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1959) 리뷰
오즈 야스지로가 평생 제작한 54편의 영화 중 17편은 통째로 소실되어 각본만 남았다. 일부만 보존된 영화를 제외하면 전체가 오롯이 전해지는 영화는 33편이다. 1927년, 무성 영화 시대의 끝자락에 <참회의 칼>로 데뷔한 그는 다른 일본 감독에 비해 뒤늦게 유성 영화를 찍었다. 쇼치쿠 사가 제작한 일본 최초의 장편 유성 영화 <마담과 아내>가 공개된 시점은 1931년, 오즈의 영화 세계가 흑백 유성 영화로 이행한 것은 1936년 <외아들>부터다. 1957년 <동경의 황혼>까지 20여 년간 숱한 걸작을 배출하며 거장의 반열에 오른 오즈는 고작 여섯 편의 컬러 유성 영화를 남기고 환갑 생일날 세상을 떠났다.
후대 관객에게 주어진 33편의 선택지 중 어떤 작품으로 오즈를 처음 접했는가에 따라 그 세계에 대한 인식은 천차만별로 나뉠 터다. 오즈의 필모그래피는 흑백 영화로 빼곡히 채워져 있어, 컬러 영화로 입문한다는 것은 다소 독특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안녕하세요>는 1958년 공개한 첫 컬러 영화 <피안화> 이후 두 번째 컬러 영화다. 불과 2년 전, 오즈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음울한 영화인 <동경의 황혼>으로 흑백 시대에 느지막이 종언을 고했다. 색채를 얻은 오즈의 영화는 부쩍 밝아진 분위기로 관객과 재회했다. 대표작 <동경 이야기>, <만춘>으로 오즈를 기억하는 관객에게는 아이들을 앞세운 코미디 영화가 생소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만약 <안녕하세요>를 입문작으로 골랐다면 일러두고 싶은 사항이 몇 가지 있다. 이 영화는 흑백 유성 영화 시대에 착실히 정립해 온 오즈 스타일이 '정점 그 이상'에 도달했음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쇼트와 프레임의 구조적 정교함을 눈여겨보라. 아이들의 자유로운 돌발 행동조차 양식적 일관성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오즈는 자신이 쌓아 올린 토양 위에서 아이들이 뛰어놀도록 허락하기는 했으나, 영화 내내 등장하는 주전자처럼 미동 없이 완고하게 버티고 서 있다. <만춘>의 항아리가 아버지의 상징이었듯 오즈 영화에서 정물은 빈번히 인물과 등치되어 왔는데, <안녕하세요>의 주전자는 마치 영화 바깥의 오즈가 영화 안으로 들어온 것처럼 보인다. 가구마다 배치된 주전자는 감독의 분신이자 하나의 시선이 되어 모든 장면을 놓치지 않고 관찰한다. 여러 집을 오가는 인물의 동선, 그에 따라 시시각각 전환하는 쇼트, 완전한 조형미를 이루는 정물과 배경의 구도 등 화면 안의 모든 요소는 치밀한 계산의 산물이다. 여전히 다다미 높이에 맞춰진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고 인물들의 삶을 관조한다. 스타일은 완전히 무르익었다.
한결 가벼운 주제의 영화로 오즈에 입문하고자 한다면, <안녕하세요>는 탁월한 선택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 영화의 주제를 두고 '가볍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글은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전제로 한다. 텔레비전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의 묵언 시위가 자아내는 코미디, 교외 베드타운의 계획 주택들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군상극은 (오즈의 다른 작품에 비하면) 퍽 소란스럽고 유쾌하다. 여기서 아이들의 귀여움에 깜빡 넘어가 한 번 웃고 넘길 시트콤 정도로 단정하면 무척 곤란하다. 영화의 여백에는 1950년대 말의 시대상과 변화의 물결을 맞이하는 구세대로서의 사회적 자각, 데뷔 33년 차를 맞은 영화감독으로서의 자기회고적 고민 등 다층적인 주제의식이 자리한다.
