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모노

팬덤 있으신가요?

by 기틀

주의!

책소개 글이 아닙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상황이나 사건, 혹은 인물에 대한 소소한 훔치기입니다.


성해나 작가의 책 ‘혼모노’에 수록된 첫 단편 『길티 클럽 : 호랑이 만지기』의 등장인물 ‘김곤’이라는 유명 감독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에게 김곤 같은 존재가 있던가. 그에 버금가는 경외의 대상이 왜 내게 없었겠나. 그러나 과거와 비해 타인의 일상을 훔쳐보기가 너무 수월해진 요즘엔 누군가를 무조건 우상화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싶다. 우상화할 대상이야 많아도 그 감정을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깨달을 때가 종종 있지 않던가. 아주 하찮은 이유로 상대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아주 사소한 것들로 상대에게 실망하기도 하는데 이런 것들은 쉽디쉬운 시작에 반해 상처를 받는 다수가 발생하는 무거운 결말로 향한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 미술 담당인 총각 선생님을 담임으로 두었을 때가 생각난다. 입학식 대강당 앞에서 각 학년 담임 한 명 한 명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는데, 정확히 내가 속한 반의 담임이 호명되었을 때 나는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상에 올라 있던 여덟 명의 선생님 중 담임은 딱히 튀는 외모가 아니었다. 화려하다고 표현할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2학년, 3학년이 자리한 2층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고 그 함성은 그 후 다른 선생님이 호명될 때 간간이 들리는 박수 소리와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마른 데다 작기까지 한 체구와 얼굴의 반을 가리는 조영남식 커다란 뿔테 안경, 유행을 타지 않는 양복을 걸쳐 입은 담임의 무엇이 십 대 여학생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 학년 선생님을 통틀어 총각 선생님이라곤 담임 선생님과 체육 선생님 단 둘 뿐이었는데 이것 외엔 비현실적이다시피 한 팬덤의 이유를 설명할 방법을 모르겠다. 어쨌든 내 기준엔 삼 년을 오롯이 받칠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세상 제일 어려운 것이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랄까. 더욱이 어떤 행위에 따른 해석과 잡음이 따를 때 말이다. 팬덤은 무서운 속도로 빠져드는 것과 정비례하게 무서운 속도로도 빠져나간다. 얼핏 평범해 보였던 담임 선생님이 그저 유일하다시피 한 총각 선생님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팬덤이 형성되었던 것처럼 그가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마찬가지의 단순한 이유만으로도 사라지고 만다. 팬덤이란 게 그렇다. 물에 장난스레 빠트린 드라이아이스 같은 것. 그러나 또 마주할 잔인성이 있어야 현실답다고나 할까. 팬층의 붕괴라는 가장 큰 문제는 팬심에 덮어졌던 그에 대한 뒷담화가 장마철 습기 따라 자라나는 곰팡이처럼 끈덕지게도 달라붙는다는 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선생님을 따르고 좋아했던 무리에서부터 소문은 펼쳐지고 성장하고 기괴해졌다. 아코디언처럼 겹겹이 접어놓은 것들을 풀어헤치며 접힌 부분의 은밀함을 이제야 내놓겠다는 듯이. 처음엔 경계가 모호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다. 받아들이는 자에 따라 격려도 될 수 있고 추행이 될 수도 있는 그런 것. 사건 자체와 무관하게 해석이 바뀐 지금. 어느새 특별대우를 받는다는 자랑스러운 경험담을 풀어내던 대상에서 수치스럽고 더러운 추행의 대상이 되어 기어이 억울해지고야 만 애들이 차고 넘쳤다. 어떨 땐 누가 더 추행에 가까운지 타이틀을 거머쥐려는 것처럼도 보였다. 공부하고 있을 때마다 격려한답시고 다가와서 어깨를 주무르는 것 기분 나쁘지 않냐, 반팔 교복 소매 아래 여린 살을 꼬집기도 하는데 거긴 젖가슴과 살성이 가장 유사해서 저러는 거다. 분필 묻은 손으로 자꾸 귓불을 만지는데 민망해서 웃기라도 하면 내 미소가 사람 미치게 한다더라. 나에게만 해주는 특별한 추행이 아니라 듣고 있던 누군가가 “나도, 나도,”하며 합류할라치면 입을 삐죽거리는 게 딱 그랬다.

