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고향 외출
문밖출입이 어려우신 아버지를 볼 때마다 마음이 먹먹하다.
귀도 잘 들리지 않으셔서 전화 통화도 못 하고, TV의 짧은 자막에 의지해 세상 소식을 겨우 접하신다. 일어나기도 힘겹고 한 발 내딛기도 어려운데, 밤마다 소변 때문에 몇 번씩 오가시느라 잠도 깊이 주무시지 못한다. 찐 고구마를 먹고 답답해하는 것처럼, 문밖출입이 어려운 삶이 얼마나 답답하실까.
특히 화장실 문제를 곁에서 겪고 보니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그래서인지 아버지가 고향 집을 가보고 싶다는 얘기를 듣고,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바로 고향집에 가자고 했더니 아버지는 두말없이 채비를 하셨다. “언제 가보았는지 너무 오래됐다.” 그 말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누님이 갈 때마다 따라나서려고 했지만 고향집에 가면 할 일이 너무 많아 아버지를 돌볼 여유가 없어 날이 시원해지면 모시고 가겠다고 아버지 마음을 달랬단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오직 아버지만 모시고 다녀오기로 했다.
본가에서 승용차로 30분쯤 달리면 고향집에 닿을 수 있다. 그런데 아버지가 중간에 읍내 시장에 좀 들르자고 하셨다. 시장에 오늘 물고기가 나왔는지 궁금하시단다. 나왔다면 사 가고 싶다고.
차는 국도를 따라 한참을 달렸다. 도로 양옆 가로수에는 무궁화가 만발해 있었다. 흰색, 분홍색, 자주색… 다양한 색의 꽃들이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간다. 아버지가 “꽃 참 예쁘다”라고 하셨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봄의 벚꽃이 있다면, 늦여름의 벚꽃은 단연 무궁화꽃일 것이다. 8월 중순 무렵부터 9월 중순 무렵까지 한창 만발하는 이 꽃들이 도로를 물들이고 있었다.
아버지도 꽃을 보며 기뻐하실 줄 아는 분이구나, 새삼스레 느껴졌다.
읍내 시장에 도착해 물고기 가게 앞에 섰다. 그런데 물고기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갈까 하다, 정차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물어보니 어제 잡은 고기들을 손질해 냉동 보관 중이라고 했다.
깔끔하게 손질하여 포장된 크고 작은 물고기들 붕어, 동자개, 중치, 모래무지 등. 두 팩을 사서 아버지께 보여드리니 흐뭇한 미소가 번지셨다. 아마도 어릴 적 입맛이 생각나신 듯, 시래기 매운탕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아버지의 작은 목적 하나를 이뤘다.
예전 같으면 냇가에서 물고기를 수없이 잡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축사들이 들어서면서 냇가에서 물고기 구경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래도 우리 동네 앞 냇가에는 아직 피라미가 놀고 우렁이, 다슬기가 산다.
윗물이 멀리서 흘러 내려오며 어느 정도 정화되기 때문일 것이다.
고향 마을 앞 큰 은행나무 그늘 아래에 차를 세우니, 아버지의 시선이 들녘에 멈췄다. 파란 하늘엔 흰 뭉게구름이 굴뚝의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고개 숙인 벼들이 한창 영글어 가는 모습에 “올해는 풍년이겠다”라고 연거푸 말씀하신다.
고향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당엔 잡초가 아우성이다. 며칠 전 장대비를 맞고 무섭게 자라난 풀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우거져 있다. 아버지가 제초제를 뿌려야 할 텐데 걱정하시길래 “다음에 와서 할게요”라고 안심시켰다.
둑 옆 감나무에는 약을 못 주니 감이 다 떨어져 몇 개 남아 있지 않았지만, 대추나무에는 대추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땡볕 아래서 탱글탱글 영글어 가는 대추들을 보며 아버지는 추석 전에 따야 한다고 또 염려하신다.
그렇게 쓰러져 가는 고향의 빈집이라도 한 바퀴 둘러보며 아버지 마음에 안정과 평온이 찾아온 듯 보였다. 오늘만큼은 아버지의 그 미소를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