표면적인 이야기 중심은 텔레비전이다. 옆집 젊은 부부네 텔레비전에 중독된 미노루와 이사무는 우리 집에도 하나 들여달라고 보채지만, 부모님은 단호하게 거절한다. 영화가 발표된 1959년 당시 텔레비전은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신문물이었다. 무성에서 유성으로, 흑백에서 컬러로, 두 번의 격동기를 통과하고 어느덧 거장이 된 오즈는 영화의 위상을 위협하는 뉴 미디어의 등장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결말부에 이르러 아이들의 염원은 끝내 이뤄진다. 엄한 줄만 알았던 아버지는 텔레비전을 사와 아이들이 발견할 수 있도록 마룻바닥에 무심히 놓아둔다. 한껏 들뜬 두 아들에게 "조용히 안 하면 도로 반품한다!"라며 으름장을 놓지만, 무서운 표정 뒤에 숨긴 흐뭇한 미소를 들키고 만다. 과격하게 말해 <안녕하세요>는 '텔레비전을 거부하지 못하는' 영화다. 류 치슈가 연기한 아버지는 (류 치슈가 다른 오즈 영화에서 연기한 아버지에 비하면) 권위적인 성향으로 보인다. 기성세대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입은 가부장은 사랑스러운 두 아들의 어리광을 결코 당해낼 수 없다. 승자는 언제나 자식이 될 것이다. 오즈는 신세대가 구세대의 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예고된 미래를 덤덤히 받아들인다. 아버지는 방문판매원이 된 술친구의 영업을 거절하지 못하고, 영화는 가정 깊숙이 침투하는 텔레비전의 존재를 더는 부정하지 않는다.
영화의 첫 장면은 인물의 생활 공간과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고 관객을 그들의 일상으로 인도하는 기능을 한다. 송전탑과 나란히 늘어선 주택 단지의 모습이 담긴 풍경 쇼트가 보인다. 마주 보고 있는 집들 사이로 높은 제방이 있고, 그 위로 등굣길에 나서는 아이들이 보인다. 거대한 송전탑과 길게 늘어진 전선, 하나같이 똑같은 주택의 디자인은 이 마을이 전후에 개발된 신흥 계획 주택 단지임을 명시한다. 오프닝에서 등교하는 아이는 총 네 명이다. 미노루와 이사무, 텔레비전을 가진 젊은 부부네 아들 젠, 방귀를 뀌다 바지에 실수하는 코우죠. 젠의 부모는 텔레비전을 보러 오는 아이들을 살갑게 맞아주지만, 구세대로 가득한 마을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사한다. 엔딩에 이르면 똑같은 등굣길에 아이는 세 명만 남는다. 마을의 텔레비전은 한 대로 유지된다. 그런데 젠 가족이 이사하는 과정은 묘사되지 않는다. 짐을 나르는 이삿짐 트럭도 없고, 갈등의 단초가 되는 세탁기, 텔레비전 등의 가전을 실어 나르는 차량도 보이지 않는다. 마을을 출입하는 장면은 전부 소거되어 있다.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에 학교는 겨우 한 번 등장할 뿐이다. 이 마을은 마치 외부와 격리된 별도의 영화 세트처럼 보인다. 그런 고립된 공간에도 텔레비전은 도착한다.
1950년대 후반 일본 사회는 한국전쟁 특수로 경제를 재건하고 고도 성장기에 진입하여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었다. 이때 일본 가정에 대량 보급되기 시작한 세 가지 가전제품인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는 일본 건국 신화의 삼종신기에 빗대어 삼신기로 불렸다. 영화에서 코우죠의 어머니가 부녀회비를 빼돌렸다고 의심받은 이유도 신형 세탁기를 구매해서였다. 집집마다 보급되기 시작한 삼신기는 공동체에 균열을 일으키는데, 큰 비극을 초래하지는 않고 마을 구성원이 재편되는 데 그친다. 이 영화가 인물들을 은근히 죽음의 위협에 노출시킨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코우죠의 할머니가 식칼로 연필을 깎아 방문판매원을 내쫓는 장면이나 자신의 딸과 비정한 말을 주고받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돌아가실 때가 되셨나?", "말썽쟁이 아들이나 낳고선 잘난 척은". 미노루 형제가 갈아먹던 경석에 쥐약을 바르겠다는 어머니의 대사는 또 어떤가. 천만다행히 사건으로 불거지지는 않았으나 무심코 넘기기에는 아주 섬뜩한 순간들이다. 각 가정에 틈입한 문명의 이기는 이전의 오즈 영화에서 보아왔던 정물들과 달리 서늘한 불온함을 생산한다.
