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뼈가 부서져도 깰 수 없는 낮잠의 세계: "얼음팩 큰 것밖에 없는데..
우리 집 안방 침대에는 아주 강력한 중력장이 흐른다. 한번 누우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마의 구간. 특히 주말 대낮이 되면 남편은 그 중력장에 완벽하게 포획되어 노곤노곤한 낮잠의 세계를 유영하곤 했다.
반면, 에버랜드 판다 월드의 푸바오와 눈 밑 다크서클 지분을 놓고 치열하게 종단합을 다투던 나는, 쉴 틈 없이 아이와 육아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첫째 아이가 두세 살쯤 되어 한창 비글처럼 에너지가 폭발하던 평화로운 어느 주말 낮이었다.
비극은 늘 예고 없이 순식간에 찾아온다. 신나게 방방 뛰며 날아오르던 아이의 단단한 머리통과 내 턱이 공중에서 정면충돌하고 말았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별이 번쩍였다. 다행히 가해자(?)인 아이는 멀쩡해 보였지만, 피해자인 나는 턱이 산산조각 난 것 같은 엄청난 고통에 바닥을 뒹굴었다. 턱이 얼얼하다 못해 감각이 없어졌고, 억울하고 아픈 마음에 입 밖으로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끅끅대며 굵은 눈물만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나의 생존 본능은 누워있는 유일한 성인 보호자를 향했다. 병원 초음파실에서 수많은 환자의 케이스를 보며 다져진 내 임상 경험상, 이것은 무조건 1초라도 빨리 냉찜질을 해야만 하는 각이었다. 나는 턱을 부여잡고 남편다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침대와 한 몸이 되어있는 남편을 향해 모기장만 한 목소리로 다급한 구조 요청을 보냈다.
"오빠.. 나 방금 솔이랑 턱 세게 부딪혔어... 냉동실에서 얼음팩 좀..."
그런데 내 간절한 구조 신호를 수신한 남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내 턱의 통증마저 일순간 잊게 만들 만큼 충격적이었다. 남편은 감긴 눈을 반쯤 겨우 뜨더니, 침대 껌딱지 모드를 굳건히 유지한 채 세상 귀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쩌지... 우리 집에 얼음팩 큰 것밖에 없는데..."
순간 내 뇌로 가는 혈류가 멈추는 기분이었다. 아니, 얼음팩이 크면 턱에 못 대나? 턱에 대기엔 규격 초과라서 불법이라도 된단 말인가? 원무과 행정직원 아니랄까 봐, 집구석에서도 비품 규격이 안 맞으면 불출이 안 되는 시스템인가?
어떻게든 저 따뜻한 이불 밖으로 단 한 발짝도 나오고 싶지 않다는 그 투명하고도 얄팍한 의지가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마누라의 턱뼈에 금이 가는 것보다, 본인의 노곤한 낮잠 리듬이 깨지는 것이 그에게는 훨씬 더 끔찍한 재난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날, '규격 초과'를 이유로 남편의 승인을 받지 못해 얼음팩을 배급받지 못한 나의 턱에는, 볼을 타고 입술까지 이어지는 아주 웅장하고 시퍼런 멍이 활짝 피어올랐다. 거울을 볼 때마다 멍든 턱이 욱신거렸지만, 한편으로는 안방의 그 강력한 중력장을 이기지 못해 지어낸 변명이 고작 "큰 것밖에 없는데"였다는 사실이 떠올라 자꾸만 픽픽 새는 헛웃음이 났다.
그래, 내가 졌다. 분노를 터뜨리기엔 남편의 핑계가 너무 하찮고 창의적이라 화낼 기력조차 상실해버렸다. 이토록 엉뚱하고 게으른 남자와 한 지붕 아래서 살아가려면, 내 턱에 얼음팩을 대는 대신 마음에 유머라는 맷집을 두껍게 두르는 수밖에 없다. 오늘도 우리 집 안방의 중력장은 평화롭게 작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