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채소마켓 거래
은퇴 후 새로운 일을 찾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젊을 때야 이것저것 부딪혀 보며 적성도 찾고, 실패도 자산이 되겠지만 은퇴 이후의 일자리는 다르다.
시간은 줄고, 체력은 계산해야 하고,
무엇보다 되돌릴 여유가 없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래서 요즘 나는
“무슨 일을 할까?”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먼저 묻게 된다.
주말드라마에서 보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은퇴 후 동종 업계로 옮기려 했지만 끝내 기회가 닿지 않자 불철주야 공부해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따고 마침내 다시 현장에 서게 되는 이야기.
그건 드라마지만, 현실에서는 그만큼의 의지와 체력이 있는 사람조차 드물다.
그리하여 시골생활을 생각했다.
그냥 쉬엄쉬엄, 나무 가꾸고 흙 만지며 욕심 없이 살아도 괜찮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얼마의 기간 안에’,
‘얼마의 수익을 내도록 한다’는 계획이 서는 순간
그 삶은 더 이상 여유가 아니게 된다.
그때부터 모든 것이 일이 된다.
몸은 시간에 묶이고 마음은 계산에 묶인다.
욕심은 아주 자연스럽게 자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보면 어느새 일에 파묻혀 건강을 갉아먹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따라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요즘 채소마켓을 자주 들여다본다.
중고마켓이라는 연습장
필요한 도구가 올라왔는지 보기도 하지만
가끔은 생소한 도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게 있었구나’
눈이 번쩍 뜨이는 순간도 있다.
내게 필요하겠다고 생각한 도구들
전지가위, 장대 전동톱, 전동 분무기.
종류도 많고 가격 차이도 크다.
선뜻 사기에는 늘 주춤하게 된다.
사용해보지 않으면 정말 필요한지 알 수 없다는 걸
이 나이가 되어서야 다시 배운다.
그래서 볼 때마다 메모장에 조용히 적어둔다.
그러다 가격이 저렴하고 내게 유용하게 쓰일 것 같은 전지가위를 하나 보게 된다.
사진으로 보기에 튼튼해 보이고 설명도 그럴듯하다.
조심스럽게 채팅을 보낸다.
답은 바로 오지 않는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야 도착한다.
이것도 전략인가 싶다.
기다리다 보면
사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는 것 같기도 하다.
직접 만나 물건을 보니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인다. 받아 들고 돌아오는 길에 작은 나뭇가지를 잘라본다.
처음 한두 번은 괜찮다 싶더니 곧 가위날이 어긋난다. 그리고 중간에 있던 용수철이 튕기듯 날아가 어디론가 사라진다.
허탈하다.
이런 물건을 팔아도 되는 걸까.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달래 보지만
기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결국 댓글을 남긴다. 이런 불량품은 팔지 말라고.
그런데 하루 뒤
다시 마켓을 들여다보니 그 전지가위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대로 올라와 있다.
이 사람은 자기가 쓰던 물건을 파는 사람이 아니다.
생활형 판매자,
어쩌면 직업적으로 물건을 유통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나 말고도 또 누군가는 같은 일을 겪을 것 같다.
분노보다 먼저 드는 감정은 씁쓸함이다.
이렇게 작은 선택 하나에도 상처가 남는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지고
그래서 더 망설이게 된다.
은퇴 후의 삶은
새로운 출발이라기보다 역설적으로
불필요한 것을 하나씩 내려놓는 과정이라 말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