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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사와동화 Sep 08. 2023

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 104쪽 | 다산책방 | 2023년 4월

가슴이 서늘할 정도로 문장이 섬세하다. 


사랑과 다정함조차 아플 때가 있다. 
태어나 그것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에게는 


무심하고 거친 아버지, 집안일에 밭일에 지친 어머니, 어려운 형편 때문에 제대로 된 보살핌과 관심을 받지 못하던 소녀가 어머니의 출산을 앞두고 여름 몇 달 동안 낯선 친척 집에 맡겨지는 이야기다.    

  

엄마는 할 일이 산더미다. 우리들, 버터 만들기, 저녁 식사, 씻기고 깨워서 성당이나 학교에 갈 채비시키기, 송아지 이유식 먹이기, 밭을 갈고 일굴 일꾼 부르기, 돈 아껴 쓰기, 알람 맞추기. 하지만 이 집은 다르다. 여기에는 여유가, 생각할 시간이 있다. 어쩌면 여윳돈도 있을지 모른다.(19쪽)     


“아빠.” 내가 말한다. 나무 좀 봐요.”

“나무가 뭐?”

“수양버들이잖아.” 아빠가 목을 가다듬는다.(11쪽)     


나는 아빠가 왜 건초에 대해서 거짓말을 할까 생각한다. 아빠는 진짜 그러면 좋겠다 싶은 거짓말을 자주 하는 편이다.(17쪽)     


아빠는 왜 제대로 된 작별인사도 없이, 나중에 데리러 오겠다는 말도 없이 떠났을까? 마당을 가로지르는 묘하게 무르익은 바람이 이제 더 시원하게 느껴지고, 크고 하얀 구름이 헛간을 넘어 다가온다.(21쪽)  

   

나도 저 밖에 나가서 일하고 싶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빠가 나를 여기 두고 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지만 내가 아는 세상으로 다시 데려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 이제 나는 평소의 나로 있을 수도 없고 또 다른 나로 변할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다.(17쪽)     


킨셀라 부부 집에서 소녀는 살고 싶어진다. 살뜰한 관심과 배려로 소녀를 돌보는 아주머니와 겉으론 무뚝뚝해 보여도 다정히 마음을 전하는 아저씨가 있는 집.     


아주머니의 손은 엄마 손 같은데 거기엔 또 다른 것, 내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것도 있다. 나는 정말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지만 여기는 새로운 곳이라서 새로운 말이 필요하다.(25쪽)     


“비밀이 있는 곳에는 부끄러운 일이 있는 거야.” 아주머니가 말한다. “우린 부끄러운 일 같은 거 없어도 돼.”

“알겠어요.” 나는 울지 않으려고 심호흡을 한다.

아주머니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른다. “넌 너무 어려서 아직 모를 뿐이야.”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아주머니가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다는 사실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가서 언제나처럼 모르는 일은 모르는 채로 지내고 싶다고 생각한다.(27쪽)

 

우리는 계속 걸어가고, 양동이의 가장자리를 타넘는 바람이 가끔 속삭인다. 우리 둘 다 말이 없다. 가끔 사람들이 행복하면 말을 안 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그 반대도 마찬가지임을 깨닫는다.(28쪽)     


머그잔을 물에 담갔다가 입으로 가져온다. 물은 정말 시원하고 깨끗하다.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맛이다. 나는 머그잔을 다시 물에 넣었다가 햇빛과 일직선이 되도록 들어 올린다. 나는 물을 여섯 잔이나 마시면서 부끄러운 일도 비밀도 없는 이곳이 당분간 내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주머니가 나를 끌어당겨 풀밭에 다시 안전하게 올려놓은 다음 혼자 내려간다. 양동이가 옆으로 잠시 떴다가 가라앉아서 꿀꺽꿀꺽 반가운 소리를 내며 물을 삼키더니 수면 밖으로 나와 들어 올려진다.(30쪽)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오솔길을 따라 밭을 다시 지나올 때 내가 아주머니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없으면 아주머니는 분명 넘어질 것이다. 내가 없을 때는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다가 평소에는 틀림없이 양동이를 두 개 가져왔겠다는 결론을 내린다. 나는 이런 기분을 또 언제 느꼈었는지 기억하려 애쓰지만 그랬던 때가 생각나지 않아서 슬프기도 하고, 기억할 수 없어 행복하기도 하다.(30~31쪽)     


모든 것은 다른 무언가로 변한다. 예전과 비슷하지만 다른 무언가가 된다.(33쪽)          


아이가 자연스럽게 웃음을 터트리는 장면에서 아이가 서서히 이 가정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오, 경고사격이군!”