관심이건 추행이건 그 대상이 되지 못한 애들은 또 다른 장르의 이야기꾼이 되어 뒷담화 토너먼트에 합류했다. 자퇴한 여자애가 수업 마치고 담임이 관리하는 미술실에서 몰래 빠져나오는 모습을 어느 반 주번이 봤다더라.라는 식의 이야기꾼 말이다. 물론 본 사람이 누군지에 대한 정확하고 분명한 신상공개 요청은 늘 거부됐다. 그것이 뭐가 중요한데?라는 눈빛으로. 그렇다면 중요한 건 뭔데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그게 딱 내 역할이었다. 화자가 있으면 청자가 있어야 하고 너나 할 것 없이 주인공이 되고 싶은 이 상황에 오뎅 국물을 종이컵에 담아주는 포차 아줌마 1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야기는 그렇게 자잘한 역할들이 모여 리얼리티를 만드는 법이니까. 담임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는 없지만 그렇다고 평범하지 않나? 그의 어디가 그토록 매력적인가? 와 같은 반론은 혀 밑에 숨기고 지켜낸 역할만이, 나의 포지션만이 단단히 공구리 쳐둔 상태로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변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미술실에 걸려 있는 연필로 그린 소녀상은 지금은 졸업한 선배의 얼굴인데 둘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구체적인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세속적인 아침 드라마의 설정을 한 데 묶은 듯한 소문은 미풍에도 삽시간에 흩어지는 풀씨 같았다.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휘저었을 테지만 누군가에게 닿을 땐 뜨거운 눈물과 기침이 흘러나왔다. 고백하자면 그 소문의 중심엔 내가 있었다. 글짓기 대회 상을 휩쓸면서부터 반 애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이라거나 교회 오빠, 연합 동아리 동생, 학원 친구 등등을 소환하여 짝짓기를 부탁했다.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은 짧은 연애소설을 써달라 부탁한 것이다. 매점에서 인기리에 팔리는 몽쉘 통통-지금은 통통이 빠져 그때의 감성이 사라진-이나 땅콩버터 샌드위치, 츄파춥스 딸기 연유 맛 등을 대가로 받고 휘뚜루마뚜루 소설을 써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존재감이 남다른 의뢰인이 등장했다. 학년마다 있다는, 예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진의 길로 들어선 애가 부탁을 해왔다. 예뻤기 때문에. 꽃동네, 달동네 저리 가라 할 정도의 경사였음에도 지켜낸 매끈한 종아리 때문에. 그땐 없던, 볼륨 매직이라도 한 듯 찰랑거리던 머리카락 때문에. 기어코 동네 양아치 눈에 들어버렸다. 하교 후엔 학원 가는 봉고차를 타는 대신 오토바이를 탄다 했던가. 맞벌이하는 부모가 있는 친구 집에 몰래 술을 사 들고 들어가 잘게 부순 새우깡을 안주 삼아 먹는다 했던가. 찰랑거렸던 검은 머리칼은 어느새 붉고 건조하게 변했는데 탈색한 머리는 먹다 남은 맥주를 모아 들이부으면 나온다고 귀띔했다. 귀는 얼음으로 냉찜질한 후 라이터로 지진 바늘로 한 번에 힘주어 뚫었다고 했다. 몇 날 며칠 귀에서 진물이 흘러나와 베개를 적시는 통에 일어날 때 진물이 엉겨 붙어 베개도 딸려 올라오곤 했다며 걸걸 웃었다. 아이 엠 어 걸, 유아 어 보이. 예쁜이의 정체성을 알리는 걸걸거리는 웃음보단 그 애 앞니에 묻은 루주 자국이 신경 쓰였다. 반 박자 늦게 웃는 내게 본인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한다며 자기가 방금 한 말을 읊어보라는 치밀함을 보일 땐 조선의 국모 같았다.

