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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사이 Jan 15. 2024

오늘의 다짐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새벽녘

춥고 캄캄한 어둠 속으로 아이를 내보낸다.

그러고 나면 보내고 다시 따뜻한 이불속으로 들어가려던 계획은 늘 없던 일이 된다.

10분쯤 먼저 일어나 많지도 적지도 않은 양의 따뜻한 음식을 준비해 두면 아이는 한 그릇 또는 한 접시를 깨끗이 비우고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한다.

그사이 나는 열심히 핫팩을 흔들어댄다. 신발을 신고 있는 아이의 주머니에 쏙 넣어주고 대문밖까지 배웅을 한다.

“차조심해”

그렇게 말하면 아이는 씩 웃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힌다.

‘웃어줘서 고맙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무사히 도착하는가를 지켜보고 들어온다.

거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다음은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시간이 아이에게 주어진다. 이것은 순전히 엄마의 마음이고 기준이다.

걱정이 많은 나는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잠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몇 년 후면 서른이 되는 자식들이지만 내 마음은 처음 어린이집을 보낼 때처럼 한결같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몫이 점점 없어지는 것뿐이다. 몸은 덜 힘들고 마음은 더 무거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

춥지만 커튼을 젖히고 어둠을 바라본다. 서서히 시간이 흐르고 아이가 나가고 한 시간 여가 지나 동이 틀 때까지 기다리면 아마도 목적지에 도착했을 것이다.

아이는 그의 삶을 사는 것이고, 어둠 속 세상으로 나가 밝아오는 세상을 만나는 희망찬 일이겠지.

자식이 커갈수록 부모가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지는데 자칫하면 할 수 없는 일을 관여하려다가 오히려 자식의 마음을 닫게 만든다.

말을 줄이고 할 수 있는 일만 하고, 할 수 없는 것은 ’ 모른 척 참고 내버려 두자 ‘고 다짐하지만 종종 선을 넘는 실수를 반복한다.

새끼손가락에 반지를 끼면 자식이 하는 일이 순조롭다는 말을 들었다. 미신이나 과학적이지 않은 속설을 불신하는 편이지만 자식일의 앞에선 마음이 흔들린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마음을 더하는 일이니까라고 합리화를 하며 불을 켜고 오래된 반지를 찾아 새끼손가락에 끼운다.


모두 다 오늘도 무사히..



오늘의 다짐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고집을 버리고,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북극한파 속 손난로 같은 엄마가 되자.

출판사에서 받았다며 큰 아이가 가져다 놓은 글이 씌어있는 핫팩은 왠지 더 따뜻할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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