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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탈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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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Apr 04. 2024

탈건축 <脫建築>

By ACOOP



2월 비가 오고 스산한 날씨에 전통이 깊은 선화예술중학교 앞에서 김지인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이례적으로 미술을 전공하고 건축으로 전공을 바꾸게 되어 실무를 합니다. 그러다 결국 다시 미술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여정을 통해 ‘탈건인’으로 삶을 살아가는 그 경로와 결정의 배경이 무척이나 궁금하여 인터뷰를 요청하였습니다.


INTERVIEW 002


선화예술중학교 김지인 선생


김지인 선생님과 근처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ACOOP


Q: 미술을 전공하셨습니다. 어쩌다 건축으로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그러니까 제가 미리 받은 질문지를 받고 이 부분에 대해 되게 진지하게 생각을 해봤어요.
 저희 부모님께서 전시회를 좋아하셔서 저를 자주 데리고 다니셨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 ‘안토니오 가우디(Antonio Gaudi)’ 전시회를 보게 되었죠. 처음에는 건물이 너무 특이하고, ‘이런 게 건축이구나!’라고 생각을 했어요. 한 번에 꽂혀서 그 건축가에 대해 찾아보고 멋있고 재미있는 분야구나라고만 생각을 했고, 그때 당시에는 진지하게 고민을 하지는 않았어요. 딱 거기까지였어요.

서양화를 전공하려고 대학에 들어갔지만, 또 막 재미있고, 열정이 불타오르고 하지도 않더라고요. 그래서 대학 때, 저희 목표는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건 몽땅 배우자. 나가서 못 배우는 건 다 배우고 졸업하자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것저것 많이 기웃거렸던 거 같아요. 그러다가 문득 고등학교 시절 봤던 ‘안토니오 가우디(Antonio Gaudi)’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으로 건축과에 가서 건축사 수업을 들었어요.  근데 들어보니까 꽤 괜찮은 수업이었죠. 그래서 건축 이론도 듣고, 건축 이론을 들으니까 또 그것도 괜찮은 느낌이었죠. 그리고 그때 서양 건축사는 나이 드신 교수님들이 엄청 점잖게 말씀하시잖아요. 그래서 뭔가 미대 교수님들에게 죄송하지만 ‘건축과 교수님들은 학자 같다.’라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니까 그럴 수 있죠. (웃음)

미대에 갔을 때, 솔직히 뭘 막 가르쳐 주지 않고, 스스로 찾아내고, 서로 토론하고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러면서 서로 건강한 크리틱(Critic)을 하는 느낌으로 가야 되는데, 그때 당시엔 결국 뭔가 사제가 강한 느낌이 더 크게 느껴졌어요. 그러다 건축과 수업을 들으니까 뭔가 지식이 쌓이는 느낌과 함께 저에게는 굉장히 신선한 울림이 있었죠.

제가 이론을 좋아해서 서양미술사도 엄청 좋아했고 철학과 수업도 쫓아다니면서 들었었죠.
 그렇게 의식의 흐름대로 살다가, 이제 뭔가 내가 진정 원하는 전공을 제대로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서 건축과 편입을 알아봤죠. 한데 서울대는 편입이 안된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어요. 그래서 애매하게 또 시간을 보냈죠. 그렇다고 뭐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고, 워낙 이것저것 관심을 갖다 보니, 그 당시 교직을 이수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지냈어요.

제가 작가를 하기에는 너무 현실적인 인간인 거예요. 작가를 해서 밥을 벌어먹고 살 수 있나?라는 아주 중요하고 현실적인 고민을 그때가 되어서야 한 거죠. 제가 생각했을 때, 작업을 하지 않으면 살수 없는 사람들이 예술가가 되는 거더라고요. 그때 미술이라는 전공분야에 대한 괴리가 엄청 오기 시작했어요. 이런 고민과 함께 미대를 졸업을 했죠.

