없었다. 미술학원강사, 영화, 애니메이션, 그림책, 일러스트 등등 프리랜서도 하고, 회사도 나가보고, 재택도 하고 건드린 것은 많았으나 다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러다 나이가 들었고, 결혼도 안 했고, 먹고살아야 했다.
스스로를 책임지고 먹여 살려야 했다.
그러던 중 sky 중 한 곳을 졸업하고 이름 있는 기업에서 회사를 다니던 동생이 기업 창업주 손녀가 꽤나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사회적으로 질타를 받는 기업이 되었을 때쯤 이유는 말하지 않았지만, 갑자기 퇴사를 하겠다고 했다. 다들 의아했지만 혼자 모든 것을 잘 해내는 신뢰받는 동생의 결정을 존중했었다.
그렇게 동생은 공무원이 되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엄마를 돌보며 지냈다. 그 당시까지도, 그 나이까지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난 어? 공무원 시험에 붙네? 이것보다 임용시험이 더 경쟁율이 낮은데? 하면서 해보자 했고, 그렇게 4년을 공부해서 41살이라는 다소 당황스러운 나이에 신규교사가 되었다.
현재 나는 고향 도시로 내려왔고 고등학교 미술 교사로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