예쁜이는 말의 시작과 중간, 끝마다 시파, 초파 등등의 감탄사를 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물론 짝다리 짚기, 침 뱉기와 같은 풀옵션 완비야 말해 뭐 하겠는가. 나는 그녀가 짝다리를 한 채로 시파, 쵸파 등의 본 적 없는 외계 생명체를 불러대며 가래가 섞인 아밀라아제를 내 얼굴에 뿌릴까 봐 무서웠다. 껌을 퉤 뱉더라도 절대 그 껌을 떼어내려고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면 안 된다는 것 알고 있으신가. 껌에 조각낸 면도칼이 숨어 있어 껌을 침으로 알고 손바닥으로 닦아내는 즉시 숨겨진 면도칼이 그대로 존재감을 뽐내며 얼굴에 세로 선이 선명하게 그어진다는 그 이야기를 아시는가. 일진 출신들이 자신의 아성을 위협할 정도의 예쁜이가 등장하면 그들의 패밀리로 엮으려는 시도를 먼저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포섭에 실패하면 처참하게 응징하는데 그 응징의 수법 중 하나가 면도칼이 숨겨진 껌이라 했다. 내게 의뢰한 예쁜이는 늘 껌을 씹었단 말이다.


지켜낼 외모야 없다 쳐도 맞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로맨스 소설을 써주었다. 물론 이름은 그 애와 같았으나 외모는 좀 더 순수한 듯한 소녀 이미지로. 그땐 여주인공은 죄다 백혈병을 앓았다. 그래야 눈부시게 하얀 피부와 여린 몸매와 부서지듯 희미한 미소를 띨 수 있었다. 동네에서 제일 좋은 2층 양옥집에 사는 여자아이인데 백혈병인데도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요양하며 머리칼도 허리까지 길게 길러 찰랑거리는, 아무튼 배설과 진배없는 글쓰기인데도 의뢰인은 까다롭게 빠꾸와 빠꾸의 연속이었다. 아, 시파, 초파를 절로 호명하게 되는구나. 츄파춥스 하나 건넨 적 없으면서 대하 장편 소설 급의 분량을 요구하는 데다 창작자의 자유를 말살하기까지 하는 예쁜이.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은 같은 학교 미술 선생님이라는 설정. 아픈 아이를 위해 그 아이만을 위한 그림을 그려준다는 설정. 연필로도 그리고 크레파스로도 그리고 수채화 물감으로도 그린다. 백혈병으로 학교도 못 오는 주제에 방과 후 용케 미술실을 잘도 드나드는 예쁜이. 미술 선생님은 학창 시절에 못다 한 데생 연습이라도 마저 하려는지 계속 그림만 그린다. 연애 경험이 가난한 내가, 고작 최수종, 최진실의 키스 신을 본 게 전부인 내가 그 이상의 로맨스를 끌어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시파, 초파를 암만 찾아봐라. 내게서 나올 게 있나. 그때마다 예쁜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의 경험담 중 심의 규정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들려주었다. 예쁜이가 원하는 대로 선생님은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리다가 여자애가 쓰러지고 나서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이 대목 뭔가 이상하지 않나. 선생님 혹시 사이코패스 콘셉트인가. 쓰러진 여자아이를 보고 우리 사랑을 나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 게 이거 정상 맞느냐고 묻고 싶었으나 예쁜이는 두 손을 모아 쥐고 빨리 진도를 뽑아야 한다며 재촉했다. 선생님은 이젤을 쓰러뜨리며 부리나케 여자에게 다가가 스케치북보다 가벼운 예쁜이를 안아 올린다. “여기서 죽으면 안 돼. 너와 함께 하고 싶은 게 아직 많은데 너에게 보여주고 싶은 세상이 이렇게나 많은데 아직 너를 좋아하고 있다는 말도 하지 못했는데.” 눈꺼풀을 파르르 떨어대며 가까스로 눈을 뜬 여자애가 “선생님 사랑해요. 처음부터 사랑해 왔어요.” 하며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선생님의 얼굴선을 따라 훑으면 선생님은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리며 여자애의 붉은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갠다. 선생님이 흘린 눈물이 닿아 짤 것이 분명한데도 달콤한 키스라고 마지막 문장을 완성하는 듯하다 ……. 마무리는 ‘말줄임표’가 최고다.

그런데 이 삼류 할리퀸 로맨스인지 할퀸 로맨스인지가 어느 순간 사실인 것처럼 각색되어 나돌았다. 글짓기 대회용 훈련이 쌓은 내공 덕에 미술실의 구석구석을 생동감 있게 묘사해서 예쁜이의 칭찬을 들었는데, 혹시 그것 때문에? 진짜 저곳이 바로 허락받지 못한 사랑의 장소였으며 여자애가 전학을 간 후 상실감에 빠진 선생님은 부모님이 억지로 짝지어준 참한 아가씨와 결혼을 한 거라는 등등의 군살 붙은 뒤룩뒤룩한 이야기가 되었다.