“잘 들으라고.”

“누구 지갑이 가벼워지고 있는지 알겠네.”

“내가 따고 있어.” 킨셀라 아주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끝났을 때도 내가 따고 있을 거야.”

그때 왜인지 모르지만 당나귀 케이시 아저씨가 히힝 웃었고, 그래서 내가 웃었다. 그러자 다들 웃기 시작했고 어떤 아저씨가 말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게 웃음 참기 대결이야, 카드 게임이야?” 그때 당나귀 케이시 아저씨가 한 번 더 웃었고, 다들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48쪽)          


킨셀라 아저씨는 따뜻하고 섬세하다.     


킨셀라 아저씨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빼더니 나에게 뭔가를 건넨다. “그걸로 초코아이스 하나 사면 되겠네.”

내가 손을 펴고 1파운드 지폐를 빤히 본다.

“이 돈이면 초코아이스 여섯 개는 사겠는데?” 아주머니가 말한다.

“아, 애는 원래 오냐오냐하는 거지.” 킨셀라 아저씨가 말한다.(52쪽)     


킨셀라 아저씨는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고마워요, 밀드러드. 얘를 맡아줘서 정말 고마워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주머니가 말한다. “참 조용하네요, 얘는.”

“해야 하는 말은 하지만 그 이상은 안 하죠. 이런 애들이 많으면 좋을 텐데요.” 아저씨가 말한다.(67쪽)    


마당을 비추는 커다란 달이 진입로를 지나 저 멀리 거리까지 우리가 갈 길을 분필처럼 표시해 준다. 킨셀라 아저씨가 내 손을 잡는다.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가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힘든 기분이지만 걸어가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에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 아저씨는 내가 발을 맞춰 걸을 수 있도록 보폭을 줄인다.(69~70쪽)     


“이상한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란다.” 아저씨가 말한다. “오늘 밤 너에게도 이상한 일이 일어났지만, 에드나에게 나쁜 뜻은 없었어. 사람이 너무 좋거든, 에드나는 남한테서 좋은 점을 찾으려고 하는데, 그래서 가끔은 다른 사람을 믿으면서도 실망할 일이 생기지 않기만을 바라지. 하지만 가끔은 실망하고.”

아저씨가 웃는다. 이상하고 슬픈 웃음소리다.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넌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 아저씨가 말한다. “절대 할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오늘 밤은 모든 것이 이상하다. 항상 거기에 있던 바다로 걸어가서, 그것을 보고 그것을 느끼고 어둠 속에서 그것을 두려워하고, 아저씨가 바다에서 발견되는 말들에 대해서, 누구를 믿으면 안 되는지 알아내려고 사람을 믿는 자기 부인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를,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하고 어쩌면 나에게 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는 계속 걷다가 절벽과 암벽이 튀어나와 바다와 만나는 곳에 도착한다. 이제 앞으로 갈 수 없으니 돌아가야 한다. 어쩌면 여기까지 온 것은 돌아가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72~73쪽)     


“보렴, 저기 불빛이 두 개밖에 없었는데 이제 세 개가 됐구나.”

내가 저 멀리 바다를 본다. 아까처럼 불빛 두 개가 깜빡이고 있지만 또 하나가, 두 불빛 사이에서 또 다른 불빛이 꾸준히 빛을 내며 깜빡인다.

“보이니?” 아저씨가 말한다.

“네.” 내가 말한다. “저기 보여요.”

바로 그때 아저씨가 두 팔로 나를 감싸더니 내가 아저씨 딸이라도 되는 것처럼 꼭 끌어안는다.(75쪽)     


처음에는 어려운 단어 때문에 쩔쩔맸지만 킨셀라 아저씨가 단어를 하나하나 손톱으로 짚으면서 내가 짐작해서 맞추거나 비슷하게 밎출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다. 이윽고 나는 짐작으로 맞출 필요가 없어질 때까지 그런 식으로 계속 읽어나갔다. 자전거를 배우는 것과 같았다. 출발하는 것이 느껴지고, 전에는 갈 수 없었던 곳들까지 자유롭게 가게 되었다가, 나중엔 정말 쉬워진 것처럼.(83쪽)     


킨셀라 아저씨는 생각이 깊고 진실된 사람이다.     

남자들은 이런 식으로 사실은 아무 이야기도 나누지 않는다. 장화 뒤꿈치로 잔디를 뜯고, 차를 몰고 가기 전에 지붕을 철썩 때리고, 침을 뱉고, 다리를 쩍 벌리고 앉기를 좋아한다. 신경 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12쪽)     

하지만 아저씨는 그런 남자가 아니다.      

