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송대, 다섯 번째 샷> (2024) 리뷰
라이프치히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최우수상을 거머쥔 <환송대, 다섯 번째 샷>(2024)은 반복되는 시간여행의 피해자인 <환송대>(1962)의 주인공을 조명하는 대신, 다섯 번째 사진으로 쓰인 가족의 뒷모습을 끈질기게 추적한다. 이 장대한 수사극의 시작은 사진 속 가족을 자신과 부모라고 생각한 장-앙리가 그의 사촌 도미니크 카브레라 감독과 만나면서부터다. 장-앙리와 사촌 가족을 쏙 빼닮은 뒷모습이 그들을 매혹한다. 그들은 사진 한 장으로 동심을 되찾은 모습이다. 그들의 추측은 확신에 가깝지만 진실은 끝내 가능성의 영역에 남는다. “비슷해 보인다고 맞는 보장은 없어, 사람은 비슷한 걸 보려고 하잖아.” 가족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일까, 그들은 사진 매체의 한계를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100%의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안다.
<환송대>(1962)는 “이것은 유년 시절의 이미지가 각인된 한 남자의 이야기다”라는 문장으로 서두를 연다. <환송대, 다섯 번째 샷>(2024)은 <환송대>(1962)의 방식을 오마주한다. 크리스 마커 감독의 <내게 만일 네 마리의 낙타가 있다면>(1966) 속 내레이션을 사용한다. “사진은 사냥과 같습니다. (중략) 찰칵! 죽음 대신 불멸을 만듭니다.” 죽음 앞에서 탄생으로 회귀하는 <환송대>(1962)처럼 이 영화의 생명력은 60여 년이 지나 다시금 발아한다. 순간을 포착해 영원이 된 사진에는 우연히도 친척 장-앙리의 뾰족귀를 그대로 닮은 꼬마가 있었다. 크리스 마커가 하필 그날 그 시간, 오를리 공항 환송대에서 장-앙리 가족을 영원 속에 가두어 불멸로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카브레라 감독은 뒷모습의 미스터리를 쫓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나아가 한 장의 사진에 켜켜이 쌓인 가족사, 영화사, 전쟁사를 조심스럽게 관찰한다. <환송대>(1962)가 개봉한 1962년은 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해다. 카브레라 감독과 장-앙리의 부모는 고향 생드니 드 시그에서 강제로 쫓겨나며 프랑스로 망명해야 했다. 알제리 독립 직후 종려주일과 부활절 사이 프랑스로 떠나온 그들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100년 이상 알제리에 거주해 온 유럽계 백인들은 힘겨운 나날을 견뎌야만 했다.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과 고향을 잃고 프랑스 본토에서 ‘피에 누아르(Pied-Noir)’라는 멸칭으로 불렸다. 장-앙리 가족을 비롯한 오를리 공항 환송대의 수많은 인파는 단순히 비행기 구경을 원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실향민들은 주말만 되면 환송대에 모여 고향에 남겨둔 가족과 친구가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렸다. 장-앙리의 부모는 기계적으로 이착륙을 반복하는 비행기와 응답 없는 푸른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피에 누아르의 얼굴을 지나쳤을까. 프랑스인도, 알제리인도 아닌 그들에게 환송대로 떠나는 주말 나들이는 피에 누아르 간의 연대이자 정체성 확립의 발로, 낯선 땅에서의 생존 본능이었다. 크리스 마커의 <아름다운 5월>에는 1962년 프랑스 파리가 겪은 혼돈이 고스란히 담겼다. <환송대>(1962)와 같은 시기 촬영했다는 크리스 마커의 발언이 거짓말로 드러났음에도, 두 영화는 동일한 시간대를 공유하며 당시 프랑스가 마주한 정치사회적 이슈를 가로지른다. 카브레라 감독은 자신의 가족사에 담긴 프랑스와 알제리의 역사를 차분히 관조하며, 이것이 그저 과거 이야기가 아닌 현재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화두임을 환기한다.
