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상

62. 구수한 옥떨매

by 큰나무


한때 ‘옥떨매’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입에 오르내리던 시절이 있었다. 아주 못생긴 얼굴을 비유하던 표현이었다. 옥상에서 떨어진 메주가 어떤 모습일지, 뻔히 알면서도 우리는 웃고 넘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속엔 웃음보다 무심함이 더 많이 섞여 있었던 것 같다.


설 명절의 부산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어머니의 손은 다시 분주해진다. 메주콩을 삶아 메주를 만드는 일이다. 간장과 된장, 고추장을 낳는 시작, 한 해 밥상의 뿌리를 준비하는 일이다.


가을에 거둔 콩으로 겨울 메주를 쑤고, 아랫목 가장 따뜻한 자리에 올려 띄우던 풍경은 어느 집이나 오래된 연례행사였지만 집집마다 장맛은 조금씩 달랐다.


동네 친구 집에 놀러 가면 다른 메주 냄새가 코를 찔렀다. 구수하다기보다는 먼저 고개를 찌푸리게 만드는 냄새였고, 우리는 코를 막고 키득거리곤 했다.


이상하게도 우리 집 메주 냄새는 그리 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 집은 문틈이 넓어 냄새가 머물지 않고 금세 밖으로 빠져나간 듯 기억 속 우리 집 겨울은 덜 냄새났던 것 같다. 아마 자기 똥 냄새는 싫지 않다는 말처럼, 익숙함이 냄새마저 무디게 만들었을 것이다.


잘 띄워진 메주는 지푸라기로 곱게 묶여 마루 끝 양지바른 처마 밑에 매달린다. 바람과 햇볕을 맞으며 충분히 말린 뒤, 메주는 간장이 되고 된장이 되고 고추장이 된다.


그렇게 화려하게 변신한 장은 사계절 내내 우리의 입맛을 살려준다. 밥 한 그릇이 허전하지 않도록, 계절이 바뀌어도 식탁의 중심을 지켜준다.


어머니는 오늘도 그런 메주를 만드신다. 시중에서 사면 방부제가 들어가 맛이 다르다며, 여전히 손수 콩을 삶고 반듯하게 각을 잡는다. 언제까지 이렇게 하실 거냐고 우리는 묻지만, 속마음은 다르다.


올해도 어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다행이라는 마음과, 점점 느려지는 어머니의 움직임이 안쓰럽다는 마음이 함께 든다.


아버지는 안방에서 구부정하게 나오시며 '메주 만드는구먼' 무심한 한마디 하시고는 지나쳐 화장실 문을 연다.


옥상에서 떨어진 메주를 흉으로 삼아 웃던 시절은 지나갔지만, 아랫목에서 익어가던 메주의 시간은 베란다로 옮겨져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어머니의 손맛과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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