그러다 취업을 할 수 있는 전공을 다시 공부해야 하는 것은 틀림없다는 생각을 했고, 그 전공과목이 ’건축’으로 좁혀지더라고요. 그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건축을 해야 돼’라고요. 그래서 부모님께 말씀드리지도 않고 혼자 편입을 알아봤어요. 서울대학교는 동 학교의 학생만 편입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부랴부랴 서류를 준비해서 원서를 넣었어요.

그런데 그때도 진짜 제가 너무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뭔가 편입을 위한 공부를 했어야 하는데 뭘 해야 될지 모르고, 건축과 편입한 사람을 아는 이도 없고, 시험에 뭐가 나오는지도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냥 ‘탭스’라는 영어시험을 간신히 넘기고 그전에 들었던 건축과 수업에서 봤던 이론 책 그냥 읽어보고 갔는데, 거기서 시험문제가 나오더라고요. 마치 그 수업을 하셨던 교수님이 시험문제를 낸 것처럼 말이죠. (웃음) 그렇게 서울대 건축학과에 편입하게 되었어요.


김지인 선생님 AA SCHOOL 재학시절. 두번째열 왼쪽에서 5번째. ⓒ오승준


그러다 건축과가 갑자기 저도 모르게 5년제로 학제가 바뀌었어요! 그래서 뭔가 정신이 없었던 듯해요. 다행히 미리 들어 놓은 건축과 수업들이 있어서 무난히 넘어갈 수는 있었지만 건축과 설계 수업을 3학년인데 1학년 수업을 들어야 했고, 완전 멘붕이었어요. 근데 1학년 설계 수업에서 너무 좋은 김승회 교수님을 만났어요. 그뿐만 아니라 다른 교수님들도 저를 잘 봐주셔서 1학년 설계 수업을 재미있게 했어요. 그리고 그때 건축과 학생들 과도 재미있게 지냈어요. 교수님 따라 어린이 건축학교 가서 수업을 돕고, 워크숍 같은데도 따라다니고, 그때의 경험이 너무 좋았고 재미있었어요. 그렇게 하면서 건축과 1년을 보냈죠.

그때만 해도 현실에서 계속 다음 가능성을 모색하는 20대였어요. 그래서 건축과를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외에서 건축 공부를 해 보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막막한 거예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유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에 꽂혀서 학교가 만족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유학을 결정하게 되었어요. 그 당시 저를 아껴 주셨던 교수님들의 조언으로 영국에 ‘AA School’을 선택했죠. 외국인이랑 대화 한번 안 하고 살았는데, 유학을 가서 또 4년을 재미있게 다녔어요. 그렇게 한국에 나와서 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시작했어요.


 Q: 한국으로 돌아와 건축사무소 실무 경험은 어떠하셨나요?


처음에 실무 환경은 괜찮았어요.  제가 그림을 전공하고 건축을 해서 그런지, 현실적인 니즈를 맞춰서 만들어내거나, 어떠한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하는게 건축 실무인데, 그러다 보니 테크니컬 한 문제들이 난관이었죠. 실무적인 베이스가 있어야 하는데 사실은 그런 생각보다 저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 분명 학교에서 건축 실무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적인 부분을 배우기는 하지만 어쨌든 제가 원하는 컨셉 또는 아이디어를 부각시키기 위한 방법을 주로 배우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정말 실무에서 원하는 현실적인 고려를 배우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처음 실무에서 이러한 프로세스가 정확하게 작동이 안 된다고 해야 될까?


김지인 선생님 건축사사무소 근무사진 ⓒ오승준


Q: 근데 그 부분을 실무 경험에서 어렵지만 재미로 느끼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어떠셨어요?


저 같은 경우엔 현실적인 부분에서 시간이 좀 더 흐르다 보니, 이게 점점 더 괴리감이 더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처음에는 괴리감으로 생각 안 들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뒤로 갈수록 법규와 같은 현실적인 제한들이 힘들었어요. 제가 생각했던 교육에서의 건축과는 다른 현실을 조합하는 것이 쉽지 않았죠.

