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산으로
<어쩌다 산으로>
우연히 된 것 마냥 '어쩌다 순경'이라는 지은 제목은 거짓말이다. 초장부터 거짓말을 한 것은 미안하지만 미안한 만큼 더 정성을 쏟아 글을 써 내려가보도록 하겠다. 사실 난 아주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순경’이 되려고 했다. 아주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것치곤 사실 계획처럼 되는 건 정말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별 것 없는 이파리 2개의 순경일지도 모르지만, 아무것도 없던 고졸 24살의 청년에게는 군대의 투스타 일명 '사단장'만큼이나 크고 높은 벽처럼 느껴졌다. 필자의 수험 준비과정을 글로 풀어보라고 한다면 책 한 권을 따로 낼 수도 있지만 그런다면 아무도 이 글들을 읽어주지 않을 걸 알기에 최대한 간단명료하게 끝내도록 해보겠다. (늘 그랬듯이 교장님이 간단하게 하신다던 훈화말씀은 항상 길었다는 점을 명심하자)
시험을 준비하기 전 난 아버지의 구형 그렌져를 끌고 산의 모든 절을 들리기로 했다. 정말 대책 없는 시작이었지만 그랬어야만 했다. 학창 시절 '노는 게 제일 좋아'의 마스코트 뽀로로가 된 것 마냥 노는 것만 좋아했고 공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사실 경찰 지원 조건은 '고졸'만을 요구해 대학교를 가지 않기 위해 공부를 하지 않았다. (첫 챕터인데 벌써 두 번째 거짓말이다) 필수 과목이었던 영어의 알파벳, 한국사의 세종대왕 정도밖에 몰랐던 나를 아주 잘 알았기에 더욱 독해져야만 했다. 영어도 아무것도 몰라, 한국사도 아무것도 몰라 그 당시엔 대한민국 국적을 박탈해도 할 말이 없다. 영어도 몰라서 외국으로 귀화도 불가능했다. 다시 돌아가서 무작정 많은 절을 들렸지만 스님들이 단합한 듯이 이야기했다.
"옛날에는 그랬는데, 요즘은 공부하는 사람 따로 안 받아요"
"돈 드려도 안 되나요"
"네"
돈을 드린다고 해도 역시 스님들은 부정부패 하지 않았다. 그래도 미안하다며 블루베리 요구르트를 건네준 스님께는 감사합니다. 그렇게 해는 저물어갔고 어두워지려는 참에 어쩔 수 없이 구형 그랜져를 질질 끌고 마지막 절을 들렸다.
"혹시.. (중략) "
"들어와도 됩니다. 근데 주말마다 신자들이 오면 시끄러울 수가 있어서 옆에 이웃 분이 사는 집이 조용한데 거기는 어떠세요"
옆에 이웃 분은 공교롭게도 얼마 전 경찰을 명예퇴직 후 산으로 들어와서 살게 된 분이었다. 어쨌든 명예퇴직으로 민간인 신분이셨기 때문에 다행히 달마다 그분께 부정부패를 저지를 수 있었다. 그렇게 24살이 되던 해의 1월 12일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 첫 방영이 시작되었고 그 자연인의 눈물신이 꽤나 많기는 했지만 좋은 결과로 마무리 짓고 종영되었다. 종영 때까지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를 응원해 주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프로그램은 '어쩌다 순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