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수는 왜 허지웅을 자극했나

<대홍수> (2025)와 허지웅 작가의 코멘트에 대한 단상

by 테리

지긋지긋해도 할 수 없다. 어떤 영화를 제대로 보지 않고 비평하는 것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하여 크리스마스 이브에 끈덕지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장장 2시간의 고난을 견뎌야만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홍수>는 엉망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라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넷플릭스의 거대 자본이 한국 영화 산업에 새로운 돌파구가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 타율은 영 형편없다. 나무위키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영화'를 검색해 작품 목록을 훑어보았다. 두 달 전 공개된 <굿뉴스>를 제외하면, 비평을 떠나 논의하고 싶은 작품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구구절절 비판할 에너지도 아깝다는 의미다. <대홍수>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굳이 이야기를 늘어놓는 까닭은 어제 올라온 허지웅 작가의 글을 두고 의견을 개진하고 싶어서다.


불쾌하고 한심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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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홍수>의 단점은 비교적 명확하다. 차라리 지독한 신파 외길로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밸런스가 무너져 있다. 재난 영화의 장르적 쾌감을 달성하는 데 실패한 건 둘째치고 욕심만 가득해 '정보의 범람'을 전혀 통제하지 못했다. 언제나 6살에 멈춰 있는 이모션 엔진 배양아 자인을 향한 안나의 모성애는 그러잖아도 서사와 따로 노는 드라마의 질을 떨어트리고 몰입을 해친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A.I.>가 세상에 나온 지도 25년 가까이 되었으니, 장르를 너저분하게 섞으려는 시도조차 진부함에 기인한다. 시간대를 넘나드는 연출, 타임 루프와 판타지적 요소는 또 어떠한가. <컨택트>부터 <소스 코드>까지 김병우 감독의 왓챠피디아를 들여다본 것만 같은 기분을 왜 느껴야 하는지 의문이며, 솔직히 그가 요 몇 년간 어떤 영화를 보고 영향받았을까 가벼이 지레짐작되어 몹시 불쾌하다. 내내 인물의 뒤꽁무니만 쫓다가 이따금 얼굴 클로즈업으로 신파를 조성하는 카메라 워크는 한심하고, 주요 순간마다 편의적으로 등장하는 과거 회상은 차마 보고 있기 괴롭다. 단순히 아이디어와 기획의 문제만 지적하기에도 한국 영화의 관습적인 문제들을 반복하고 있으니, 그 고집마저 참 게으르다고나 할까. 넷플릭스의 투자로 스케일이 커져 한껏 신이 난 것인지, 하고 싶은 말은 많고 섞고 싶은 장르도 넘치는데 이를 매끈하게 연결해야 할 창작자의 능력은 부재하다. 그릇에 비해 주제를 모른다는 인상이다. 만약 러닝타임을 3시간 가까이 늘렸다고 해도 단점을 만회했을 거라 상상하기 어렵다. 대사를 잘 쓰지도 못했고, 연출이 좋은 것도 아니며, 배우의 연기력이 편재한 문제를 상회할 만큼 뛰어나지도 않다. 추측건대 김병우 감독은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만한 'K-재난 영화'로 한 획을 긋고 싶었던 모양이다. 방대한 야심의 크기에 비해 제작자의 역량이 턱없이 부족해 실패한 영화가 되었다는 사실은 두말할 것도 없다. 내게 <대홍수>를 통해 논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영화가 얼마나 형편없는가'가 아니라, 개별 영화에 대한 담론 형성 양상의 문제점과 지난한 갑론을박이다. 이를 허지웅 작가의 글과 함께 논하고 싶다.