만약에 제가 그림을 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현실적인 공부를 했던 사람이라면 이런 제한적인 요소를 해결하는 부분에서 재미를 느꼈을지도 모르겠어요. 너무 자유로운 영혼으로의 예술가로서 만들어내는 것을 너무 익숙하게 생각해서인지 현실적인 실무에서 괴리감이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 같은 느낌. 내 작업과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조율하고 기술적으로 풀어내는 상황들이 쉽지 않다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그리고 실무를 할 때 제가 미술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소장님께서 매번 컬러를 정할 때마다 물으셨는데, 그 부분도 굉장히 애매하고 부담이 많이 됐어요. 제 과거의 경력으로 인해서 누군가가 나에게 그런 기대를 한다는 것도 무거운 짐이었죠. 저에겐 장점이 긴하지만 그로 인해서 나에게 엑스트라로 뭔가를 더 기대하게 하는 요소라는 걸 알게 되었죠. 뭔가 미술과 건축 사이 어딘가에 있는 느낌이었어요.


선화예술 중학교 김지인 선생님 업무실. ⓒACOOP


Q: 건축 분야를 떠나 교육이라는 분야로 전환한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건축을 떠나 지금의 분야로 오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는 실무를 하면서 제가 설계한 건물이 지어지는 단계를 직접 경험해 보지는 못했어요. 건축가로서 저의 포지션이 애매하게 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 제가 건강이 너무 심각하게 나빠져서 그때 고비가 왔죠. 그때 당시 사당동에 있는 LH에서 발주받은 도시생활주택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어요. 제 기억으로 약 5개월을 집에 거의 제대로 들어간 적이 없어요. 체력적으로 너무 말이 안 되는 사이클로 돌아가다 보니까 탈이 났어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아침 9시에 출근하면 퇴근시간이 저녁 10시였어요. 토요일에도 출근을 했고요. 그리고 그때도 일할 사람들은 늘 부족했어요. 다들 처음 맡은 각자의 프로젝트를 처리하느라 우왕좌왕한데, 그 해에만 공모전을 9개를 했으니까요. 그때는 그렇게 해야 되는 줄 알았어요.

아예 생각할 여지없이 완전히 제가 소비되는 느낌.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솔직히 할 만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건강에 신호가 왔고, 많이 심각한 상태였어요. 그때 당시 몸무게가 44Kg였어요. 정말 피골이 상접한 인간이었어요. 건강검진 결과를 받고 한 2-3일 고민을 하다가 소장님께 말씀을 드리고 퇴사를 했죠. 물론 소장님께서 저를 많이 신경 써 주시고 배려해 주셨어요. 제가 늦게 건축을 시작했고 커리어가 지금 이렇게 멈추는 것에 대해 많이 안타까워하시며,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고도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저에게는 그 말이 어떻게 들렸냐 면, 1번은 너의 건강이 너무 걱정되고 이해가 된다. 2번은 이 세계가 나를 소모하게 만드는 세계이다. 그런 생각이 정말 또 갑자기 번뜩 들었어요. 그래서 진짜 여기서 발을 더 넣으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아니면 발을 빼면 또 어떻게 되는 걸까? 이 고민이 막 시작됐는데, 제가 몸이 급속도로 쇠약하지는 걸 지켜본 부모님의 만류가 가장 크기도 했어요. 저의 행보에 어떤 의견을 내시는 분들이 아니 신데 처음으로 저에게 회사를 관두라 하셨고, 전 그때 이게 뭔가 진짜 내가 심각한 상태라고 느꼈어요. 그렇게 퇴사를 결심했죠.

그리고 다시 저희 건강과 더불어 앞날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죠.

