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과 Male Gaze

by 김도넛

내가 male gaze(이하 ‘남성적 응시’)라는 단어를 처음 배운 것은 현대 미술 수업시간에서 였다.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의 조각 [응시(1966)]는 삼베에 라텍스를 덮은 조형물로, 여성의 성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벌어진 상처처럼 보이기도 하며 동시에 사물을 응시하는 눈으로 보이기도 한다.

부르주아.jpg 루이스 부르주아, 응시(Le Regard), 1966

부르주아는 여성을 향한 남성적 응시를 지적하며 사회의 권력자인 남성이 여성을 어떻게 시선으로 압도하고 통제하는 지를 말한다. 여성에게 쏟아지는 시선은 행동을 통제하고 겉모습을 지적하며 여성답지 못한 것을 여성답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여성의 신체를 노골적으로 훑어보는 남성의 시선, 이것은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육체 그 자체, 자신의 성욕을 발산할 도구로 상정하기 때문에 발생하며 명백히 권력에 의한 폭력이다. 한국에서는 몇 년 전 ‘시선강간’으로 이름 붙여진 바 있다.


많은 관객들이 눈치 챘을 상승-하강의 대비는 <기생충>의 이미지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는 지상과 지하라는 두 개의 세계를 분리시키고 지하의 사람들이 지상으로 올라가고 싶어하는 상승에의 욕구를 설명하는데, 집주인 부부가 캠핑으로 집을 비운 때 기택의 가족들이 거실을 점령하는 것, 집주인이 부재 상태일 때 가정부 부부가 마당을 바라보며 춤을 추는 것으로 설명된다. 상승을 꿈꾸는 기우는 아름다운 집에서 물이 넘친 반지하 방으로, 한남동 저택에서 월세촌 반지하 방으로 낙하한 날, 돌을 품에 안으며 말한다. 돌이 내게 달라붙는다고. 상승을 꿈꿨지만 소시민에게서 태어난 그에게는 날개가 없다. 짐이 있을 뿐이다. ‘어디가?’라고 묻는 다혜에게 밑에. 더 밑에. 라는 대답은 그가 처음 온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더 깊고 절망적인 어떤 곳으로 떠나야 한다는 메타포다. 또 한가지 재미있었던 대사는 기우가 ‘이 집이 우리 게 된다면 너는 어느 방에 살고싶냐’라는 질문에 기정이 ‘살게나 해주고 물어봐’라며 확실한 답을 하지 않는 부분이다. 기정의 죽음은 예정되어 있었으며, 이 집에 그녀에게 허락된 공간은 없을 것임을 암시한다.


위의 몇 가지 지점들을 제외하고도 오락적이고 재미있는 요소들은 많았지만, 이 영화에서 나를 불편하게 한 것은 두 조연 여성을 그리는 감독의 시선이다. 여기서 말하는 두 조연이란 다혜와 기정인데, 이 두 여성의 공통점은 미혼이고 어리다는 것. 그리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기우가 친구 민혁에게서 과외 자리를 소개받으며 영화는 시작된다. 이 때 민혁이 하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그는 과외 학생(겨우 고 2다!)을 진지하게 좋아한다며, ‘내후년에 대학 들어가면 정식으로 사귀자고 할거야.’라고 말한다. 그리고 또 이런 말을 덧붙인다. ‘그 순진한 애 주변에 공대생 그 늑대같은 놈들이 어슬렁거리는 꼴 못봐. 너라면 믿고 떠날 수 있지.’ 기우가 두 번째로 과외를 하는 씬에서 둘은 키스한다. 기우가 민혁에게 과외자리를 물려받은 것처럼, 전리품인 여자아이도 물려받는 것이다. 감독은 다혜가 ‘왜’ 민혁을 좋아했으며 ‘왜’ 또 기우를 좋아하게 되었는 지 설명은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듯 하다. 다혜에게서 중요한 장치는 그가 집주인 부부의 딸이라는 것, 기우의 가족들이 주인 부부에게서 호감을 얻고 있다는 것 뿐이다. 다혜는 기우와 유사연애 관계를 유지하며 극에서 성인처럼 사용되다가도 엄마에게 라면을 먹겠냐고 왜 나한테 물어보지 않았냐고 어린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는 등 들쭉날쭉하게 묘사된다. 이 인물은 영화의 서사에 이용되기 위해 철저히 계산 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혜가 기우의 동생인 기정(제시카)를 처음 본 날 기우에게 ‘관심있죠? 예쁘던데’라고 묻는 데, 이것은 자신에게 씌워졌던 남성적 시선을 그대로 다른 이에게 투사하는 것을 보여준다. 다혜에게 기정은 새로 온 미술선생님, 혹은 고용인이 아니라 “여자”, 그것도 “젊고 예쁜 여자”일 뿐이다. 필자는 이부분이 특히 안타깝다. 남성 위주의 세상에 살다 보면 가끔 어떤 것들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피해자의 뇌에 새겨진다.

