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노인, 젊은이 할 것 없이 다 바쁘다.

모 내기

by 역사와동화

봄부터 시절이 좋아 제대로 일이 진행될 때는 우리 동네에서는 두레패를 조직하여 농상기를 일 밭에 꽂아놓고 한 축 일하고 나서 농악기를 두드리며 신나게 한바탕씩 놀고 일터를 옮겨 하루에도 몇 집씩 일을 한다.


음식 솜씨 좋은 우리 집은 항상 점심 준비를 해야 한다. 오이소박이를 맛있게 하고 반찬을 갖추어 들밥을 준비한다. 그런데 비가 많이 오면 일이 그 이튿날로 물러진다. 그러면 오이 김치를 우물물로 자주 갈아가며 내일을 기다린다. 그런데 그 다음날도 비가 오면 낭패다. 이 김치는 동네가 다 나누어 먹고 다시 해야 한다. 이 좋은 시절 그 두레패 밥을 해서 먹을 때도 우물물은 한 동이가 적을 정도이다.


기다리던 비가 오지 않아 장마가 져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지면 천둥지기 논에 물이 고인다. 그때 논이 갈라지고 딱딱하던 논은 물이 고이면 그 흙이 이상하게도 흐물흐물 풀어진다. 그러면 굳었던 논을 갈고 써리고 하여 농상기고 뭐고 할 것 없이 웃방 처녀, 새로 시집온 새 색시 할 것 없이 온 식구가 다 나서서 모를 내는데 이 모를 마냥모라고 한다.


마냥모는 모 키가 무척 크고 때를 놓쳐 오죽하면 그때 내서 먹을지 말지 하여 겨드랑이에 박 송이를 끼어 봐 가며 낸다고도 한다. 그만치 소출이 적어 희망이 적은 것이다. 이렇게 하늘만 쳐다보고 살던 시절 그루 조를 심어놓고 마냥모를 내게 되면 때를 놓쳐서 수북수북 나온 조가 그대로 있다. 아니 마냥모는 웃방 색시, 새로 시집온 새댁 할 것 없이 다 나가 일하던 분들을 왜 다시 들여앉히고 남자분들끼리만 매는지?

그 그루 조가 쏟아져 나온 그대로 키만 자란 것을 가운데 썩 집어내고 가장자리에 울타리 같이 좀 실하게 자란 놈만 대여섯대 남기고 거름을 주지만 시기를 놓치고 매준 그 조 이삭은 쉽게 말해 파리 대가리 흔들듯 한다고들 말한다. 조 이삭이 오죽지 않아 그런 말이 생겼을 것이다. 그러니 수확인들 오죽하랴. 가난은 맡아 놓았고 마냥모 낸 모도 소출이 말할 수 없다. 그러니 고래논을 하는 사람에게 못자리를 얻어 하기란 너무 어렵다. 언제 모가 나갈지 모르니 말이다. 제때 모를 내지 못하면 논 주인에게 미안하고 도지 줄 벼도 변변치 않다. 그렇게 마냥모를 냈다.


또 쇠 마답자리 걸직한 자리에 왕굴모를 낸다. 그리고 가을에 그 왕굴을 베어 가늘게 쪼개어 말려서는 돗자리를 치고 좀 굵게 쪼개서는 자리를 매어 모든 방에 깔았다. 또 그 왕골 껍질로는 똬리를 만들어 물동이도 이고 밥고리도 이고 하는 머리 받침으로 썼다.


그런데 우리집 아저씨(머슴)는 한시도 놀 새가 없다. 식전에 물 긷고 봄서부터 시작해서 모내고 김매고 그 김매기가 좀 주춤하면 동네가 모두 어우러져 길을 닦는다. 그리고 7월에는 싸리를 베어다 밖에서 쓰는 싸리비를 만든다. 그리고 칡덩굴로는 할아버지께서 노끈을 꼬아 돗자리도 짜고 지직(기직의 방언, 기직은 왕골껍질이나 부들 잎으로 짚을 싸서 엮은 자리, 베틀로 베를 짬)도 낸다. 돗자리는 돗자리를 짜는 노끈을 가늘게 꼬아 바디에 꿰어 날아메고 왕굴을 씨로 매겨 둘이 짜면 노끈인 날은 속에 숨어 안 보인다. 자리는 고드레돌로 날아 지직틀에 혼자 맨다.


여자들은 삼베 길쌈, 무명 길쌈, 명주 길쌈 다양한 길쌈으로 바쁘다. 삼은 봄에 심어 여름에 거두어 많은 과정을 거쳐 베옷에 이른다. 무명은 밭에 목화를 심어 씨를 빼고 실을 뽑아 옷감으로 둔갑한다. 명주도 누에를 뽕을 따다 먹여 기를 때 누에는 넉 잠을 잔다. 이렇게 긴 여정을 거쳐 누에가 늙으면 섶을 주어 고치(집)를 짓게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고치를 따서 실을 뽑아 많은 과정을 거쳐 옷감으로 둔갑한다.

그러니 옛날에는 노인, 젊은이 할 것 없이 다 바쁘다.


#모내기 #길쌈 #두레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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