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무과 직원의 선택적 동면과 내과 과장님 빙의 사건
결혼 초기, 우리 집의 수면 생태계는 아주 명확하게 양분되어 있었다. 나는 머리만 대면 1초 만에 기절하는 훌륭한 ‘잠만보’였고, 남편은 나보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부지런한 ‘에너자이저’였다. 수면의 양과 질 모두 내가 압도적으로 우위를 차지하던, 참으로 평화로운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3년 뒤, 첫째 아이가 태어나자 우리 집 수면 생태계에 대격변이 일어났다. 아이가 태어났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남편의 인체 시계가 신생아로 퇴행해 버린 것이다.
육아의 세계에 발을 들이면 누구나 만성 피로에 시달린다지만, 남편의 증상은 학계에 보고해야 할 수준이었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눕기만 하면 ‘레드썬!’ 깊은 숙면에 빠져들었다. 새벽마다 아이가 앙앙 울며 사이렌을 울려대도, 남편의 고막에는 최첨단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라도 탑재된 것인지 미동조차 없었다.
병원 밥 먹은 지 어언 10년 차, 초음파검사로 숱한 환자들을 만나며 단련된 내 강철 체력도 매일 밤 이어지는 강제 철야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밤중 수유와 기저귀 교체는 오롯이 깨어있는 자, 즉 나의 몫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남편이 퇴근해오면 단 30분만이라도 자서 팬더에서 사람으로 환생해야겠다맘먹고 있던 참이었다. 천진난만한 남편이 아주 진지하고도 부러움이 가득 찬 얼굴로 운을 뗐다.
"현미야. 우리 병원 내과 박과장님댁 말이야. 거기는 애기가 태어나니까, 사모님이 과장님 잠 못 주무실까 봐 아예 다른 방 가서 편하게 자라고 하셨대. 대단하지 않아?"
그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아니, 밤중 수유를 거들어주기는커녕 애 우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지금 저런 밑밥을 깐단 말인가? 어이가 가출을 하다 못해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속에서 천불이 났지만, 나는 침착하게 그의 직무 기술서를 머릿속으로 읊어보았다.
'아니, 내과 과장님이야 다음 날 환자들 생사를 오가는 진료를 보셔야 하니까 그렇다 치고. 자기는 원무과 행정 직원이잖아! 뭐, 밤새 영수증이 숨 넘어갈까 봐 철야로 바이탈 사인이라도 체크해야 돼? 가계부 붙들고 심폐소생술 하실 일 있냐고!'
차오르는 분노를 꾹 누르고, 나는 그저 허탈하게 웃어버리기로 했다. 그래, 매일같이 쏟아지는 영수증의 생명을 다루는(?) 고된 업무를 하시느라 저리 피곤하신 게지. 내과 과장님의 청진기와 당신의 엑셀 마우스 클릭이 동급의 무게를 가진다니, 그 투철한 직업의식 하나만큼은 높이 사주마.
더 기가 막힌 것은 인체의 신비다. 그 극한의 육아 시기를 지나 아이들이 어느덧 초등학교 1학년, 3학년이 되고 나니, 남편의 수면 시간이 귀신같이 다시 줄어들었다. 애들 손이 가장 많이 가고 육아가 극한 직업이던 그 시절, 남편의 몸은 생존을 위해 스스로 '선택적 동면'에 들어갔던 게 분명하다. 생물학적 본능 앞에 진화해 버린 이 남자의 생존 전략을 어찌 탓하랴.
이 어이없는 깨달음 앞에서 나는 화내는 것을 포기했다. 기대감을 바닥까지 낮추니 분노할 일도 사라졌다. 얄밉지만 어딘지 모르게 투명한 이 남자의 만행을 관찰하며, 나는 오늘도 혼자 큭큭 웃는 걸 선택했다. 우리의 결혼 생활은 결국, 화내기를 포기하고 웃기를 선택한 자가 승리하는 한 편의 엉뚱한 시트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