의미심장하게도 장-앙리의 뾰족한 귀와 각진 얼굴은 <환송대>(1962)의 주연 다보스 아니슈와 닮았다. 다큐멘터리의 중후반부 장-앙리의 어머니 앙젤이 과거 부 아니슈 일가의 남자와 교제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출생의 미스터리가 대두한다. 다보스 아니슈는 그의 딸과 아내를 끊임없이 촬영하던 사랑 넘치는 아버지였음에도, 개명 사실, 연애사, 출신지 등의 과거를 비밀로 숨겨 두었다. 출생을 둘러싼 의문은 그가 장-앙리와 카브레라 감독의 고향 시그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걷잡을 수 없이 증폭한다. 다보스 아니슈의 의뭉스러운 과거는 크리스 마커 감독의 삶과 그대로 겹친다. 그는 영화사에 이름을 남긴 명감독이 분명하지만, 그 개인은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크리스 마커는 로베르트 브레송의 <잔 다르크의 재판>에서 잔 다르크를 연기한 플로랑스를 보고 그녀에게 <태양 없이> 내레이션을 맡겼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크리스 마커를 깊숙이 매혹했던 ‘진짜 잔 다르크’는 마르코 드 가스틴 감독의 잔 다르크였다. 그는 이 사실을 플로랑스에게 줄곧 비밀로 했다. 침묵하는 사람 중 침묵으로 가장 많은 것을 말하는 사람이라는 증언처럼, 그는 영화로 말하는 사람이다. <환송대>(1962)의 정지 사진들은 지금까지도 불가해한 생명력을 뿜으며 자신을 추적하는 <환송대, 다섯 번째 샷>과 밀담을 나눈다.
한국에는 ‘환송대(La Jetée)’가 존재하지 않아, ‘방파제’, ‘선창’ 등으로 영화 제목을 번번이 오역해 왔다. 환송대라는 장소, 피에 누아르의 역사 등 <환송대>(1962)를 감싼 특수한 로컬 시네마적 특성은 영화에 두터운 장벽을 형성한다. <환송대, 다섯 번째 샷>(2024)은 2시간 가까이 <환송대>(1962) 속 사진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프랑스-알제리의 역사와 크리스 마커 감독의 필모그래피 전반을 탐구한다. 그럼에도 비 프랑스인 관객에게 장벽을 허물 수 있는 충분한 힌트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다. 그 말인즉슨, 이 영화는 프랑스인들, 특히 피에 누아르의 애환을 담은 로컬 다큐멘터리다. 카브레라 감독의 다큐멘터리는 운명이 가진 직관을 우연으로 여기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사진 한 장이 60여 년이 지나 우리 앞에 돌아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래는 과거로부터 보호받고 있었다.” <환송대>(1962)의 내레이션이 밝히듯, 과거 없는 미래란 누구도 보장할 수 없는 허상이다. 우리가 살고 싶은 오늘과 희망찬 미래는 건강한 과거가 있어야만 비로소 꿈꿀 수 있다. “인류는 살아남는 한 과거를 부정할 수 없다.” 크리스 마커의 심안은 그의 사후에도 우리에게 지속적인 경고를 보낸다. 역사를 잊지 말라고 말하기보다, 반복되는 역사에 갇혀 탄생부터 죽음을 마주해야 하는 남자의 운명을 보여주면서.
*위 글은 2025년 제17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에디터 자원활동가 '다큐즈'로 활동하며 작성한 리뷰입니다.
알제리 태생의 프랑스인 도미니크 카브레라 감독은 2017년 전주국제영화제에 <코르니쉬 케네디>라는 작품으로 내한했고,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는 2023년 <봉주르, 미스터 코몰리>로 한 차례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우연히 도미니크 카브레라 감독과 짧게나마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 그대로 포용심이 넘치는 인자한 중년 여성이었고, 낯선 동양의 젊은이를 살갑게 맞아주셨죠. 크리스 마커가 알랭 레네, 아녜스 바르다와 함께 <베트남에서 멀리 떨어져>를 제작할 때 프로덕션팀 막내로 커리어를 시작한 만큼, 도미니크 감독은 '진성 마커빠'를 자처하는 분이셨습니다. 크리스 마커가 로베르 브레송, 장 르누아르, 장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보다 위대하다는 건 좀 오바 같기도. ㅋㅋ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