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것에 소원을 빌어요
외출도 여행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사람들의 사진은 예쁘게 찍어주는 편이지만 내 모습을 찍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길에서 누군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하면
“그사이 네가 찍어드려. 사진 잘 찍잖아” 그런 말을 듣곤 한다.
‘음, 사실은 당신이니까 잘 찍는 거예요.
좋아하니까요.‘
그런데 짧은 외출에도 카메라를 켜는 시작의 순간이 있다.
눈을 끄는 식물이 있을 때이다. 심지어 식물들이 바람에 흔들흔들거리면 동영상을 찍게 된다.
바람에 춤추는 그 초록잎,
들꽃이라고 믿기지 않는 그 고운 꽃,
낭창낭창한 그 가지의 흔들림,
둥실둥실 떠다니는 민들레 씨앗,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단풍나무의 씨앗..
식물들이 만들어내는 그 모습의 순간은 다시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아름다워 사진을 찍는다.
“이런 사진은 왜 간직해? 다 똑같은 건데 지워도 되는 사진들 아니야? “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항상 메모리 부족에 시달리는 나에게 남편은 USB를 건네주며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사계절 푸른 사철나무도 어제의 잎과 오늘의 잎이 다르니 내겐 똑같은 식물 사진은 하나도 없다.
아까워서 지울 수 없는 보고 또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보물들의 사진으로 앨범 안이 가득 차 있다.
비밀인데 작은 식물과 꽃을 더 가까이 잘 찍고 싶어서 접사렌즈를 살까 고민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생을 마감하는 별똥별에 소원을 빈다.
유성우가 떨어진다고 밤을 지새우며 그 순간을 기다리다가 소원을 비는 것은
흔치 않으며 다시 볼 수 없는 귀한 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흔치 않다고 더 소중하고, 흔하다고 해서 누군가에겐 한 번뿐일 그 순간이 소중하지 않은 것일까?
식물은 흔하디 흔한 모습으로 다시 볼 수 없는 한 번뿐인 순간을 지내고 있다.
한 번뿐 이라는 것은 얼마나 소중하며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순간일까?
그 소중한 순간에 소원을 빌어보자!
별똥별과 식물의 그 순간에 소원을 빌어 이루어지고 행복해지는 결과에 대한 통계를 내본 적은 없지만 식물이 우세할 것 같다.
싱그러워서 예뻐서 아련해서..
식물을 돌아보는 순간 소원을 빌기도 전에 우린 이미 마음이 행복해지니까 말이다.
눈 깜빡일사이면 놓칠 별을 기다리며
밤잠을 설치지 않아도 된다.
네 잎 클로버를 찾느라 애쓰지 않아도 된다.
눈만 돌리면 만날 수 있는 흔한 식물
마지막처럼 떨어져
끝이 되기도 시작이 되기도 하는
꽃잎과 초록잎, 씨앗
팔랑이는 흔한 것에 소원을 빌어보자
소중한 사진이 너무 많아 고르는데 무척 시간이 걸려 글의 순위가 뒤로 밀려 연재의 후반부로 정해졌다.
솔직하게 글을 쓰는 것보다 사진을 고르는 것이 더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
고르고 골라봐도 너무 많아서 이 글은 사진전이라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자, 그럼 이제 저의 보물사진전을 함께 보시죠 “
제주도
제주도는 참 신비롭다.
날씨와 경관, 바다 모든 것이 큰 땅덩어리에 붙은 반도와는 다르다.
섬에 어울리는 독특하고 이국적인 식물들을 만나는 것이 언제나 보물 찾기처럼 즐거워 나의 늦은 발걸음은 더 느려지고, 반짝반짝 내 눈은 호기심과 설렘으로 빛이 난다.
우리의 제주는 소중하고, 지켜야 할 아름다운 우리 땅이라 생각한다.
자연 그대로의 식물과 조경으로 심은 식물도 하나같이 신기하고 소중한 만큼 제주 식물의 사진이 많다.
제주도에서도 더 작은 섬으로 가는 것은 좋은 운이 따라줘야 가능하다.
나는 언젠가 청보리밭이 펼쳐진 가파도를 꼭 가보려 한다.
청보리의 사진을 찍을 접사렌즈와 충분한 메모리 공간을 많이 만들고서..
타이틀 사진에 대하여..
제주 산방산 근처에서 만난 송엽국이다.
이별한 책상 위 식물 중 하나였는데 화강암 틈 사이에서 야생으로 피어난 꽃이 건강하고, 예쁜 것을 보니 나와 이별했던 꽃인냥 참 반가웠다.
친구이자 세 자매가 된 우리는 제주여행에서 구슬반지를 하나씩 나눠 끼고, 송엽국꽃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우린 그 사진을 보며 늙은 손이 닭발 같지 않느냐며 우스개 소리를 했지만 그 사진을 마음속에 깊숙히 저장했다.
많은 사진 중 고민할 것 없이 타이틀이 된 것은 송엽국 꽃에 우리의 소원과 추억이 깃든 소중한 그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제주. 비자림 숲
비자나무의 열매인 비자가 넛맥(Nutmeg)이었다니 갑자기 숲에서 애플파이의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제주. 길가에 멈춤
유채꽃은 어디로 가서 봐야 하는 건가 고민 중 코너를 도니 저 멀리 우도가 보이며 펼쳐진 유채꽃밭.
다시는 못 갈 기억 안나는 위치다.
그리고 꼭 가보고 싶던 시인의 집.
“특별한 사정으로 휴무입니다”
물안개 낀 바다를 보고 앉아 책을 읽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제주. 테라로사
언제나 가고 싶은 제주 테라로사의 정원.
세 번을 모두 다른 사람과 갔다. 단지 다른 계절 탓만은 아닌 것 같은 모두 다른 느낌의 정원이었다.
제주. 사려니 숲
시월의 마지막 날
하늘까지 쭉쭉 뻗은 나무들과 그 사이로 스며들어 내 얼굴을 비추는 햇빛까지
모든 것이 어쩜 그렇게 좋았을까?
한참을 벤치에 누워있었다.
제주의 모든 곳..
비누와의 소중한 산책길
실제로 가장 많은 식물 사진은 비누와 나의 산책길에서 만나고 사진을 찍는다.
산책로의 식물들은 14년을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열네살 비누처럼..
매일 같은 식물들을 만나지만 한 번도 똑같은 적이 없는 변화가 새롭고 신기하다.
눈길이 머무는 곳
어딘가에서 만나는 식물들
이름을 알면 어떻고, 모른 들 어떠리..
사진이 지겹도록 많지만 보너스..
“그사이! 거기서 뭐 해. 아무것도 없는데 뭘 찍는 거야. 빨리 와!”
“어..잠깐만! 나는 지금 소중한 순간을 찍고 있어”
* 오늘도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