1950년대의 영화 산업 종사자 일부는 텔레비전을 저급한 매체로 취급하며 무시했으나, 르누아르의 <코들리에 박사의 유언>, 로셀리니의 <이탈리아 여행>,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 등 당대 유럽의 명감독들은 엘리트주의에 갇히지 않고 텔레비전의 형식을 흡수하거나 창조적으로 재구성하여 영화에 적용하고자 했다. 이 감독들과 비평, 인터뷰로 관계를 맺어왔던 안드레 바쟁은 제2차세계대전 종료 이후 유럽 각국에서 텔레비전이 대중화되던 시기인 1952년부터 백혈병으로 생을 마감한 1958년까지 텔레비전에 관한 글을 100편 이상 저술했다. 그는 극장 관객을 집 안으로 불러들인 텔레비전의 보급을 단순히 영화 산업의 위기로 간주하지 않았다. 텔레비전 이미지의 현장성과 동시성이 여지껏 영화가 경험해 온 리얼리즘과 다른 방식으로 리얼리즘을 구사한다고 보았으며,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발전의 시대에 놓인 영화가 매체적 본질을 유지한 채 가능성을 확장해 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바쟁은 와이드스크린, 3D 등 새로운 스크린 테크놀로지의 등장을 예견했다. 텔레비전은 의도치 않게 영화의 발전에 도전적 계기를 제공했다. 할리우드가 20세기 폭스를 주축으로 대형 스펙터클 제작에 주력한 것 또한 '텔레비전이 제공할 수 없는 스케일'을 강조한 차별화 전략으로 활로를 모색했기 때문이다.
오즈는 유성 영화를 늦게 찍었고 컬러로의 전환도 빨랐다고 할 수 없지만 언제나 적응에 성공했다. 바쟁이 사망한 지 6개월 만에 공개된 <안녕하세요>는 상술한 유럽의 명작들 못지않게 텔레비전의 등장에 영민하게 반응한 영화다. <코들리에 박사의 유언>과 <400번의 구타>는 <안녕하세요>와 같은 1959년에 발표되었다. 안타깝게도 오즈의 국제적 명성은 사후에야 확대되었다. 바쟁이 미조구치 겐지의 '원 신 원 쇼트'를 극찬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오즈를 거론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바쟁이 감독의 통제를 최소화하고 주어진 조건을 그대로 현상하는 영화를 옹호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오즈의 영화 역시 옹호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바쟁은 몽타주의 눈속임과 쇼트의 인위적 충돌이 현실을 왜곡할 위험이 있다고 비판했는데, 비워 두는 영화를 만듦에 있어 오즈의 탁월함은 단연 독보적이지 않은가. 오즈는 텔레비전을 둘러싼 열띤 사회적 담론을 제거하고 이미 일상에 도래한 현실 조건으로 인식했다. 텔레비전 생방송 형식을 영화로 끌어와 실험적으로 활용했던 <코들리에 박사의 유언>이나 텔레비전의 스타일을 수용하면서도 주인공을 극장으로 도피시켰던 <400번의 구타>와는 다른 방식으로 급진적이다. 오즈는 텔레비전과 영화의 매체 존재론적 고찰에 열중하는 대신, 양자의 대결이 필연적으로 초래할 어떠한 결과를 한발 먼저 받아들였다. 이는 국적을 불문하고 동시대 영화사에서 보기 드문 통찰이자, 새 시대의 개막을 앞질러 내다본 선구자적 태도였다.