이론 중심의 수업보다는 자유로운 창작의 분위기를 이끌어주고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학급 토론 시간에는 미술실에서 떡볶이 파티를 해주는 등의 이벤트를 열던, 사실은 그러한 것들이 입시 중심의 학교생활에 작은 숨구멍이 되어 주었기에 그를 겪은 선배들은 열렬한 환호로 그의 존재를 인정해 왔던 거였다. 그러나 팬덤은 사라지고 이듬해 담당 과목을 소개하는 입학식에서 더는 우레와 같은 환호성을 받지 못했다. 초라한 퇴장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다섯 손가락 넘게 시간이 흘렀다. 성인이 된 우리는 스승의 날이 다가오자 우발적으로 선생님을 뵙고 오자는 의견이 오갔다. 단축 수업 때문일까. 운동장은 유독 조용했고 교무실은 텅 비다시피 했으며 근황이 궁금했던 선생님은 모두 자리에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술실로 방향을 바꾸었다. 우거진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입구를 가릴 정도로 외진 곳에 있던 미술실은 다행히 문이 열려 있었다. 다른 애들은 여전히 그를 싫어했다. 뜬소문이든 아니든 간에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는 법이 없다 했다. 각색도 100%는 없는 법이라며 그중 단 1%라도 그의 것이 분명한 사실이 있을 것이라며 떠났다. 나의 포지션만이 단단히 공구리 쳐둔 상태로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변하지 않았다.

선생님께 인사라도 드려야겠다고 아니 늦은 건 알지만, 이제 와 무슨 소용이냐 하겠지만 이제라도 사과를 드리고 불편했던 감정을 털어내야겠다고, 그게 맞는 거 같다고. 잠잠해질 기미 없이 무성했던 찌라시의 시초가 어쩌면 나였을 수도 있다고 말하자. 이제 말해야 한다고 되뇌며 축축해진 손바닥을 하늘하늘한 치마 위에 문질렀다.

다섯 손가락을 모두 구부리고도 남을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한 컷으로 증명하는 영화의 도입부처럼 선생님은 흰머리로 뒤덮인 덥수룩한 머리털을 하고 있었다. 담배를 얼마나 자주 피웠는지 짐작이 도는 검게 변한 입술은 또 어떻고. 나는 삐걱거리는 문을 밀치며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세요? 하며 주춤거리며 발을 내디뎠다. 책상에 앉아 서류 더미를 훑어보던 선생님이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추었다. 몇 초간 기억을 더듬는 듯한 시선 후 밀크커피로 누렇게 변한 치아를 모두 드러내며 아는 체를 해왔다. 어쩐 일이야, 선생님 보고 싶어 온 거야? 이제 아가씨 같구나. 길에서 보면 몰라보겠어. 담임은 성큼성큼 내게 다가와 나를 안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5월의 이른 더위는 블라우스 겨드랑이가 땀으로 촉촉해질 만큼 충분히 후텁지근했다. 담임은 내 어깨를 감싸며 나무 의자로 안내했다. 나의 승모근을 주물러주며 귓바퀴에 입술을 눌러대며 속삭이는 버릇도 여전했다. 그는 대학 생활이 어떠한지 물으며 조금씩 앞으로 전진해 왔다. 뿔테 안경 너머로 이글거리는 눈빛을 하고 겨드랑이 안쪽 가장 부드러운, 젖가슴과 가장 비슷한 살성이라는 그곳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젖가슴과 가장 비슷한 살성이라는 말을 내게 해준 사람은 담임이었다. 어디 한 번 그새 컸나 좀 볼까. 겨드랑이에 바짝 힘을 주고 붙이지 않으면 어느 때고 넘나들 수 있는 위치에 그의 손가락이 있었다. 묻고 싶은 말이 장마철에 쓸려가는 모래더미처럼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한데 뭉쳐 덮쳐오는 감정에 목구멍이 막혀 왔다. 묻고 싶었다. 그 1%의 사실에 대해서.

늙고 추레해진 담임의 덥수룩한 머리 뒤로 해를 받아 누렇게 변색되고 비를 맞아 우글거리는 소녀의 초상화가 압정에 눌린 한쪽 귀퉁이만 지탱하며 이따금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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