그 후, 백수 생활을 한 6개월을 했어요. 벌어 놓은 돈은 금세 다 없어져가고 불안했죠. 마침 제 친구가 여기 선화 예술중학교에 실기 강사로 있었어요. 그 친구가 갑자기 “야 너 교직 있지?” 묻더라고요.
 “그 교직으로 지금 당장 어떻게 한 달 안에 이 학교 교사 채용 시험 준비 안되겠냐?라고 묻더라고요.

처음엔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죠. 임용고시가 아니라 예술중학교가 사립이라 별도로 지원을 받는다 더라고요. 교직만 있으면 지원자격이 있었던 거죠. 돈도 다 떨어져가고, 순간 막힌 도로에 봉착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친구가 운영하는 화실에 가서 그림을 하루에 4시간씩 그리고 미술 입시할 때처럼 열심히 준비했죠.         

그렇게 선생님 임용이 되었어요. 2014년에 첫 출근했으니까 10년이 된 거예요.

 

선화 예술중학교 전시 중 학생들 작업 ⓒACOOP


Q: 건축가였다가 미술 선생님의 위치로서 어떠신 가요?


저는 처음에 학교에 임용되고 나서 이렇게까지 오래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막상 수업을 하고 학교생활을 해보니 상당히 적성에 맞았어요. 대학 때부터 건축이론이나 서양미술사 같은 이론과목을 되게 좋아했어요. 그리는 행위도 좋아하고 잘할 수도 있지만, 뭔가 이론적인 부분을 배우고, 제가 배운 내용을 누군가에게 말해주거나 글로 정리하는 일들을 제가 편안하게 생각하고 있는 저를 그때 알게 되었어요.


Q: 굉장히 스페셜 한 선생님일 것 같아요. 건축을 경험하고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쳐 주는 거니까.

가르치는 학생들이 건축을 하고 싶다고 하면 어떤 가이드를 주시나요?


진로 과목에 ‘건축가’가 있어요. 한데 약간 애매하게 교과서 안의 제한된 카테고리에는 건축가가 순수미술에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아이들에게 정확히 이야기해 주죠. 건축설계는 디자인에 가깝다고요. 물론 건축분야에서 구조와 그 밖에 다른 분야들이 있지만, 저희 학교 아이들 특성상 건축설계에 관심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죠. 많은 제가 아는 부분에서 건축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고요. 아이들에게 건축에서 다루는 스케일 보는 법도 알려주고, 입체를 만들 때도, 또는 공간을 구축하는 드로잉을 할 때에도 건축적인 사고가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를 하죠.


선화 예술중학교 학생들 전시작품과 함께 ⓒACOOP


Q: 건축에서 다르게 지금의 영역에서 마주한 도전과 성취에 대해 공유해 주세요.


아이들이 자신들의 진로를 물어보잖아요. 미술 전공이 아닌 다른 분야를 하면 어떨까요?라고 물어보면, 그래도 제가 먼저 경험을 했잖아요. 그래서 학생들의 진로상담을 할 때 막연하게 얘기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제가 건축분야로 진로를 틀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냥 그림만 그려서 대학을 가고 작가가 되는 거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아이들에게 그림 안 그리고 다른 것을 해도 된다. 라는 제안을 해 줄 수 있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찾아 나가는 것을 도울 수 있는 조력자 같은 교육자로서 역할에 큰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Q: 가르치는 학생들이 미술이 아닌 다른 전공을 하고 싶다고 하면 어떤 가이드를 주시나요?


