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인자 얼마 못 살 것 같다.
지난달 본가에 갔을 때, 아버지는 불쑥 말씀하셨다.
“인자 오래 못 살 것 같다.”
넋두리처럼 흘려하신 말씀이었지만, 나는 크게 소리쳐 대답했다.
“아직 몇 년은 더 사실 수 있어요!”
잘 들리지 않으신다고 하셔서, 나는 화이트보드에 굵은 글씨로 써서 보여드리기도 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 다시 본가에 머무르는 동안, 아버지는 이번에는 하루에도 여러 번 같은 말씀을 되풀이하셨다.
“인자 얼마 못 살 것 같다.”
지난번에는 '오래 못 살 것 같다'에서 '얼마 못 살 것 같다'로 한단어가 바뀌었다.
말릴 수도, 위로할 수도 없었다.
예전보다 기운이 없고, 다리에 힘이 빠져 일어서기도 힘들다 하시니 나 역시 할 말을 잃었다.
노환 앞에서는 어떤 약도 무력하다.
소변조차 마음대로 조절이 되지 않을 때가 있어 화장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한 번씩 흘려버리신다. 앞으로의 생활이 더욱 힘들어질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그래도 옆에서 아버지를 지켜주시는 어머니가 계시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머니도 같은 연세에 힘이 많이 부치시는지, 예전보다 하소연이 잦아졌다. 어머니 역시 적지 않은 약을 드시며 몸을 추스르고 계신다.
본가에 갈 때마다 아내는 부모님이 드시기 좋은 연하고 부드러운 음식을 정성껏 준비해 간다. 머무는 동안에도 열기로 가득한 주방에서 삼시 세끼를 차리며 분주히 움직인다. 군말 없이 성심껏 봉양하는 아내의 모습에 늘 고맙고 미안하다.
본가를 떠나는 길은 언제나 발걸음이 무겁다.
지팡이를 짚고 문밖까지 나와 배웅하시는 어머니의 그늘진 표정 속엔, 늘 서운함과 아쉬움이 묻어난다.
예전에는 친구나 지인들의 부고를 접하면, ‘그럴 때가 되었구나’ 하고 조문을 다니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일이 머지않아 내게도 닥쳐올 큰일처럼 느껴진다.
이번에 머무는 동안 아버지는 유언처럼 반복적인 몇 가지 말씀을 남기셨다. 그리고는 마음이 놓이지 않으신 듯 나를 바라보며 물으셨다.
“나 죽으면, 어떻게 할래?”
나는 꾹 참으며 대답드렸다.
“아버지, 아무 걱정 마세요.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그 말이 위로가 되었을까.
아버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