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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유소 Sep 09. 2024

끝-시작

1

무언가의 끝은, 곧 다른 무언가의 시작이라는 말.

그걸 두 번의 이민을 통해 깨닫는다. 

서울 생활의 끝은 샌프란시스코 생활의 시작이었고,

샌프란시스코 생활의 끝은 파리 생활의 시작이겠지.


2024년 8월 23일, 샌프란시스코를 떠난다.

다시 말해,

8월 24일, 파리에 도착한다.


2

마법같은 시간들.


브런치를 시작한다고 친구에게 말하자 친구는 제목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리고 왜 "마법같은 시간들"이 제목이냐 물었다.


나는 이 말이 유래에 대해 설명했다. 별로 거창할 것은 없었다.


때는 2021년 초겨울 - 2월 무렵이었나. 깊은 코로나 속에서 허우적 대던 시기다.

샌프란시스코는 여전히 락다운으로, 필수 서비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가게가 영업 중지 상태를

이어가던 와중 이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아웃도어 다이닝 - 실내 말고 가게의 뒷뜰이라든가 주차장을 개조한

임시 앞뜰 (파클릿) 같은 실외장소에서 레스토랑 운영이 가능해졌다.

그 소식을 들은 나와 내 룸메이트이자 내 가장 친한 친구였던 Y는 평소 가고 싶어 했던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예약해 방문했다.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도중,

우리는 코로나 속에서 이어지고 있는 박사생활에 대해 회고했다.

Y는 나보다 1년 먼저 박사를 시작해서, 막 5년 차를 끝내려는 참이었는데,

그는 미국에서의 지난 시간들을 자기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5년"이라 했다.


3

박사생활은 고되다.

여러가지 이유에서 그러하다. 

 - 가시적인 성과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

 - 상사나 조직의 힘 없이 스스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는 점.

 - 박봉이라는 점. 

 - 특히 고학력에 박봉이라 주변인들과 비교된다는 점.

특히 유학생이라면 이런 박사생활이 다음과 같은 이유로 더 어렵다.

 - 언어장벽 극복해야한다는 점.

 -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고 네트워킹 해야한다는 점.

 - 가족/동창 등 자연스런 사회적인 서포트가 부재하다는 점.

 - 이민자로서 법적 신분이 불안정하다는 점.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박사생활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높은 자유도 때문이라고.

무슨 연구를 하고 싶은지 스스로 정할 수 있고,

언제 얼만큼 어떻게 일하고 싶은지 역시나,

스스로 정할 수 있고.

또 미국 특유의 개인주의에서 비롯되는 생활양식의 자유스러움.

내가 무얼 좋아하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어떻게 나를 표현하고 등에 있어,

한국이나, Y 가 속했던 일본에 비해 자유롭다는 점.

그런 부분들 때문에 행복할 수 있다고,

바다내음이 가득한 파스타를 오물거리며,

우리는 이야기 했다.

한탄으로 가득 찼을 수도 있는 타지에서의 유학생활을 반추하며,

한탄 대신 우리는 예찬을 선택했다.


4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변화무쌍한 안개는 

"마법"이라는 단어를 실감케 한다.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

시시각각 변하는 안개의 흐름, 그에 따라 바뀌는 빛의 농도와 색감.

구비구비 흐르는 능선으로 가득한 지형.

그 능선을 타고 내리는 안개.

바람이 안개를 몰면서, 해가 쨍 했다가도, 안개로 뒤덮히고,

안개를 뚫고 산 위로 올라가면, 안개 구름 사이로

해가 뜨고 지는 눈부신 모습이 펼쳐지는 지역.

태평양과 만 사이에 끼어 언제나 선선하고, 

비가 잘 오지 않아도 물안개 때문에 숲엔 나무들이 푸르른 곳.

그곳에서 박사를 하며

20대를 지나보내고,

30대를 맞이한 모든 시간들은,

실로 "마법" 같았다고. 슬픔과 기쁨, 역경과 환희가 어우러져

보낸 그 시간들을 매듭짓고,


다음의 시작으로.


5

파리에서 직업을 구했다는 소식을 주변에 알리자

친구들은 축하했다.

꿈꿔오던 교수라는 직업을 갖게 됐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파리라니!

많은 이들이 동경을 품고 있는 파리라는 도시.

신기하게도 나는 그런 동경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장소를 동경했던 적은 많다.

어려서 살았던 도쿄를 언제나 동경했고,

그 다음은 교환학생을 하며 살았던 뉴욕이 동경의 대상이었다.

유럽 여행을 했을 땐, 파리보단 런던이나 베를린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파리는 클리셰 같은 느낌이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해외 관광객을 받는 도시.

에펠탑, 크로와상, 샤넬, 실존주의, ... 파리와 연관된 낭만화된 심볼들이 

진부하게 느껴졌다.

박사를 시작할 땐,

심지어 구직시장에 뛰어들 때까지만 해도,

순진하고도 막연하게,

미국의, 큰 대도시 어딘가에서, 어떻게든 교수직을 잡을 수 있겠지,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막상 그 도전이 좌절되고,

내 손에 딱 하나의 오퍼가 남았을 때.

그 오퍼가 프랑스로의 이민을 뜻하는 것이었을 때.

나는 파리의 낭만에 대해선 생각하지 못했고,

태평양에 이어 대서양을 건너야 하는,

내 이주의 끝은 어디일까 하는 질문에

골몰했다.


6

어렸을 때엔 분명 유목민적 삶을 꿈꾸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착에 대한 욕구는 어느때보다 강해져 간다.

이민은 이번이 마지막이거나,

필요하다면 딱 한 번만 더 할 거라고.

그게 마지막이라고.

끝-시작 아니라,


끝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런 다짐을 했다.


끝이 주는 슬픔이 커지고 있고.

시작이 주는 설렘은 작아지고 있다.


아니, 설렘은 예전과 같은데,

커져버린 슬픔 때문에 압도 되어,

잘 안보이는 것일 수도.


이 셈법이,

참 잔인하다.


어젯밤도,

꽤 울었다.


이런 시작도, 언젠가 반추하며,

"파리에서의" 마법같은 시간들로 기억되길.


그렇게 선택할 수 있길.


7

그래서,

브런치 북의 제목이,


마법같은 시간들.

 - 샌프란시스코 편.

 - 파리 편.


이런 시리즈로 연재가 가능한 구조라고.

어디에 있든,

마법같은 시간으로 만드는 것은 나의 몫.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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