이 영화에서도 오즈의 페르소나, 평생의 동반자였던 류 치슈에 대한 조명은 빠질 수 없다. 류 치슈는 33년 동안 37편의 오즈 영화에 출연했다. 1928년, 오즈의 두 번째 영화이자 유실작 <젊은이의 꿈>으로 데뷔하여 늘 그의 곁을 지켰다. 노리코 삼부작은 물론이고 오즈의 첫 흑백 유성 영화 <외아들>, 첫 컬러 영화 <피안화>, 유작 <꽁치의 맛>에 모두 출연하며 마지막까지 오즈 영화의 얼굴로 남았다. 류 치슈는 오즈의 후기작에서 일관적으로 '히라야마'라는 명함을 부여받았는데, <안녕하세요>의 배역명은 예외적으로 하야시 케이타로다. 오즈의 영화에서 아버지가 아이들을 엄하게 꾸짖고 호통치는 모습은 이전에 자주 목격하지 못했으므로 하야시가의 아버지는 오즈 세계에서 적잖이 이례적인 인물로 다가온다. 류 치슈가 맡아 온 아버지상의 변천과 히라야마라는 이름을 돌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작업이겠지만 지금은 <안녕하세요>에 한정하겠다. 그는 아이들을 무대에 세우고 리딩 롤에서 한 발짝 물러났는데, <안녕하세요>의 원작인 <태어나기는 했지만>에서는 비중이 희미한 단역을 맡았었다. <피안화>에 7년 앞서 일본 최초의 컬러 영화로 알려진 기노시타 케이스케의 <카르멘 고향에 돌아오다>에도 출연했다.
1959년에 이미 50대 중반이었던 오즈는 젠의 부모보다 미노루의 부모 세대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한 살 터울인 오즈와 류 치슈를 겹쳐 보게 되는 감각은 후기작에서 더 두드러진다. 따라서 <안녕하세요>가 아버지 인물의 입체성을 포기한 까닭은 결국 이 영화의 무게 중심이, 나아가 영화 산업의 향방을 좌우할 결정권자가 아이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함에 있다. <안녕하세요>는 변화하는 시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품격 있는 패배 선언, 가장 우아한 체념(송경원)이다. 하지만, 세대의 패배가 꼭 영화의 패배인 건 아니다. 같은 해 발표한 <부초>는 <안녕하세요>와 마찬가지로 이전 자기 작품의 리메이크다. 1959년, 경력 후반부에 다다른 오즈는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며 주석을 붙이는 데 집중했다. "어른들이야말로 쓸데없는 소리만 한다"는 미노루의 일갈은 오즈 영화에 대한 논평으로 들린다. 관객은 영화의 끝에 기차역에서 우연히 만난 세츠코와 헤이지로가 오로지 무용한 인사만을 천연덕스럽게 주고받는 장면을 마주한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안녕하세요(오하이요)", "날씨가 좋네요", "정말 날씨가 좋네요", "구름 모양이 재미있다" 등 무의미한 말이 이어질 뿐이지만, 우리는 두 남녀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음을 안다. 이사무가 남발하는 "아이 러브 유" 같은 고백의 말을 하지 않고서도 말이다. 오즈는 어쩌면 바쟁보다도 초월적인 태도로 미래를 달관한다. 기차는 오지 않는다. 기차의 도착을 목도하는 것은 그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래라도 보고 온 것일까, 그렇게 오즈 야스지로는 3년 동안 네 편의 영화를 더 만든 뒤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도착하지 않는 기차와 이미 도착해버린 텔레비전 사이에서.
오즈는 경력 후기에 <안녕하세요>와 <부초>로 과거작을 리메이크하며 자기 세계를 정리했습니다. 그는 분명 산업적으로는 실패한 세대에 속합니다. 첫 컬러 영화 <피안화>를 발표한 1958년은, 줄곧 업계 1위를 유지해 오던 쇼치쿠 사가 3위로 하락하며 스튜디오 시스템 붕괴의 전조를 알리던 해였죠. 1953년 2월 1일, NHK가 첫 텔레비전 방송을 송출한 지 불과 5년 만의 일입니다.
눈여겨 봐야 하는 건, 오즈가 자기 형식을 유지한 채로 다가오는 패배를 맞이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완고한 보수파라서도 아니고, 현인이어서도 아니고, 미래를 보고 와서도 아닙니다.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인사말의 가치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즈는 분노하거나, 냉소하거나, 노스탤지어에 빠지지 않습니다. 링 바깥으로 물러나 그저 "안녕하세요"라고 말한다는 것, 단순히 달관과 체념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제 별점은 네 개 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