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아버지의 휴대폰
요즘 시대에 휴대폰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누구나 손에 휴대폰을 쥐고 생활하며, 어디를 가든지 들고 다닌다. 전화벨이 울리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열어보고, 문자가 왔는지, 카톡은 없는지, 새로운 뉴스나 유튜브 영상이 올라왔는지 확인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인간관계 속에서 전해지는 소식이다.
가족, 친구, 동료, 거래처 등 수많은 사람과 연결된 번호들은 평일 내내 바쁘게 울리지만, 주말이 되면 조용해진다. 마치 해방감을 느끼듯이.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 된다. 하지만 직장을 그만두거나 퇴직을 하게 되면, 그동안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연결되어 있던 끈들이 하나둘씩 끊어지고, 마침내 고요한 정적만이 남는다. 인간은 원래 홀로 존재하는 독립적인 존재라지만, 막상 그 고독을 마주하면 외롭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아버지의 휴대폰은 울리지 않는다.
한때 바쁘게 울리던 전화벨 소리는 사라졌고, 이제는 좀처럼 소리가 나지 않는 폰이 되었다. 생전에 자주 연락하시던 친구들은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 살아 계신 몇몇 분들도 요양원에 계시거나 귀가 어두워 통화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휴대폰을 울리는 번호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070으로 시작하는 광고 전화, 스팸 문자, 선거철마다 무작정 걸려오는 선거운동 전화. 그나마 울리는 전화들이라곤 그런 것들뿐이다. 그래도 아버지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혹시나 방전될까 봐 충전은 꼬박꼬박 하신다. 그리고 가끔, 아들의 번호에 손가락이 가는지 내 휴대폰 화면에 아버지의 전화번호가 뜬다. 얼른 전화를 받아보면, 한동안 조용하다가 마치 내가 먼저 건 것처럼 아버지가 받으신다. 목소리가 듣고 싶으셨던 걸까. 별일 없는지 물으시고는, 하고 싶은 말씀을 남기신다.
어머니 휴대폰으로 안부를 묻곤 했는데
오늘은 아버지의 휴대폰 벨소리를 울리게 해야겠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회와 연결해 주는 이 시대의 필수품. 팬데믹을 지나고 미래로 나아가는 지금, 더 나은 소통의 방식이 등장할지도 모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를 떠올리며 먼저 손을 내미는 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