특히 예술중학교 아이들은 그림 못 그리면 큰일 나는 줄 알아요. 예술고등학교를 입학 하고, 좋은 미대를 가야 된다. 미대를 졸업하면 작가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코스를 생각해요. 학생들과 학부모 둘 다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하면 큰 실패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수순이 뭔가 꼭 그렇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제가 몸소 깨달았잖아요. 저를 예로 들면서 이야기해 줘요. “선생님 봐. 다른 거 해도 돼. 그러니까 그림 좀 잘 못 그렸다고 걱정할 필요 없어. 다른 거 해도 되고, 망해도 되고, 너희가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라고 말해줘요. 그래서 제가 이러한 부분을 얘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있고, 다른 하나는 이제 좀 더 그냥 미술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본다면, 건축이라는 조미료와 함께 좀 더 풍부하게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인생을 살아보니까 계속 그림만 그렸으면 다른 걸 하는 거에 대해서 되게 두려움이 많았을 것 같아요. 그림을 전공하고 건축 대학에 가서 실무까지 하다가 결국 미술학교 선생님을 해보니, 이렇게 왔다 갔다 해도 크게 변하는 것은 없고 그에 따른 경험이 반영이 된다는 것을 깨달으니 꼭 지금 하고 있는 무언가를 고집해야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난 것 같아요.


Q: 건축 분야에서의 경험이 지금의 학교에서 교육을 하는데 어떤 도움을 주나요?


미대의 경험만 있었다면 회화, 조각 분야에서만 학생들에게 예시로 알려줬을 것 같아요. 하지만 건축을 하면서 알게 되었던 건축가, 디자이너 등 여러 방면으로 시야가 넓어지고, 확장된 시각이 학생들에게 뭔가 새로운 것을 알려 줄 때 근거를 가지고 얘기해 줄 수 있다는 점이 많이 도움이 됩니다.

예술 중학교의 아이들은 지금 조형 언어를 배우는 정말 초기 단계의 입장이니까, 사물이나 풍경을 표현함에 있어서 예전 같으면 설명조차 안 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에게 주전자에 주둥이와 손잡이가 있는데, 주둥이와 손잡이가 일직선이 되어야 물을 따르는 게 편하겠지? 저도 모르게 각각의 사물들이 왜 이렇게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하죠. 생각보다 아이들은 왜? 이렇지라는 생각을 잘 하지 않죠. 하지만 이런 간단한 분석적 이야기를 듣고 나면 사물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지죠.

건축이라는 분야가 이성적으로 디자인한 이유를 타당(logical)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교육과 실무를 경험한 저로 써는 저도 모르게 이러한 부분을 아이들에게 많
 이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아요.


선화예술 중학교 학생들 전시작품 ⓒACOOP


Q: 학교에서 건축 교육을 결합해서 교육하는 것은 생각 안 해 보셨나요? 학생들에게 너무 좋은 수업일 것 같은데 말이죠.


사실 학생들이 공간적인 작업을 실제로 해요. 기본적으로 스케일 보는 방식을 가르쳐 주는 것도 이런 수업이 있어서 가르쳐 주게 되었어요. 그림 그리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공간을 이해하는 방식이 그냥 3차원이냐 2차원적이냐의 차이일 뿐이지 사고하는 방식은 다 비슷하죠. 건축은 아무래도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예술은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만들어 내야 하는 부분에서는 차이가 있긴 하죠. 프로세스적으로 결과물이 나오는 방식이 많이 다를 수 있지만 애초에 시작하는 부분은 별반 다르지 않아서 이미 건축교육과 결합해서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조소하는 친구들 보면 건축을 하면 참 잘하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냥 똑같이 잘 만들어내고 마감을 깔끔하게 하는 것뿐 만 아니라, 본인의 작업을 전시 설치 할 때 전시공간에 대한 고민이 필연적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서도호 작가도 건축가와 작업 많이 하더라고요. 에니쉬 카푸어(Anish Kapoor)도 그렇고요. 이런 작가들이 자신의 작업이 주어진 공간과 얼마나 잘 어울리고 자신의 컨셉을 공간을 통해 더 견고하게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처럼 요.


Q: 교육을 하면서 건축을 해서 안 좋은 점도 있나요?