다헤.jpg 제시카(기정)을 훔쳐보는 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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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정2.jpg
왼쪽 : 지하에서의 기정/오른쪽 : 지상에서의 기정

또 다른 여성, 기정이 영화 내내 입는 옷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지하에서 입는 운동복, 지상에서 입는 무채색의 정장. 처음으로 연교를 만나러 갈 때 그는 검은 자켓과 역시 검은색의 긴 치마를 입는데, 이는 목 늘어난 티셔츠와 대비되는 신분상승에의 욕망을 보여준다. 연교의 집에서 기정의 역할은 프로페셔널하고 카리스마 있는, 가문과 실력을 겸비한 상류층의 일원이기 때문에 그녀는 탈피를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길 소망한다.

그런데 다송의 생일파티 날 기정이 입은 분홍색 원피스는 그녀의 지하 세계에 속한 것도, 지상 세계에 속한 것도 아니다. 파티라서 그렇게 입었을 거라고? 파티 전 날 밤, 기우와 기정은 침수된 집에서 체육관에 마련된 임시 거처로 옮겨 잠을 잤고, 당일 아침에 파티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기우가 첫 시퀀스부터 입고 있던 지하에서의 평상복, 청색 셔츠를 입고 파티에 간 것과는 분명히 대비되는 지점이다(여기서부터 기우에게 지상 세계와 지하 세계는 완전히 분리되지 않고 혼재하기 시작하지만, 기정은 혼자 붕 떠있다). 필자는 기정이 그 전까지는 보여주지 않았던 얇은 소재의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것은 그녀가 ‘희생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연교 부부의 집에 기생하던 기생충이 지상으로 나온 소동에서 그의 손에 죽는 것은 기정 하나다. 분홍색 옷은 기정의 지상에서의 삶, 지하에서의 삶 어떤 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그를 ‘희생자’, ‘연약한 여성’의 자리에 머물게 한다. 이는 후반부까지 쌓아온 기정의 캐릭터성을 해치는 설정이며 결국 ‘여배우는 꽃’이라는, 이미 여러번 담론화 된 주제에서 이 영화 또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는 씁쓸함을 낳는다.

기생츠ㅜㅇ.jpg


포스터 속 왼쪽 하단의 다리가 누구의 것이냐에 대한 여러 주장이 있지만,

필자는 응시의 대상이자 동시에 피해자인 기정의 것으로 추측한다.

이 또한 다리의 주인이 캐릭터 그 자체로 보이는 것이 아닌, 시체를 연상시키는 신체 일부만 등장한다는 것에

여성의 신체 대상화라는 반응이 있었다.


<기생충>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개봉하자 온 국민의 관심이 이 영화에 쏠렸다. 동시에 여성 혐오적인 맥락에서 이 영화를 해석하며 불매운동 또한 활발해 졌다. 필자는 영화를 보고 나서 반복해서 생각난 ‘왜 남성 감독의 영화는 남성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하는 가?’ ‘왜 나 자신은 이 영화를 불편하다고 느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글을 써 보고자 했다. 어떤 식으로 이 영화를 해석하고, 응원하고, 비판하던 그것은 관객의 몫이다. <기생충>의 메인 포스터에서 자력으로 서 있는 여성이 없다는 것은 심히 노골적인 상징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감시하고, 검열하고, 끊임없이 불편한 것은 불편하다고 말해야 한다. 다리만 남은 여성이 있다면 잃어버린 정신을 찾아 주고, 그가 자신의 두 발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해야한다.


Ⓒ김도넛(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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