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 물

내 심장이 가장 큰 소음을 내던 때에

by 사루



많은 사람들이 육체적인 고통이 생기고 병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진심으로 걱정하지만,

정신적인 고통과 병은 자신들이 겪어보지 못해서 혹은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해서, 가장 큰 이유는 그냥 네가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식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저 가벼운 해결책들을 본인들의 경험을 토대로 말하곤 한다


그런 해결책들을 모르는 게 아니다. 몰라서 해결책을 찾고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해결해 주길 바라며 손을 뻗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접시물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지만 내가 빠진 곳이 접시 물인 걸 알면서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냥 일어나기만 하면 손 뻗기만 하면 나올 수 있는 건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 하지만 사람들은 네가 빠진 곳은 접시물이라는 무릎만 펴면 손만 뻗으면 나올 수 있다는 들으면 들을수록 답답해지기만 하는 해결책들을 자신도 겪어봐서 다 안다는 식으로 내뱉는다.


내가 하는 걱정들은 대부분 남들이 하는 걱정과 비슷하다. 진로, 연애, 인간관계, 개인적인 외모 콤플렉스 등등 모두 한 번씩은 했을 법한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가 맘 속에 품고 있을 법한 그런 고민들 말이다.

하지만 내가 받아들이는 걱정은 남들과 깊이가 다르고 무게가 다르다. 별거 아닌 걱정도 어느새 이 걱정의 시작점이 어디였는지 길을 잃을 만큼 깊어져있고 남들은 어깨에 묻은 먼지들처럼 털어내면 사라질 법한 걱정들에 나는 짓눌리고 깔리고 뭉개져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최근 예전보다 잠을 더 못 자는 것 같다. 원래는 이해하지 못했던 공황 장애 증상이 왔다. 당장이라도 괴물이 우리 집을 덮칠 듯한 불안함이 몰려오고 천재지변이 일어나기 전 징조를 이 세상에 나만 느끼는 듯한 긴장감이 들었다. 심장은 터질 듯이 뛰고 평소엔 잘 들리지도 않던 시계 초침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건전지를 빼버렸다. 시계 소리가 들리지 않자 주변은 너무 고요했고 방 안에서 내 심장이 가장 크게 소리 내고 있었다


본가에 내려와 가족들과 내 이런 상태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이런 걸로 힘들어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엄마는 내게 생활패턴을 맞추면 괜찮아질 거란 접시물에서 빠져나오는 법을 알려주었다.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이 오고 불면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는 악순환은 내가 제일 느끼고 싶지 않다. 하지만 걱정하는 엄마의 말이 길어지면 내가 지쳐버릴까 걱정되어 납득하는 척하며 흘렸다. 오히려 나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할 것 같으면 정신병원에 가보라고 하는 아빠의 말이 더 위로가 되는 듯했다. 이 방법을 나도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사람들 앞에서 내 속을 전부 드러내고 싶지 않다. 나의 터질듯하지만 심하게 물렁하고 부드럽지만 뾰족한 속이 누군가에겐 비웃음거리가 될 테고 누군가에겐 약점으로 보일 테고 누군가에겐 멀어지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이유는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은 나를 더 깊게 알게 되어도 혹여나 이 글이 나와 멀어지는 계기가 되어도 조용히 수긍할 수 있을 만큼 솔직해지고 싶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