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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사와동화 Sep 08. 2023

긴긴밤

루리 글 그림 | 문학동네 | 144쪽 | 2021년 2월 3일



『긴긴밤』은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흰바위코뿔소 노든의 이야기이다. 노든은 코끼리 고아원에서 코끼리들과 지내지만 행복하다. 그러나 스스로 앞날을 선택해야 하는 때가 왔을 때 노든은 또 다른 자신인 코뿔소가 되기 위해, 야생으로 나왔다. 야생에서 아내를 만나고 딸을 키우며 행복했지만 모두 잃고 동물원으로 오게 되었다. 동물원에서 앙가부에게 악몽을 꾸지 않고 긴긴밤을 견딜 방법을 알게 된다. 그러다 전쟁이 나고 동물원에서 탈출한 노든은 버려진 알을 품고 다니는 치쿠를 만난다. 치쿠는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알에서 어린 펭귄이 태어난다. 그리고 이야기는 노든과 어린 펭귄이 수없는 긴긴밤을 함께하며, 바다를 찾아가는 것으로 이어진다.


꽤 감동적이었지만 눈물을 흘릴 정도는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리 재미있지 않았다. 처음 읽을 때도 몰입이 안 돼 뜨문뜨문 읽었고 두 번째 읽을 때는 분석하듯 읽어서 감동이 줄어든 건지도 모른다. 이전의 우화랑 무엇이 다를까. 동물들의 색다른 조합, 신선한 공간, 부성애.

동물원을 설정해서 동물의 생태를 문제 삼을 것도 없고, 직접적인 묘사보다는 모호한 느낌으로 처리한 것들이 많아서 상상의 여지는 많았다. 이미지가 가득하게 남았다. 사람들이 왜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런 류의 책들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상을 받을 정도인가,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할 정도인가에는 고개가 조금 갸웃거려졌다. 내가 우화라는 편견에 사로잡혀서 그런가 생각도 해보았다.

사람들이 구매를 하고는 올린 평을 알라딘에서 살펴보았다.


아동문학이라지만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작품이다. / 아동문학 수상작을 간혹 읽어봤는데 최근에는 아동문학의 수준이 획기적으로 전환된 듯한 감동이 인다. 긴긴밤이라는 이 소설 속의 노든과 치쿠, 윔보, 앙가부, 아기 펭귄 등의 등장 동물들 하나하나가 모두 소수자들을 대변할 뿐 아니라 고요 속에서 분투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을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 비슷비슷한 느낌의 작품들이 쏟아져나오는 가운데 이 책과 비슷한 책이 언젠가 있었나 기억해봐도 떠오르는 게 없다. 그렇다. 이 책은 정말 처음 보는 느낌이다. 완벽히 새로운 느낌. 낯설지만 불편하진 않았다. / 어린이 문학상 수상작이지만 어른에게도 깊은 감명을 주는 책입니다. / 어린이문학을 내가 이렇게 꺼이꺼이 울면서 읽다니.. 나이불문하고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께 이책을 추천한다. / 코뿔소와 펭귄이라는 생각하지 못한 조합으로 이토록 아름다운 연대와 돌봄의 이야기를 써낼 수 있다니 놀랍다. / 어린이문학에만 있기에는 너무 아쉬운 작품, 어른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예요. / 어른의 시선으로 읽으니 마음 아프기도, 따뜻하기도 한 그런 책이었습니다. / 잔잔하면서도 색감이 좋은, 참 좋은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느낌입니다./ 아이를 위해 산 책을 읽고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 아이에게 읽어주다가 마지막쯤에는 제가 울어버렸네요 애는 아직 어려서 잘 이해를 못하고 저만 펑펑 울고/ 아이에게 읽어주다 엄마인 제가 더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온 책이예요./ 애니메이션 제작 강력 추전하며, 카테고리도 어른 문학에 넣어 주시길!/ 아름다운 이야기, 그 보다 더 아름다운 삽화


독자들의 평을 보고 든 생각 하나는 이렇게 위로를 바라는 어른이 많았나, 하는 거였고 두 번째는 아직까지 독자들은 아동문학을 이런 시각으로 보고 있구나, 세 번째는 그림이 한몫했구나였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수긍이 갔다. 어린이 책은 어른의 손을 거쳐 아이에게 간다. 그런 점도 유효했다.

그럼에도 굳이 어린이문학상 대상을 주어야 했을까에는 선뜻 수긍을 하기가 어려웠다. 어린이문학상을 받지 않았더라도 판매는 잘 되었을 텐데... 어른을 위한 동화에서 벗어나려고 어린이문학이 꽤 애써오지 않았나... 무슨 이유로 뽑았을까 하고 심사평을 여러 번 보았다. 


‘나는 누구인가’는 문학의 영원한 화두이다.…… 이 작품은 ‘나로 살아가는 고통과 두려움, 환희를 단순하지만 깊이 있게 보여 준다.…… 긴긴밤 속 전언처럼 우리 삶은 더러운 웅덩이 같은 곳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더러운 웅덩이 속에 빛나는 별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이야기한다.


심사평도 줄거리가 주로 이어지고 추상적으로 느껴졌다. 딱히 무엇을 높이 평가해야 하는지 머리에 쏙 들어오지 않았다.


루리 작가는 미술 이론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러다 2020년 황금도깨비상을 수상한 첫 그림책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가 나왔다. 그림형제의 「브레멘 음악대」를 현대적 감성으로 재해석하여 독특한 화면 구성과 세련된 일러스트로 풀어낸 수작이고, 다소 무겁고 우울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위트와 재치로 재미를 더했다, 고 했다.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에 대한 설명을 조금 더 읽고 『긴긴밤』의 수상에 동의하게 되었다. 딱 『긴긴밤』의 장점이었다.

“기존의 『브레멘 음악대』의 큰 이야기 틀을 유지하면서 현대적 배경과 소재를 개성 있게 각색했다. 굵고 선명한 일러스트에 입혀진 강렬한 색감, 그리고 독특한 화면 분할이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이와 어울리는 담백하고 간결한 글 덕분에 더욱 더 그림에 몰입할 수 있다. 또 그림의 한 장면처럼 등장하는 김치찌개 가게명 ‘오늘도 멋찌개’, 도로명 ‘꿈고개로’와 같은 작고 세세한 부분에서 작가의 센스와 유머를 엿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복선이자,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력을 확장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책에 나온 문장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코끼리가 노든에게 한 말.

“하지만 너에게는 궁금한 것들이 있잖아. 네 눈을 보면 알아. 지금 가지 않으면 영영 못 가. 직접 가서 그 답을 찾아내지 않으면 영영 모를 거야. 더 넓은 세상으로 가. 네가 떠나는 건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괜찮을 거야. 우리가 너를 만나서 다행이었던 것처럼, 바깥세상에 있을 또 다른 누군가도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여기게 될 거야.”(15쪽)


노든이 어린 펭귄에게 한 말.

“누구든 너를 좋아하게 되면, 네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어. 아마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너를 관찰하겠지. 하지만 점점 너를 좋아하게 되어서 너를 눈여겨보게 되고, 네가 가까이 있을 때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알게 될 거고, 네가 걸을 때는 어떤 소리가 나는지에도 귀 기울이게 될 거야. 그게 바로 너야.”(99쪽)


이런 깊이 있고 달달한 말들이 많은 것으로 『긴긴밤』이 수상할만하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누가 이정도 쓸 수 있을까. 세 번째 읽을 때는 조금 더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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