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낮추라는 조언, 꼭 따라야 할까?
어느날 내가 친한 아나운서에게 물었다. "연애시장에서 눈이 높은 기준은 뭘까요?"
그녀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작가님 같은 거요." 나는 억울했다. 나는 정말 눈이 높지 않은데...
1년 6개월을 만난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1년을 솔로로 지냈다. 고독을 곱씹으며 혼자 빌빌대는 내가 불쌍했는지 주변 동료들이 소개팅을 시켜줬다. 소개팅이라는 게 그렇듯-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면 상대는 내가 영 별로였고, 반대로 나에게 호감을 팍팍 보이는데(이건 진짜다) 내 마음이 요지부동인 적도 있었다. 몇 번 이런 일이 반복되니 소개팅을 주선해 준 동료들이 슬슬 눈치를 주다 결국엔 대놓고 말했다. "눈이 너무 높은 것 같아요. 아니, 확실히 높아요."
대체 '눈이 높다'는 건 뭘까? 보통 상대의 외모나 학벌, 집안, 경제력 같은 걸 너무 까다롭게 볼 때 그런 말을 듣는 것 같다. 꼭 무슨 재벌 2세나 연예인급 미모를 바라는, 현실 불가능한 수준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주변에서 보기에 '자기 상황에 비해 너무 큰 걸 바라는 거 아니야?' 싶을 때, 내 현실과 내가 바라는 이상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 보일 때, 그런 꼬리표가 붙는 모양이다.
여기서 문득 궁금해졌다. 그럼 성격이나 인성처럼 눈에 잘 안 보이는 내면적인 건 어떨까? 이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눈이 높다'는 소리를 들을까? 상대방의 직업이나 외모는 SNS만 슥 봐도 대충 감이 오지만, 그 사람의 진짜 성격이나 가치관, 자라온 환경 같은 건 오래 겪어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지 않나. 경제력도 마찬가지. 겉은 번지르르한데 속은 텅 비었을 수도, 반대로 엄청 부자인데 티 안 내고 소박하게 살 수도 있으니. 이렇게 단번에 드러나지 않는 부분을 까다롭게 보는 건, 이것도 '눈이 높은' 걸까?
이상형을 물으면 '말 통하는 사람', '성격 좋은 사람', '인성 바른 사람'을 꼽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눈 높다'는 평가가 다시 등장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다른 조건은 좀 아쉬워도 '사람은 정말 좋아야 해'라는 기준이 확고하거나, 반대로 다른 건 다 완벽해도 성격이나 가치관이 결정적으로 안 맞으면 절대 안 된다는 태도를 보이면, 주변에서는 '뭘 그렇게까지 따지냐', '너무 까다로운 거 아니냐'고 생각하기 쉽다는 거다.
결국 '눈이 높다'는 건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스펙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성격, 가치관, 생활 방식 같은 내면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나만의 확고하고 양보할 수 없는 기준이 있다면, 그것 역시 '눈이 높은' 게 될 수 있다는 거다. 특히 사람들은 내가 어떤 세세한 기준을 가졌는지 일일이 알기 어렵다. 그저 결과, 즉 '쟤는 왜 자꾸 소개팅(혹은 소개)을 거절할까?' 하는 모습에 더 주목하게 된다. 아무리 내가 '나는 외모나 돈보다 가치관이 맞는 게 중요해!'라고 속으로 외쳐봤자, 만남이 계속 어그러지면 '쟤는 뭘 해도 만족을 못 하나 보네. 눈만 높아가지고.'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해버리기 쉽다.
그러니 '눈이 높다'는 말은 어쩌면 '남들이 보기에 좀 까다로워 보이는 기준을 가졌는데, 그걸 쉽게 바꾸지 않는 고집' 같은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게 눈에 보이는 조건이든, 보이지 않는 내면의 기준이든.
눈이 높다 = 타인이 볼 때 까다로운 기준 + 절대 타협하지 않는 태도
그래서, 눈을 낮춰야 할까? 사람들이 흔히 하는 '눈 좀 낮춰'라는 조언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아무나 만나!'라는 뜻은 아닐 거다. 아마 '완벽한 사람만 찾지 말고,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면서 가능성을 찾아봐. 그리고 너 스스로도 괜찮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봐.' 이런 의미에 더 가깝겠지. 이상적인 사람을 바라는 건 당연하지만, 좋은 관계는 처음부터 완성품으로 오는 게 아니라 서로 알아가고 맞춰가면서 함께 만들어가는 거니까. '타협'이라기보다는, 미처 몰랐던 매력을 발견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그런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고, 첫인상 너머의 무언가를 보려고 애쓰는 건 분명 의미 있는 일일 거다.
솔직히 말하면, 이제는 나도 내가 눈이 높다는 걸 인정한다. 누가 나를 좋아해 주는 것보다, 내가 먼저 좋아해야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것도. 이러니 연애가 어렵고 솔로 기간이 길어지는 거겠지. 그래도 어쩌겠나.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냥, 그렇게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