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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쟁이 Dec 05. 2021

워닝 레터

         늦은 밤 방구석에서 눈물을 훌쩍이며 장문의 이메일을 적고 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장 큰 장점은 감정에 휩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료, 상사. 팀원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는 상대방의 현재 감정 상대를 먼저 고려한다.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한테 말하는 건 시간낭비일 뿐이다. 


         세일즈 과장과 감정적인 소모전이 오고 가고 직원들 앞에서 높은 목소리로 언성이 높아졌다. 옛말 틀린 거 하나도 없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성악과 출신 세일즈 과장의 하이톤을 이길 재간이 없다. 왠지 진 것 같은 기분에 묘하게 억울하다.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애써 담담하게 자리를 벗어나 지하 사무실로 들어왔다. 회사에서 절대 울지 말자는 철칙을 지키고 싶었지만, 텅 빈 사무실로 들어오자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다시 진 거 같은 느낌이다. 


        해외에서 일하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이해가지 않는 것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중에 하나가 원칙 없이 직급에 의한 위계문화이다. 부서 불문하고 나보다 직급이 높으면 나는 예의를 갖춰야 하고 본인 말에 따라야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해외에서 일을 시작한 나에게 무서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이 최고조에 있을 때라 할 말은 다 하는 스타일이었지만, 쩌렁쩌렁 울리는 목청으로 고함을 지르기 시작하면 나는 이길 재간이 없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회사에서 다 쏟아붓지 못한 눈물이 2차로 흘러내렸다. 이번에는 나도 소리를 내어 엉엉 울었다. 왜 이렇게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말문이 막혀버리는 바람에 세련되게 맞받아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이었을까? 내가 아니라 더 경험이 많은 매니저였다면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하지 않았을까 하는 자격지심이었던 걸까? 일방적으로 당하는 모습에 무슨 말이 오고 가는지는도 제대로 흡수하고 있지 못한 모습이 제직원들 앞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수치심이 들었던 걸까?  

그 누구도 그날의 일에 대해서 나에게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 측은하게 만들었다. 


       복수하리라.. 세련되게 복수하리라…. 다짐했고, 장작 3시간의 훌쩍임을 뒤로하고 땡땡 부은 눈에 얼음을 쳐대고 그 울분을 토해내듯 있는 온 힘을 다해 ‘흥’하고 코를 풀었다. 마음가짐을 차분히 하고 노트북을 켠다. 수신은 인사부 부장. 육하원칙에 따라 내 감정은 과감하게 빼고 F.A.C.T 오직 사실만 입각하여 작성해 내려간다. 성악과 출신은 아니지만 문과 출신답게 쓸데없는 곳에서 재능을 뽐내기 시작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주의사항은 절대 감정적이고, 일방적인 기술을 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클라이맥스가 왔다. 그때의 내 감정과 지금의 마음가짐을 한 자 한 자 온 진심을 다해 서술해나갔고, 샌딩 버튼을 누르면 상황 종료. 이제는 인사의 몫이다. 이상하다. 이메일이 가다가 에러가 났나. 하루가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나는 점점 초초해진다. 1990년대도 아닌데 설마 내 의견이 묵살당하는 걸까. 상대방도 나에 대한 반격을 했나.. 그러다 이틀이 지나고 나서야 인사부장에게 회신이 왔다. 


        나에게 일어난 일에 유감의 뜻을 표하고 사건 진상 조사 후 타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크게 상처 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다시는 회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리더십 커미티 모두가 잘 관리하겠노라는 반성과 다짐의 언어. 인사 부장의 이메일이 조금의 위로가 되었고, 나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삿대질을 했던 세일즈 과장은 워닝 레터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럼 나는 이제 이긴 것일까? 승리의 축배를 들어야 하나? 동네방네 그날 그 자리에서 그 순간을 목도했던 사람들에게 그가 워닝 레터를 받았고 나를 찾아와 사과했다고 떠벌리고 다녀야 되나? 그의 사과 메시지 옆 프로필 사진에는 단란한 가족사진이 떠있다. 자식이  무려 셋이나 된다. 누군가의 아빠이자 누군가의 남편에게 내가 너무 가혹한  처분을 내렸나? 쓸데없는 연민에 취해 내가 취해야 하는 정답의 액션은 무엇인지 더 혼란스럽다. 내가 진정 원했던 게  워닝 레터였을까? 세 번의 워닝 레터로 회사에서 그를 쫓아내는 게 나의 궁극적인 목적이었나? 


나는 현명하게 일처리를 끝맺은 걸까? 


        그날 그 사건 이후로 회사에서 일하다 관계부서와 생기는 갈등들에 대해 내가 묻는 첫 번째 질문이 있다.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결과물은 무엇인가? 우리가 원하는 건 원만한 해결과 관계 개선. 좋은 결과물이지 피 터지게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내 의견이 다 맞아야 했고, 모두가 내편이 되어주길 원했던 혈기왕성했던 시절을 보내고 나서야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우리는 각자의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똑같은 월급쟁이 일 뿐인데, 왜 북한군을 만난 것 같은 적대감을 표출하며 그렇게 이겨 먹으려고 했는지…. 내가 받았던 상처만 기억하고, 내가 긁고 다녔던 타인의 생채기에 대해서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그들은 적이 아니고 나의 동료이다. 내가 힘들 때, 나에게 손 내밀어 줄 나의 동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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