“여자들 말이 항상 옳다니까. 예외가 없어. 아저씨가 말한다. 여자한테 무슨 재능이 있는지 아니?”

“뭔데요?”

“예감. 좋은 여자는 멀리 내다보면서, 남자는 낌새를 채기도 전에 무슨 일이 생길지 미리 알아차리지.”(74쪽)      

    

아이가 태어나고 이제는 집에 돌아가야 한다.     


“그럼 돌아가야 하는 거예요?”

“그래.” 아주머니가 말한다. “그렇지만 너도 알고 있었잖니?”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편지를 본다.

“우리처럼 나이 많은 가짜 부모랑 여기서 영영 살 수는 없잖아.”

나는 그 자리에 선 채 불을 빤히 보면서 울지 않으려고 애쓴다.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건 정말 오랜만이고, 그래서 울음을 참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라는 사실이 이제야 떠오른다.(79~80쪽)     


물건을 하나하나 모으면서 나는 우리가 함께한 나날을, 우리가 물건을 샀던 곳과 이따금 나누었던 대화를, 그리고 거의 항상 빛나고 있던 태양을 떠올린다.(83쪽)     


그러나 소녀는 헤어지고 싶지 않다.  아이의 부모는 고마움도 잘 표현하지 못한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가 묻고 있지만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절대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만큼 충분히 배웠고, 충분히 자랐다. 입을 다물기 딱 좋은 기회다. 

자갈 진입로에서 자동차가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와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어느새 나는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나는 선 자세에서 곧장 출발하여 진입로를 달려 내려간다. 심장이 가슴속이 아니라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것 같다. 나는 내 마음을 전하는 전령이 된 것처럼 그것을 들고 신속하게 달리고 있다. 여러 가지 일들이 마음속을 스친다. 벽지에 그려진 남자아이, 구스베리, 양동이가 나를 아래로 잡아당기던 그 순간, 길 잃은 어린 암소, 젖은 매트리스, 세 번째 빛, 나는 내 여름을 지금을, 그리고 대체로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한다.(96쪽)     


아저씨의 품에서 내려가서 나를 자상하게 보살펴 준 아주머니에게 절대로,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얘기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지만, 더욱 심오한 무언가 때문에 나는 아저씨의 품에 안긴 채 꼭 잡고 놓지 않는다.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98쪽)     


너무나 생생하고 구체적이라 어떤 이야기와도 다르게 느껴지도록 만든다. 동화로 보면 안 되는데 어린 아이가 주인공이니 동화라고 생각하고 읽게 된다. 그래서 너무 묘사가 많게 느껴졌다. 또 애매한 결론 때문에 속상했다. 분류는 소설로 되어 있어서 속상한 내가 이상하지만, 작가 자신이 멋을 부리기 위해 애매한 태도를 취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 아이를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마음을 그리는 아이>도 위탁아 이야기다. 자기 길을 찾기 위해 움직이는 아이, 그 아이를 품어안은 따뜻한 가정, 그래서 해피 앤드.  


맡겨진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아이를 잡았으면 좋겠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소녀의 부모가 아이를 기꺼이 내어줄 수는 없을까. 맡겨진 아이도 "나는 킨셀라 아저씨 집에서 살겠어요." 하고 큰소리로 말했으면 좋겠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작가가 말하고 있다지만, 나는 한편으로 말없음이란 용기 없음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고 투정을 부려본다.     

그리고 소녀가 뒤가 보이지 않는 아저씨에게 자기 아빠가 오고 있다고 경고하는 말이라기보다는 킨셀라 씨를 아빠라고 부른 것으로 그동안의 온정에 감사의 인사를 한 걸로 생각해버렸다. 그랬더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말없는 소녀>로 영화로도 나왔다고 하니,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챙겨봐야겠다.


진짜 속상했던 또다른 이유도 있다. 너무 잘 썼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질투. 그러나 질투도 어느 정도 급이 맞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 기만이다. 그냥 영향을 미치지 않는 푸념 정도로 해두어야겠다. 예전에는 잘 쓴 글에 감탄하면서 “좋아, 나도 해보자.”였다면 지금은 감탄하고는 바로 한숨이 나온다. 거기는 내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곳 같다.     


그래도...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점프하는 아이들이 있다. 특히 책읽기를 많이 한 아이들이 그렇다. 차곡차곡 쌓이다 어느 날 껑충 성장한다. 

뭐가 없다면... 바닥에서 시작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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