허지웅은 왜 영화 평론을 그만두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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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 작가가 12월 23일 게재한 인스타그램 게시글 전문

어제 허지웅 작가가 인스타그램에 게재한 글 전문을 읽어 보길 권한다. 그의 거친 문장이 어떤 마음에서 비롯하는지 알 것 같기에 가슴으로는 공감이 간다. 그러나 글의 논리가 이곳저곳에서 붕괴되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어 애석하다. 그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나는 <유전>에 대한 대중의 비판적인 초기 평가에 동의할 수 없고 믿을 수도 없어서 그 괴리를 견디지 못해 직업적 영화 글쓰기를 그만두었다.
2. <대홍수>도 <유전>처럼 초기 평가가 극과 극을 오가고 있다. 체감 비용 제로시대에 사는 요즘 관객은 영화가 제때 도파민을 충족해 주지 못한다고 쉽게 외면한다. 이는 이야기의 비용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세대가 자초한 결핍이다.
3. 나는 <대홍수> 또한 그렇게까지 매도되어야 할 작품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기 도파민을 시기적절하게 치솟게 하지 못하는 콘텐츠를 저주하는데, 그러려면 최소한의 논리를 갖추어야 한다. 나는 그들이 제대로 논리를 갖추는 광경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허지웅의 오컬트 1티어 영화' <유전>은 돌아보면 공정한 평가를 받았다. 그가 말한 초기 평가가 지금의 평가와 얼마나 큰 괴리가 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영화 커뮤니티 '익무'에 유전을 검색해 2018년 개봉 시점의 여론을 살펴보면 지루하다는 의견도 있으나 호평이 다수다. 만약 그가 즐겨 접속하는 다른 특정 커뮤니티의 여론이 악평일색이었다 해도, '소수 인터넷 여론'이라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제멋대로 태세를 바꾸는가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사람이다. 이글루스와 텀블러 시절 그의 비평은 늘 당당했고 자기주장을 밝히는 데 거침없었다. 트위터 키배에도 매우 능한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한 영화에 대한 일부 초기 의견이 자신과 다르다고 영화 글쓰기라는 판 자체를 떠났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가 <유전>을 분기점으로 터졌다고 감안해도 '소통이 불가능하다'라는 소신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 가닿을 수 없는 감정적 공백이 몇 군데 있다. 나는 에드가 라이트의 <더 러닝 맨>(2025)을 보지 않았는데, 슈왈제네거 주연의 <러닝맨>(1987)과 달라봐야 뭐가 그렇게 다를까 싶고, "후자가 전자보다 나은 영화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할 만큼 두 영화가 영화판에서 심대한 의미를 갖는지도 잘 모르겠다. <유전>이 뛰어넘은 영화로 언급한 니콜라스 뢰그의 <쳐다보지 마라> 또한 오컬트 장르의 역사에 남을 명작이기는 하나 다른 어떤 영화와도 비교불허한 1티어 영화로 보는 시각은 다소 마니악하지 싶다. 참고로 <더 러닝 맨>은 개봉 2주 만에 상영종료되어 어둠의 경로 외에 볼 수 있는 방법이 현재로선 없다. <쳐다보지 마라>의 경우 어떠한 OTT에서도 서비스하고 있지 않다.


시네필을 가장한 인터넷 우디르

유전.jfif 아리 애스터 <유전> (2018)

