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이해한다는 것
공부하던 때가 차라리 나았다.
임용을 준비하는 4년 동안 일도 조금 하면서 공부를 했는데, 4년 차 가을 이후에 하루에 스터디를 7~8개 돌리면서 공부하던 때 빼고는 사실 공부가 할 만했다. 발령 동기선생님들은 공부하면서 울기도 했다는데 나는 아니었다. 그만큼 절실하지 못했고, 공부를 하는 게 오히려 마음 편하기도 했다. 그동안 여러 일을 하면서 느꼈기에 일하는 게 더 어렵다고 생각했고, 그렇게까지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운이 맞아 붙었다고 생각한다.
떨어지는 게 두려웠지만,
붙는 것이 더 두려웠다.
교생 실습 당시 나는 동료 실습생이던 자애로운 선생님에게 학생들이 외계인 같다는 말을 했었다. 졸업 후 초등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화실을 운영하면서 학생들이 외계인이라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친구들을 만나면, 학생들은 이해가 안 되고 하려고 노력할수록 더 어렵다고 한탄했었다.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니 당연히 내가 그들을 얼마나 이해하는지는 굉장히 직업적으로 중요한 부분이다. 이해할수록 그들에게 심리적으로 가까워질 수 있고 문제 상황에서 상황 파악을 통한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 그들을 이해하지 못할수록 나와 그들 사이에 있는 벽 앞에 멍하니 서있는 서늘한 기분이 계속 든다. 기분이 지속되면 일단 그들과 거리를 두게 되고 그저 친절하게 대하게 된다. 잘못을 눈감고 싶어지고, 단호한 훈육은 멀리하고, 함께 있는 그 시간이 흘러가기만 바라게 된다. 그들이 나와 다르다고 편견을 가지고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면서 분리하게 되면 점점 더 그들이 두려워지고 그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괴로워졌다.
작년에 나는 많은 날 울었다. 그것이 학생 탓이라고 꾸준히 생각했다. 나는 이 도시에서 가장 낮은 성적의 학생들이 모이는 공업고에 발령을 받았다. 신규교사 발령 시 이 도시의 고등학교의 빈자리는 단 한자리였다. 이 도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지만, 20년 이상 다른 도시에 살았기에 많이 변한 도시의 구석구석을 잘 알지 못했고, 이 학교는 사실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나와 어울리던 친구들 중에서 이 학교를 온 친구는 없었고, 그래서 이름뿐만 아니라 분위기를 전혀 알지 못했다.
학교 처음 왔을 때 학생들의 태도와 모습을 보고 망연자실했던 기억이 난다. 출근하여 학생들을 처음 맞이한 목, 금 이틀을 근무하고 신규 동기 선생님들에게 나는 이제 교사를 안 해도 될 것 같다, 모든 것을 다 경험한 느낌이다라고 했었다. 선생님들도 공감했는지 크게 웃었었다. 그만큼 기간제 경험도 없던 내가 이 학교에서 지낸 이틀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날 만큼 모든 것이 충격이었다. 나는 그저 낯선 곳에 떨어진 미숙한 인간이었고, 새로운 곳에 적응하랴 수업 준비하랴 에듀파인, 나이스 전산시스템 등 업무를 익히랴 정신이 없었고, 다 생소했다.
그중에서도 학생들이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다. 욕은 빠질 수 없고, 선생님들을 파악하느라 바쁜 눈, 서열싸움을 하는 듯한 학생들의 태도들이 힘들었다. 너무나 쉽게 학교 복도나 교실에 침을 뱉고, 아무 곳에나 쓰레기를 버리고, 학교 물건이나 친구의 물건을 함부로 다루고, 무력하거나 산만하고, 수업시간 중 사라지거나, 무단으로 조퇴를 하거나, 약해 보이는 친구에게 선을 넘는 장난이나 무력을 쓰는 등.. 단점만 수도 없이 보였다. 왜 이 학생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을까, 남의 감정, 자신의 인생,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 등 내가 이들을 이해하려면 어디까지 나의 그릇이 커야 하는 걸까 고민했었다.
그렇게 학생들은 꼭 외계인이어야 했고, 난 그들과는 다른 사람으로 평범하고 상식적이고 옳고 괜찮은 사람 쪽에 서있어야 했다.
나는 저들과 달라. 저들은 외계인이야. 나는 그들을 만난 적 없고, 친해질 수도 친해지고 싶지도 않아.
