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는 축구 경기로 부른다

우정 이야기 1

by 반하의 수필

1학기 종강이 다가올 무렵 슈투트가르트 시내의 길거리는 유럽 축구 경기(유로파)의 열기로 뜨거웠다. 동그랗게 모여 북을 치며 팀의 응원가를 부르는 사람들에게 빨간색과 노란색이 유독 많이 보였다. 그날은 스페인과 독일의 경기 날이었다. 맥주집은 야외 테이블들 앞에 커다란 빔 프로젝터 스크린을 띄우고 축구 경기를 틀어둔다. 어둑해진 저녁 일이 끝나고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사람들은 삼삼오오 밝은 스크린 앞에 모여든다. 가게에서 맥주를 주문하고 어떤 사람들은 근처 마트에 가서 곽으로 된 맥주를 사 온다. 그들이 쨍그랑거리며 건배를 마치는 새 축구 경기가 시작되고, 사람들의 얼굴 위에 기대와 절망, 기쁨과 허무가 춤을 춘다. 누군가의 발길질에 넘어진 맥주는 바닥으로 스며들고, 바삭한 감자칩은 수십 개로 부서져 너저분하게 흩어진다. 평소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독일인들의 무표정과 차분함을 떠올리면 그들은 지나치게 상기되어 있고 나는 그들을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다.


그곳에서 가장 차분한 건 나, 현서, 은주다. 우리는 볼에 독일 국기 색상의 크레용을 칠했지만, 셋 중 누구도 진짜로 축구 경기에 흥미가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시내에 나와 축구 팬들의 열기를 목격하고 이들 사이에 섞여 활기찬 시간을 보내는 걸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므로 새미의 초대는 고마운 것이었다. 이것은 “우리는 앞으로 더 멋진 것들을 함께할 거야”라고 내게 말했던 것의 일환인 듯했다. 그 애는 자신의 고향 친구들, 여자친구, 여자친구의 친구들까지 모두 모인 자리에 우리 한국인 셋을 데려가, “대학교에서 가장 친한 친구들”이라고 소개했다. 비슷비슷하게 작은 키의 그 아이들이 보기에는 비슷비슷하게 동그랗게 생긴 한국인 여자 애 세 명이 다소 생뚱맞았던 건 새미를 제외한 모두의 느낌이었으리라. 우리와 새미의 친구들은 웃으며 인사를 하고 말을 몇 마디 나누었지만 곧 다시 자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한 팀은 축구 화면과 독일어로 지르는 고함, 담배와 맥주로 다른 한 팀인 우리는 외국인의 입장으로 독일어가 들려오는 곳에서 이 분위기 느끼기로. 새미만이 우리와 그들이라는 두 세계를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했다.


맥주 두 곽을 사가지고 온 새미와 새미 친구들 덕에 맥주가 마치 무한리필처럼 제공되는 듯했고, 나는 그것을 깔짝깔짝 물처럼 마셨다. 맥주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건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니었기에 화장실은 늘 만원이다. 남자들은 고작 몇 걸음 떨어진 덤불 속에 들어가 익숙하게 노상방뇨를 하지만 그럼에도 남자 화장실에 줄이 있다. 지하 1층에 있는 화장실의 줄이 계단을 따라 1층까지 연결되어 있는 여자 화장실에 비하면 문 앞에서 알짱거리는 수준이지만 말이다. 내가 여자 화장실 줄의 중간쯤 서 있었을 때 몇몇 여자들이 거리낌 없이 상대적으로 짧은 남자 화장실 줄에 끼어든다. 줄을 선 남자들은 그런 여자들의 침범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하고 조금 뒤 여자들은 싱긋 웃으며 남자 화장실에서 가벼운 걸음으로 나온다. 겁 없이 남자화장실로 향하는 상쾌한 여자들과 불편한 기색 없는 남자들. 사람들이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순간이 내겐 너무 재밌다. 여전히 정직하게 여자 화장실의 긴 줄에 서서 그런 구경을 신나게 한다. 화장실 세면대에서 마트에서 산 포도와 복숭아에 대충 물을 한번 끼얹고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맥주도 양껏 얻어 마시고 날도 아주 깜깜해진 시간에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새미는 습관처럼 다음 날 아침 수업쯤은 아프다고 하고 제치면 그만이라고 우리를 붙잡지만, 이곳에 남는다고 재미있는 일이 생기지는 않으며 밤 산책만 몇 바퀴 더 하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는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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