요점은 무엇인가? 시네필을 가장한 인터넷 우디르들의 배설형 악평이 인간 허지웅에게서 영화 평론가라는 명함을 앗아갔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것이 그에게 있어 영화 글쓰기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대중과의 소통 불능으로부터 자신의 평론가적 자의식을 보존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중요했다는 증거라고 본다. 이 절필과 그가 진술한 절필 사유에 대해 가치 판단은 하고 싶지 않다. 그 과정을 남들에게 이해받지 못할지언정 누구나 극한 상황에 몰리면 자신을 돌보는 것이 급선무인 법이다. 나는 글쓰기를 떠나 인간 허지웅이 어른으로서 자신을 지켜낸 세월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다만, 평론가는 직업이라기보다 일종의 태도에 더 가깝다고 믿기에 그가 고작 일부 인터넷 여론에 신물나 소통 불능을 단정하고 자신만의 영화 이야기를 포기한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어이없게 들릴지 몰라도 <유전>을 지지하는 글로 영향을 끼쳐 우디르들을 양산하는 것도 현대 영화 평론가의 역할 중 하나라고 본다. 나는 <에이리언: 커버넌트>를 재미없는 영화라고 혹평한 그가 <에이리언: 로물루스>를 얼마나 신랄하게 비판할지 보고 싶었고, 스타워즈 시리즈 사상 최고의 뜨거운 감자였던 <라스트 제다이>를 자신의 베스트 스타워즈 영화로 꼽은 그가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는 어떤 태도를 보일는지 정말 궁금했다. 안타깝게도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2번에서 선결적으로 지적해야 하는 오류는 <대홍수>와 <유전>을 동일 선상에 놓고 서술했다는 점이다. 초기 평가가 양극단으로 나뉘었다고 하면 얼핏 같은 사례로 보이지만 <유전>은 엄연히 명작이다. <대홍수>를 비호하고 싶은 심리 기제는 알겠으나 이 영화는 좋게 봐줘도 욕심만 큰 망작이다. 그런 두 영화를 같은 맥락에 놓고 주장을 전개했기 때문에 거짓 전제의 오류를 범한 감정적인 글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나마 비슷한 맥락으로 설명하려면, 두 작품 모두 장르 영화로서의 직관성을 과감히 비틀어 특색있는 정체성을 구축하지 않았냐고 에두르는 방법 정도다. 그러나 허지웅이 두 영화가 과도하게 혹평받는 이유로 '체감 비용 제로시대의 도파민 과의존 현상'을 덧붙였기 때문에 그 포장도 쉽지 않다. 그가 생각하는 '대중의 도파민 게이지가 충족되는 적정 수준'을 정량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지만, 두 영화의 도파민 레벨은 간과되는 편이다. <대홍수>의 시청각적 쾌감은 적어도 관객이 재난 영화에 기본적으로 기대하는 수준까지는 충족한다. <유전> 역시 갑작스러운 점프 컷이나 잔인한 장면을 최소화하여 소위 전형적인 깜놀은 덜할 수 있지만, 정보를 극도로 제한한 미스터리 스릴러로서 장르의 뼈대를 충실히 지킨다. 특유의 스산한 공기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작동하여 관객을 감싼다. <유전>의 초반부가 지루하다는 일부 의견에 공감하지 않는 이유다. 결국 허지웅의 2번 주장에서 공감할 수 있는 점은 요즘 사람들이 도파민을 원하는 시점에 공급해 주지 않으면 콘텐츠 자체를 외면한다는 가설뿐이다. 딱히 검증할 방법은 없어도 동감한다. 그와 무관하게 <대홍수>는 비판받아 마땅한 영화이며 <대홍수>와 <유전>의 비교 또한 적절치 않다.


