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범 May 15. 2020

11살 때, 담임 선생님에게 배운 것

스승의 은혜는 하늘?

스승의 날이면 떠오르는 선생님이 한 분 있는데, 바로 초등학교 4학년 담임 선생님이다. 

그 이유는, 선생님의 성함이 우리 어머니와 한 글자 빼고 똑같은 것도 있지만, 내가 많은 걸 깨우칠 수 있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 선생님은 차별이 무척 심했다. 몇몇 학생들만 특별히 예뻐했고, 나와 내 친구들을 무척 싫어하셨다

친구들 앞에서 대놓고 비교하거나 비아냥대고, 툭하면 시비 걸기 일쑤였다. 

종종 파일로 내 머리를 툭툭 치곤 했었는데, 그게 제일 기분 나빴다. 

이처럼 선생님은 본인 마음을 내게 적극적(?)으로 표현하셨는데, 웃기게도 나는 선생님이 나를 싫어하는 줄 몰랐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11살의 나는 ‘선생님이 나를 싫어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이건 말이 안 되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11살의 나는, 선생님이면 무조건 나를 좋아하는 줄로 알고 있었다.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3학년, 심지어 학원 선생님들까지 모두 나를 좋아했으니까. 


2학기 때부터 나는 선생님과 친해지기 위해 선생님 앞에서 착한 짓을 많이 했다.

 청소도 열심히 하고, 숙제랑 공부도 성실히 했다. 아픈 친구가 있으면 보건실까지 데려다주고, 짐 옮길 일이 있으면 내가 먼저 나서서 했다. 


선생님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내 노력에도 결과가 바뀌지 않자, 머릿속에 의문만 피어났다.

‘왜 저 친구들만 예뻐하는 거지?’, ‘왜 날 싫어하지?’,

‘왜 화장실 청소는 나랑 내 친구들만 하는 거지?’


 년 내내 붙들고 있었던 의문은 중학교 2학년쯤에 풀렸던 것 같다.

선생님이 예뻐하던 친구들. 그 친구들의 부모는 특별한 일이 없어도 학교에 자주 방문했었다. 

반대로 맞벌이로 무척 바쁘시던 우리 부모님은 학교에 자주 오시질 못하셨다. 내가 독감으로 엄청나게 아팠을 때, 그때 딱 한 번 오셨던 것 같다. 

딱 그 차이였다. 부모님의 방문 횟수와 선생님의 애정은 비례했다. 

의문이 해결되자 이해가 되었고, 이해가 되자 상처가 되었다.

300번의 빗자루질보다 3만 원짜리 수박 한 통이 더 효과적이라는 걸, 그땐 왜 몰랐을까. 


무한도전에서 나온 박명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

박명수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생활 정도는 보통이나 교육에 관심이 없고, 옷은 비싸게 입힘]


이 한 문장을 해석해보자면,

-생활 정도는 보통이나 => 일하느라 선생 소식 못 들을 정도는 아니지만

-교육에 관심이 없고 => 촌지를 주지 않으며,

-옷을 비싸게 입힘 => 돈은 있음


학생이 학교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특기는 무엇이며 친한 친구는 누구인지 등이 적혀있어야 할 생활기록부에 가정형편만 적혀있다. 

옛날에는 ‘촌지’가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은 김영란법이 있어 덜하겠지만...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다지만, 그 하늘이 항상 푸른 것도 아니다.

먹구름에 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도, 구름 한 점 없이 쨍하고 맑을 때도 있는 것처럼 

좋은 스승이 있다면 그렇지 못한 스승도 있는 법이다. 


끝으로, 

저의 4학년 담임선생님.. 만수무강하시길..

매거진의 이전글 90년대생이 신입사원으로 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