이런 마음으로 나는 수업을 했고, 학부모를 대하고, 학생을 대했다. 고3이었던 당시 조카는 내게 말했었다. 이모가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마, 걔들은 변하지 않아.
나는 친절하고 친절했다.
단호한 훈육은 불가능했다. 지금도 매우 어렵다. 조카의 말처럼 난 그들과 멀리 떨어져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며 전전긍긍했다. 학생들이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짠하기도 했다. 그들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와 제지하지 못하는 현실의 나 사이에서 나는 매우 무력해져 갔고, 교사라는 직업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미술이라는 과목을 배우게 하고 싶지 않아 졌고, 다음에 이곳에 올 미술교사들이 그들을 마주치지 않기를 바랐다. 너무 어리석게도 나는 이 학교에서 미술이라는 과목을 없애고 싶어졌다. 학교 교원 감축 과목 제출을 위해 전체 교원 회의를 진행하고, 난 담당자에게 미술이라는 과목을 없앨 수도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 당시 나는 내가 힘들다는 말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곳에 미술을 없앨 거야라는 생각보다는 너무 어리석게도 나 너무 힘들어요라는 표현이었던 것 같다. 며칠 후 담당 교사는 나에게 공고는 음악이나 미술 둘 중에 하나를 없앤 학교도 있다고 말하며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는 말을 했다. 덜컥 겁이 났고, 미술과 협의회의 회장님과 수석교사님에게 상황에 대해 말하고 혹시나 미술교사 자리가 없어질 경우 어떤 문제가 있는지 물었다. 한번 없어진 자리는 다시 만들기가 매우 어렵고, 이것은 다른 신규교사 유입에도 문제가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미술교사 전체 인원이 줄어들기에 이것은 매우 큰 문제일 수 있었다. 그저 힘들다고 칭얼거리기엔 너무나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지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고 겁이 난다. 담당교사에게 없애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다행히 잘 마무리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수석교사 선생님의 따뜻한 관심,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가 제일 중요하고 걱정된다고 말하던 부장 선생님 덕에 얼마나 바보 같은지 깨달았고 위로를 얻었다.
그만큼 나는 너무 휘청거렸던 것 같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헤매었다.
얼마 전 학생 한 명이 큰 사고로 별이 되었다. 작년 담임반 학생이었고, 장례식에서 어머님을 뵙는데 손이 떨리고 눈물이 너무 나서 힘들고 죄송했다. 잦은 무단 조퇴 등 학교 생활이 성실했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속이 여리고 착한 학생이었다. 자퇴를 하려고 어머님이 방문하셨었지만, 긴 대화 후 자퇴를 하지 않고 다음 학년으로 어렵게 진급했던 대견한 학생이었고, 노력하는 부모님이었다. 밤에 알바를 하다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났는데, 난 그 나이에 세상에 직접 뛰어들지 않고 집에만 있으면서 가난하다고 한탄했었다. 알바를 하고 있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대견하다는 생각을 바로 하지는 못했던 나였는데 내가 얼마나 그들의 인생을 몰랐고, 그들의 노력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았는지 또 깨달았다.
학생들과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이렇게 깨달아가는 것이 많다. 생각보다 여리다는 것, 표현이 거칠 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다는 것, 그들 인생에서는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 모든 것이 불안하고 정해지지 않은 나이에 자신의 인생을 위해 진로를 파악하고 좋아하거나 잘하는 것을 찾아가려고 노력한다는 것. 그들에게 내가 다가가고자 노력하면 조금씩 마음을 열어준다는 것.
그리고 그들에게는 자신의 인생을 잘 이끌어 나갈 충분한 내면의 힘이 있음을, 그들이 악인이 아님을, 그들을 걱정 없는 눈으로 봐야 하고,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렸다는 것을. 내가 그들을 오해하고 편견에 사로잡혀 넓은 시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을.
더불어 나는 너무 부족한 인간이라는 것을 깊이 느끼는 중이다. 평범하려고 노력했지만,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부족하고 얼마나 어리석은지. 그들처럼 매 순간 흔들리고 상식적이지 않거나 스스로의 감정에 휘둘리고 힘들어할 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고작 2년 차인 내가 지금에야 깨달은 것은 나 또한 그들처럼 누군가에게는 외계인이고 누구나 완벽하지 않다는 그 평범한 사실이다.
우리는 어쩌면 서로 다른 행성의 독립적인 외계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