취향과 교양을 혼동하는 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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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주장의 뒷부분에는 깊게 공감한다. 2번과 이어지는 내용인데, 중요한 건 마지막 첨언이다. 나는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가 싫을 때 충분히 논리를 갖춰 말하지 않는 것에 오래전부터 큰 불만을 품어왔다. 끔찍하게도 이 현상의 역겨움은 영화로 넘어오면 배로 심해진다. 이는 취향과 교양을 혼동하는 대중의 무지몽매함에 책임이 있다. 누구나 음악, 영화, 음식 등 일상에서 접하기 쉬운 분야에는 유독 섣부르게 훈수하거나 평가하는 일이 잦지 않은가. 뭐 하루이틀도 아니고 그러려니 한다. 내게 있어 최근 1~2년 사이 개봉한 영화 중 제일 열렬히 변호하고 싶던 영화는 <조커: 폴리 아 되>다. 속편이 전편의 성취를 깨부수는 방식을 사용했다면 팬덤의 실망과 기대 이하의 흥행 성적은 감당해야 하겠으나, 그것이 영화가 매도당해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그런데, 대중의 맹목적인 비난보다 더 실망스러웠던 건 평론가고 유튜브 리뷰어고 간에 이 영화를 좋게 본 사람들마저 자신이 이 영화를 호평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유일하게 구색을 갖춘 호평 영상을 제작하고 연이은 콘텐츠로 악플 읽기 영상까지 제작한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채널에 감사를 전한다. 논리를 갖추어야 하는 건 저주할 때만이 아니다. 좋아하는 콘텐츠를 칭송하고 보호할 때도 마찬가지로 타당한 논거를 갖추어야 한다. "우리 애기가 먹어야 하는데 내 기대와 달랐으니 너 개새끼는 장사를 접어"와 "다른 사람은 맛없다는데 내 입맛엔 맞음. 아래 리뷰는 타업장 댓글 알바인 듯"은 근본적으로 같다. (빨간 안경 아저씨는 파이아키아에서 화살보다는 갑옷을 만드는 일을 하라는 맹자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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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탄탄한 논리 구조를 갖춘 성숙한 문장으로 자신을 꼼꼼히 무장해 오던 허지웅 작가가 이런 날 것의 글로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는 데에 반가움과 향수를 느낀다. 그럼에도 그가 영화 평론을 돈벌이 수단으로써 포기한 이유를 밝히기에 <유전>과 <대홍수>는 그리 적절한 예시가 아닌 것 같다. 그가 비난한 '윤제균식 기획 영화'와 <대홍수>를 비롯한 일련의 한국 영화가 어떤 지점에서 차별점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내 눈에는 <대홍수>도 한심한 기획 영화다. 감독에게 장사를 접으라며 평점 테러를 하지는 않더라도,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혹평조차 남기지 않을 것이다. <굿뉴스> 덕분에 생각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영화는 당분간 철저히 관심 밖, 아웃 오브 안중, 열외다.


어떤 영화를 두고 최소한의 설명도 없이 쓰레기라는 악평을 남기고 유유자적하는 인간 군상이 인터넷 여론을 장악하는 현실에 나도 허지웅 작가처럼 푸념 몇 마디 남기고 싶어 늘 근질근질한 사람이다. OTT로 '딸깍'하면 영화 시청이 가능한 시대에 1.5배속으로 영화를 틀어놓고 카톡과 인스타 DM을 오가며 화면은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왓챠피디아에 별점 하나 띡 찍어낸 후 '편수딸'하는 주객전도에 염증을 느낀다. 그럼에도 이런 세태(世態)가 과연 세대(世代)의 문제인지는 단언할 수 없다. 아무리 체감 비용이 제로로 수렴하는 대 도파민 시대라지만 모든 젊은 세대가 다 그런 행태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 영화관에 방문하면 체감상 6~70% 정도는 2030이다. 굳이 시간과 돈을 써가며 극장에 방문하는 젊은 세대가 있어서 그나마 이 업계가 굴러가는 것이다. 20대 남성 투표 성향처럼 명백한 데이터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성급한 세대론은 언제나 위험하다. 내가 어릴 적 식사 자리에서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면 어디 밥상머리에서 버릇없이 구냐며 꾸짖던 할아버지는 여든이 넘어 스마트폰에 중독되었다. 정말 어쩌다 한 번 있는 가족 외식, 할아버지는 식사가 나오고 나서도 1시간 동안 의미 없는 카카오톡 스팸 메시지를 하염없이 확인하다 기어코 아버지가 버럭 윽박지르게 만들곤 했다. 스마트폰, 숏폼, OTT, SNS 등으로 대변되는 체감 비용 제로의 대 도파민 시대는 비단 요즘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허지웅 작가가 영화 평론을 그만둔 이유는 개인적으로 예상하던 바이지만, 그가 선택한 작품과 시점이 퍽 당혹스럽다. '보지도 않고 욕하는 대중', '저주에 가까운 악평을 쏟는 악플러'의 작태를 비판하는 영화로서 하필 <대홍수>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 선택만 시의적절했다면 이번 발언을 전적으로 지지했을 텐데, 이래서 의견으로 밥 벌어먹고 사는 게 쉽지 않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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