교육 분야로 왔을 때 어려운 점은 반대로 건축 실무에서 예술적이고 아름답다는 것을 생각하기 이전에 저도 모르게 어떤 부분에서 현실적으로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 창의성보다는 타당성을 얘기할 때가 있죠. 지금은 어느 정도 밸런스를 잡고 있는 것 같지만, 처음엔 이러한 부분이 충돌되는 지점이었던 것 같네요. (웃음)


Q: 건축 실무를 경험하면서 건축환경에 있어서 구조적인 문제 같은 부분이 탈건을 하는데 영향을 줬을까요?


 솔직히 건축사무소에서의 실무를 했던 경험 중에 짧았지만 LH(한국토지주택공사) 또는 SH(서울 주택도시공사) 같은 기업들의 폭압. 그러니까 적나라하게 그 시스템이 뭔가 잘 못되었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로 인해, 한 개인을 소모하게 하는 상황.

그리고 어떤 프로젝트 경우, 클라이언트의 시간에 대한 압박과 동시에 너무 자주 바꾸는 상황. 이거 바꿔 달라, 저거 바꿔 달라 뭐 그런 거 있잖아요.

그리고 설계비요. 진짜 그게 말이 되는 예산인가? 나는 이 돈으로 나 월급 주고 협력업체에 외주비 나가고 그러면 뭐가 남지?라는 생각을 했었죠. 근본적인 질문은 이 설계비로 요구하는 수준이 말이 되나? 하는 생각이 컸어요.  그러니 회사도 적은 예산으로 실무자들에게 많은 양의 노동시간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 시기엔 진짜 악순환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심각하게 아픈 상황만 아니었다면 계속했을 것 같아요. 그냥 해야 되는 줄 알고… 가끔 후회라 기 보다 생각을 하죠. 그때 어떻게 든 버텼으면 또 어땠을까? 하고요.


Q: 혹시 다시 건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시나요?


 가끔 이렇게 건축 필드에서 일하시는 분들 보면, 끝까지 했다면 함께 하고 있었겠지라는 생각을 하다 가도 막상 제가 건축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제가 끝까지 가보지 못한 부분에 대한 아쉬움 같은 느낌은 있어요. 그렇다고 다시 예전과 같은 일 하는 환경으로 돌아간다고 하면 절대 할 수 없죠. 현실적으로 제가 교육계에 들어온 지 벌써 10년이 되었어요. 이젠 교육에서 전문가로 가는 길목에 있잖아요.


김지인 선생님 ⓒACOOP


Q: 건축을 전공하거나 실무를 하면서 현재 ‘탈건축’을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도전이요. 도전을 많이 해봤으면 좋겠어요. 건축설계라는 부분에서 할 만하다고 생각한다면, 한 우물을 파면서도 좀 다른 경험을 해보면 삶이 풍부해질 수 있어요. 저도 그림을 전공하면서 ‘그림으로 뭔가를 해내겠어!’라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옆길로 새서 제가 좋아하는 다른 분야를 접하게 되고, 결국 확장해 나갔으니까요.
 

선화 예술중학교에서 김지인 선생님 ⓒACOOP


김지인 선생님의 행보를 통해 ‘탈건’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는 미술과 건축을 융합하여 학생들에게 깊은 이해와 경험을 전달하는 교육전문가로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선생님이라는 직업 자체가 폭넓은 경험과 생각으로 학생들에게 깊이 있는 배움을 주는 직업이라고 한다면, 김지인 선생님은 지금까지의 과정을 통해 확장된 영역의 미술 선생님으로서 손색없는 경험을 겪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과 건축 그리고 미술교육으로 돌고 돌아온 그 과정이 미술과 건축을 통해 확장해온 그만의 교육 세계를 구축한 토양을 만들었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인터뷰: ACOOP_오승준, 이재원, 김자경
 

*선화 예술중학교: https://sunhwaarts.sen.ms.kr/index.do

*ACOOP: 건축을 기반으로 문화와 가치를 리서치하고 공유하는 건축협동조합

  https://www.acoop.kr/ind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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