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가 나타났다.

스위트룸은 내가 접수하마.

by 기틀


로즈는 클렌징 오일을 얼굴에 바른 뒤 롤링하는 동작을 멈추었다.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은 걸까. 모공까지 적나라하게 비추는 거울을 들이는 게 아니었다. 피부가 팽팽했을 땐 화장대 거울로는 만족이 안 돼 얼굴이 확대되는 거울을 새로 들였다. 자칫 놓치기 쉬운 화장 끼임 현상이나 아이라인, 마스카라의 번짐을 체크 하기 좋았다. 지금은 되도록 거울을 벽면으로 향하게 둔 채 애써 무시하는 중이다. 코 옆으로 미세혈관이 좀비처럼 확장된 모양을 보다 콜라겐의 생성을 돕는다는 겔을 쭉 짜내어 입에 넣었다. 섭취하는 콜라겐이 진피층까지 닿을 리 없다며 한심스럽게 보는 남편에게 말하고 싶다. 심리적 안정감이라는 것도 있다고. 모든 것이 그렇게 필요에 의한 것들로만 가득할 수는 없다고 말이다.


셋 중 제일 예쁘다는 평을 듣는 사람은 로즈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선택한 남자의 외모는 가장 박색이었다. 그런데 결혼 시장이 외모만으로 모든 것을 뒤집을 수 있는 리그는 아니지 않던가.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을수록 로즈는 자신도 객관적으로 내세울 게 딱히 없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키 크고 몸매 늘씬한 거야 시간이 지나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그런데 남자 쪽에서 다른 건 다 빼고 키만 조건으로 내걸었다고 했다. 그걸 로즈의 이모가 엄마에게 바로 전달했던 모양이었다. 로즈 같은 신붓감을 찾는 남자가 선 시장 매물로 나왔으니 완판되기 전 선수를 쳐야 한다고. 그러면서 남자가 인물 좋아봤자 여자 마음고생이나 시키지 뭐가 좋냐는 말을 덧붙였는데 로즈의 엄마는 그 말까지는 로즈에게 전하지 않았다.


처음 그를 봤을 땐 자이로드롭을 탄 듯 자존감이 바닥으로 순식간에 곤두박질쳤다. 로즈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해산물 코너의 조개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언짢았다. 유통기한은 그저 인간이 임의로 정한 기준일 뿐인데 그 기준에 따라 이렇게까지 값어치가 추락할 일인가. 28년 365일째와 29년 1일째를 구분하는 모호함에 대해 논하고 싶지만 그게 무엇이든 간에 나이 먹어 예민하게 군다는 평가로 뭉뚱그릴 게 뻔했다. 그래도 명색이 학교 메인 홍보모델 활동을 했던 바로 그 로즈인데?

예쁜 여자에게 왜 남자들이 돈을 퍼붓는가. 그것에 대한 억울함을 성차별이라는 사회적 문제와 결부시켜 달려들 때 로즈는 여간 억울한 게 아니다. 그런 여자들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진짜 오산이기 때문이다. 로즈부터도 마찬가지였다. 진짜 돈을 엄청 쏟아부었다. 사람이 돈 드는 데가 눈코입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 시장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우리 이모가 그러더라. 내 몸이 중소기업의 가치라고 말이야. 단순히 돈만 들인 것도 아니야. 육체적 고통을 다 참아냈지, 부작용 올까 봐 마음 졸이지, 생착할 때까지 바깥출입 못 하지, 술, 담배는 입에도 못 대지, 그렇게 좋아하는 사우나도 못 가. 이게 한 번에 끝나는 건 줄 알아? 무한 반복이야. 관리는 끝이 없어. 그러니 이렇게 정성 들여 관리한 나를 날로 먹으려 하면 곤란하지, 안 그래?”


로즈는 어차피 남녀 관계는 죄다 동물의 왕국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늘 생각해왔다. 인기 있는 여자는 자기를 만나달라고 매달리는 수컷이 하나일 리 없잖은가. 어차피 일대일 대응이 아니라면 누군가는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본인의 능력 부족으로 도태된 걸 꼭 여자가 꽃뱀이네 뭐네 하며 깎아내리는 남자치고 풍족하고 능력 있는 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 가진 게 많은 남자라면 주는 것에 인색할 리 없고 받은 것에 감사하는 여자가 사랑스럽지 않을 리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자기가 선택됐어 봐. 누구나 다 탐내는 여왕벌을 자기가 쟁취했다며 어깨 뽕 장난 아닐 거면서 말이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깨서 마약성 진통제도 안 들을 때마다 로즈는 매번 이런 생각을 했다. 부위별로 가격을 책정해놔야 할까?


로즈의 남편은 그녀의 외모를 칭찬하지 않았다. 그녀의 외모나 몸매 모두 그냥 심드렁하게 대했다. 틀에 박힌 칭찬이 즐거울 리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 칭찬도 하지 않는 그를 보자니 이건 또 이것대로 열 받는 느낌이 들었다. 감히 네 따위가? 그래서 대놓고 물어봤다.

“키 큰 여자가 이상형이신가요? 결혼 상대에게 바라는 조건이 키 딸랑 하나라고 들었거든요.”

키 큰 여자가 이상형인 건 본인의 어머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자기는 딱히 이상형 이런 걸 정해놓은 적 없다고 했다. 자기에겐 그게 누구든 감지덕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듯이. 주제 파악을 잘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진짜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저렇게 말할 리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남편과 로즈가 호텔 수영장에서 휴가를 즐길 때였다. 로즈는 연예인만 전문으로 봐준다는 개인 헬스 코치에게 관리받은 몸매를 자랑하기 위해 야한 비키니를 골랐다. 그러나 여분의 원피스 수영복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남편과는 결혼을 전제로 교제 중이었기에 오늘 하루 자고 싶은 여자로 비치기보단 선을 지킬 줄 아는 여자라는 콘셉트가 적절할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로즈는 타인의 시선을 즐기고 싶었다. 그 충동을 결국 이기지 못해 원피스 대신 비키니를 골랐고 대신 가운을 걸쳐 입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호텔 수영장 선베드에 누워 가운을 언제 벗어도 될지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남편이 말했다.

“그 아름다운 몸을 왜 가운으로 가려요?”

“아, 너무 야한 것 같아서요.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 시선을 신경 쓰실 거 같아서.”

“아뇨, 그럴 리가요.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로즈 씨를 훔쳐본다 해도 그게 뭐 어때서요? 로즈 씨가 내 여자고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대요. 오늘 로즈 씨와 호텔 방으로 올라갈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저라는 사실이 더 흥분되기도 합니다. 아름다움도 재능이에요. 재력과 학력처럼 말이죠.”

로즈가 느낀 해방감은 그때가 최고조였다. 그녀는 마음껏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냈고 수컷들의 시선을 즐겼다. 가끔 자신과 남편을 번갈아 바라보며 의외의 조합이라는 시선을 느낄 때면 남편은 피식 웃으며 로즈에게 샴페인을 따라주거나 물기를 닦을 수건을 건네는 것으로 영역 표시를 굳건하게 했다. 이 세계의 사자는 식스팩과 태닝한 윤기 가득한 몸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는 듯이. 로즈 역시도 자신보다 키 작은 남자의 팔에 기대어 걸으며 요추가 휘는 불편함을 감수할만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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